탁발서 출발, 사부대중 평등한 식사법
출가자의 삶ㆍ전법ㆍ佛法 위신력 상징

▲ 천태종이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사찰음식 문화축제에서 발우공양을 하는 모습.<금강신문 자료사진>

발우공양(鉢盂供養)은 불교에서 일정한 법식에 따라 발우에 담아먹는 식사를 말한다. 밥 먹는 일을 수행의 일환으로 여겨 하나의 의식으로 정립한 것이다. 따라서 먹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감사하며 친환경적 식사법을 실천할 수 있어 출가수행자들만이 아니라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가치로 재조명되고 있다.

사찰에서는 아침공양을 조공(朝供)이라 하며, 예전에는 주로 죽을 먹었기에 신죽(晨粥)ㆍ조죽(朝粥)이라고도 부른다. 사시불공을 마친 뒤의 점심공양은 오공(午供)ㆍ재식(齋食) 등이라 한다. 재식이란 ‘계율에 따른 법다운 식사’를 뜻하여 오후불식을 규범으로 삼았던 초기불교의 식사법을 나타낸다. 저녁예불 전의 저녁공양은 도를 구하고자 쇠약해진 몸을 다스리기 위해 먹는다는 뜻에서 약석(藥夕)이라 부른다.

불교의 공양법에는 상공양과 발우공양이 있다. 상공양은 밥상이나 식탁에서 하는 식사로 인원이 적을 때나 편의에 따라 행하는 것이고, 많은 대중이 함께 모여 사는 사찰이나 정진ㆍ수행의 기간에는 일정한 법식에 따라 발우공양을 하고 있다. 

발우에 담긴 뜻

발(鉢)과 우(盂)는 모두 식기를 뜻하는 말로, 불교에서 발우라 하면 수행자들이 쓰는 밥그릇을 일컫는다. 초기 교단의 출가자들은 의식주를 재가자가 제공하는 공양에 의지하였다. 그 가운데 끼니는 매일 발우를 들고 거리로 나가 걸식하는 탁발(托鉢)로 해결하면서 이를 수행의 일부로 여겼다. 따라서 발우를 ‘중생의 뜻에 따르는 그릇’ 또는 ‘수행자에 합당한 그릇’의 의미로 응량기(應量器)ㆍ응기(應器)라고도 한다.

발우는 가사(袈裟)와 함께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증표로도 여긴다. 초기불교에서는 출가자가 지니고 다니는 여섯 가지 생활용구로 비구6물을 두었는데 이는 대의ㆍ중의ㆍ하의, 발우, 좌구, 물속의 작은 벌레를 걸러 살생을 막는 녹수낭(水囊)을 말한다. 비구6물은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식주 도구로, 그 가운데 법의와 발우는 출가자의 삶을 상징한다. 따라서 의발(衣鉢)이라는 말로 스님의 소유물을 표현하였고, 의발을 전수하는 것이 곧 법의 승계를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중국불교에 이르러 새롭게 일어난 선종(禪宗)에서 의발전승으로 법을 이어가는 가풍이 성행하였다. 선종의 초조인 달마(達磨)에서부터 6조 혜능(慧能)에 이르기까지, 각 선사들은 제자에게 의발을 남기면서 자신의 법을 전하는 증표로 삼았다.

발우는 불법의 위신력을 나타내는 법구(法具)를 상징하기도 한다. ‘증도가(證道歌)’에는 항용발(降龍鉢)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용을 항복시킨 발우’란 뜻이다. 깨달음을 얻고 난 부처님이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해 제자로 삼은 뒤, 자이나교도인 가섭 삼형제와 그들의 제자 1000명을 귀의시킨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부처님은 불을 내뿜는 독룡(毒龍)에게 삼매의 신통력으로 불을 발하고, 독룡의 몸을 작게 만들어 발우에 담았다. 이를 본 가섭은 크게 놀라 많은 논쟁과 대결을 거쳐 제자 500명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고, 두 동생도 500명을 이끌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는 1000명이나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가섭을 교화한 일은 불교교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에 경전에서는 이 사건을 설화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때 부처님의 신통력을 발하는 데 발우가 상징적 구실을 하여, ‘항용발’은 불법의 신묘한 위력이 담긴 발우라는 뜻으로 전승되고 있다.

인도와 남방불교에서는 지금도 하나의 발우로 탁발하면서 초기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면, 중국ㆍ한국ㆍ일본 등에서는 대중이 함께 모여 한 벌로 구성된 각자의 그릇으로 발우공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기가 다른 네 개를 한 벌로 삼는 사합(四合) 발우를 사용한다. 제일 큰 그릇은 밥을 담는 어시발우이고, 다음은 국을 담는 국발우(보시발우), 그 다음은 물을 담는 청수발우(청수발우)이며, 가장 작은 것이 찬을 담는 찬발우(연각발우)이다. 

탁발에서 비롯

발우공양의 역사는 탁발의 역사와 함께한다. 출가 수행자를 뜻하는 비구(比丘)는 팔리어인 ‘비쿠(bhikkhu)’를 음역한 것으로 ‘음식을 빌어먹는 걸사(乞士)’라는 뜻이다. 〈사분율〉에서 “출가자는 걸식으로 살아가야 하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고 했듯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걸식으로 해결하여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자신을 낮추는 가운데 수행과 자비를 실천했던 것이다.

최초의 발우공양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7일이 지났을 때이다.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들었다가 깨어난 부처님께 근처를 지나던 상인형제가 미숫가루를 공양물로 바쳤다. 그때 부처님은 받을 그릇이 없어 ‘과거의 부처님들은 무슨 그릇으로 음식을 받으셨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이에 사천왕이 사방으로 흩어져 돌발우를 하나씩 가져와 바쳤고, 부처님은 그것을 하나로 합친 뒤 공양을 받았다. 이는 불교교단의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발우공양이자 최초의 탁발을 상징한다.

부처님은 이후 제자들과 함께 하루에 한 번 오전탁발로 끼니를 해결하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지 100년 정도 지났을 무렵 공양을 비롯해 계율 완화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고, 점차 승가에 주방이 등장하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는 음식물의 저장과 조리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약 1000년 동안 불교철학을 꽃피운 부파불교시대의 교리연구는 안정된 정사생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엄격한 탁발공양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고 나라마다 여건에 맞추어 정착되었다. 중국에서 발전한 대승불교에서는 출가자들이 점차 탁발을 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특히 선종의 생활규범으로 제정한 백장회해(百丈懷海)의 〈백장청규〉는 불교교단사에 비추어볼 때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로 대표되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사상은 중국불교를 특징짓는 것이 되었고, 우리나라에 와서도 사찰음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인도불교가 중국에 건너와 탁발에서 자급자족의 발우공양으로 바뀐 것은, 자국의 풍토와 문화에 순응하는 토착적 수용이었다. 남방과 달리 날씨가 추운 북방에서는 한 끼만으로 건강을 지키기가 힘들뿐더러, 겨울철에 탁발을 다니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자급자족의 사원경제활동이 발달하게 되었고, 또한 국가와 지배층의 지원이 따르면서 점차 탁발에 의존하는 경향이 줄어들게 되었다.

대승불교를 이은 한국불교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사원 자체에서 공양을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탁발은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을 해결하는 출가자의 수행정신을 담고 있어, 그 전통은 면면이 이어져왔다. 신라의 대안(大安)ㆍ원효(元曉) 스님이 탁발걸식으로 대중과 함께하며 걸림 없는 무애행을 행하였듯이, 호국불교로 지배층의 후원을 받던 시절에도 뜻있는 스님들의 탁발수행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발우공양에 대해서는 고려시대 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에 상세한 지침이 있어 공양이 곧 수행과 다르지 않았던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발우공양의 기반이 되는 법식은 〈선원청규〉 부죽반(赴粥飯)에 실려 있으며, 1496년에 간행된 〈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은 발우공양에 관한 내용을 묶은 의식집이다. 근래 발우공양에서 사용하는 의식집은 〈석문의범〉 등에 전하는 ‘소심경(小心經)’을 따르고 있다. 

공양 절차

발우공양은 크게 준비단계, 공양물을 나누는 단계, 공양단계, 마무리단계로 나눌 수 있다. 축약하기도 하고 재가자들과 함께할 때는 간단한 절차로 행하나, 여기서는 격식을 갖춘 절차에 따라 살펴본다.

첫째, 준비단계에서는 각자 선반의 발우를 내려 양쪽으로 열을 지어 마주해 앉는다. 중앙에는 배식을 할 밥ㆍ국ㆍ반찬을 담은 통과 청수(천수)를 담은 주전자를 놓게 된다. 발우를 각자의 앞에 놓고 석가모니의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를 염송한다. 이어 전발게(展鉢偈)와 함께 발우를 펴서 어시발우는 왼쪽, 국발우는 오른쪽에 놓고 찬발우는 밥그릇 앞, 청수발우는 국발우 앞에 놓는다. 전발게는 모든 이에게 삼륜(三輪)이 청정하기를 바라는 게송으로 삼륜은 보시를 하는 이, 받는 이, 보시물을 말한다.

둘째, 공양물을 나누는 단계에서는 청수통, 공양통, 국통, 찬통을 든 스님들이 돌면 자신의 양에 맞추어 밥과 국과 물과 찬을 발우에 담는다. 이때 여러 불보살의 명호 등을 생각하는 십념(十念)을 외운다. 음식을 나누고 나면 두 손으로 어시발우를 들어 봉반게(奉飯偈)에 따라 눈높이 위로 올렸다 내린다. 위로는 석가모니와 모든 성현, 아래로는 일체 범부중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뜻이다.

이어 다섯 가지를 깊이 새기는 오관게(五觀偈)를 염송한다.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공덕을 헤아려보고, 자신의 덕행이 이렇듯 귀한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성찰한다. 아울러 삼독을 끊고, 이 공양을 몸이 병들지 않도록 치료하는 약으로 새기면서, 부지런히 정진해 깨달음을 이루기를 다짐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물을 담은 헌식기(獻食器)가 돌면 몇 개의 밥알을 넣어 배고픈 생명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생반게(生飯偈), 모든 음식물에 깃들어있는 생명을 청정하게 하는 정식게(淨食偈)가 이어진다.

셋째, 공양단계에서는 이 음식을 먹고, 악행을 끊고 선행을 닦으며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겠다는 발원을 담아 삼시게(三匙偈)를 새긴다. 이윽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며, 공양이 끝나갈 무렵 숭늉을 돌리면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닦아 먹는다. 마지막에 청수로 사합발우를 씻는데, 이 물은 이미 한 톨의 찌꺼기도 남지 않아 처음 받을 때와 똑같이 깨끗하다.

넷째, 마무리단계에서는 아귀를 위해 청수를 모으는 절수게(絶水偈)를 염송한다. 이때 만약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그 물을 청수통에 붓지 않고 마셔야 하며, 거둔 청수는 바깥의 정해진 곳에 부어서 아귀가 먹게 한다. 발우를 거두는 수발게(收鉢偈)에서는 공양으로 얻은 힘과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며 발우와 수저를 깨끗이 닦아 마무리한다. 죽비를 세 번 치면 발우를 들어 올렸다가 합장반배 한다. 

정신과 현대적 가치

현대인들은 템플스테이나 수련회 등으로 사찰을 찾아 정진하면서 발우공양에 깊이 매료되고, 외국인들 또한 발우공양 체험을 즐겨한다. 특별한 음식도 아니며 오히려 낯설고 까다로운 식사방식인 발우공양이 왜 현대인들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일까. 그것은 기름진 음식이 넘쳐나고 한 끼 밥상의 소중함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교와 식탐이 난무하는 식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먹는 일에 집중하는 특별한 시간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불교의 미덕이 집약되어 있는 발우공양의 정신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째, 발우공양은 음식과 밥 먹는 일에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발우를 펴면서부터 마칠 때까지 거치는 하나하나의 과정은 ‘밥 먹는 일’이 생명을 지키는 필수적이고 귀한 일로, 지극한 감사가 따라야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한다.

특히 오관게를 염송하면서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고한 이들의 공덕과 은혜를 돌아보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렇듯 귀한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음식을 먹는 것이 곧 수행정진과 다르지 않음을 일깨우고, 각자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도록 이끈다.

둘째, 발우공양은 생명과 생태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며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또 다른 생명을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발우공양에서는 밥을 먹기 전에 이러한 연기적 삶을 되새긴다. 정식게에서 음식에 깃들어있는 숱한 생명을 생각하며 이를 청정하게 하는 진언을 외는 것은,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이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깃든 것임을 상기시키며 공양에 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이러한 생각은, 공양을 준비하고 먹는 전 과정에서 생태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공양을 지향하게 된다. 발우공양을 체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꼽는 것이 청결공양이다. 음식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게 먹고, 처음에 받은 물과 발우를 씻은 마지막 물이 똑같이 맑아야 하는 것이 발우공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으니 물자절약이 되고, 별도의 설거지가 필요 없으니 환경이 오염되지 않아 더할 나위 없는 친환경적 식사법인 것이다.

셋째, 발우공양은 독상과 겸상의 미덕을 갖추면서 차별 없이 평등한 식사법이다. 발우공양은 독상이면서 배타적 서열의식이 사라진 평등한 밥상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독상을 받았는데 5첩ㆍ7첩 등 반찬 수에 따른 반상도 독상을 원칙으로 한 것이다. 독상은 지위ㆍ나이ㆍ성별에 따른 차별을 전제한 것이었기에 서열이 다른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이 상물림한 음식을 먹었다. 독상이 물러나고 겸상이 등장했으나, 겸상과 공동식의 친화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 등은 여전히 우리밥상에서 해결하지 못한 화두가 되고 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간 지점에 독상과 겸상의 미덕을 갖춘 발우공양이 있다. 발우공양은 내 밥상을 내가 관장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평등하게 먹는 변증법적ㆍ대안적 식사라 할 만하다.

또한 발우공양을 하는 이는 자신에게 분배된 밥을 나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뭇 중생과 함께하는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부처님에서부터 일체중생에게 올리는 봉반게, 밥을 먹기 전 밥알을 조금씩 덜어 배고픈 귀신들이 배부기를 바라는 생반게, 굶주린 아귀를 위해 베푸는 절수게 등이 그러하다. 이처럼 모든 중생, 굶주린 귀신, 아귀에게까지 차별 없이 평등하게 나누겠다는 마음은 모든 생명을 함께 생각하는 자비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겠다.

▲ 1. 회발계 염송 <사진제공=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 시연=계호 스님(진관사 주지>
▲ 2. 발우를 펼침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3. 청수를 받음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4. 공양물을 나눔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5. 봉반게 염송.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6. 공양을 함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7. 무 조각으로 깨끗이 닦아 먹음.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8. 청수로 발우를 씻음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9. 발우를 닦음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 10. 발우를 거둠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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