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식탐이 금기 이유

 

대승불교권에서 금기시하는 ‘오신채(五辛菜)’는 글자대로 매운 맛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를 말한다. 〈범망경(梵網經)〉은 오신채의 종류를 “대산(大蒜), 혁총(革蔥), 자총(慈蔥), 난총(蘭蔥)과 흥거(興渠)”라고 적고 있다. 모두 생소한 이름인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대산’은 마늘, ‘혁총’은 부추의 일종, ‘난총’은 파, ‘자총’은 달래의 일종이다. ‘흥거’는 미나리과 식물인데 동북아시아에는 나지 않는 식물이다.

오신채는 흔히 스님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양기(陽氣)를 북돋우기 때문에 수행에 방해한다는 게 알려져 있는 이유다. 실제 〈능엄경〉에는 “날로 먹으면 성냄을 야기하고 익혀 먹으면 음심을 일으킨다”고 나온다. 〈입능가경(入能伽經)〉 ‘차식육품(遮食肉品)’에도 오신채를 금해야 하는 이유를 “술과 고기와 파, 마늘, 부추는 해탈을 가로 막는다”며 ‘냄새나고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적고 있다.

초기 교단 마늘 섭취 허용
오신채가 양기와 화를 돋운다는 건 한의학적으로도 일부 근거가 있다. 그럼, 이런 이유로 부처님께서 오신채를 금하셨을까? 앞서 ‘육식 편’에서 언급했듯이 부처님은 음식과 관련해 특정 음식이나 재료에 대해 호불호(好不好)를 하지 않았다. 오직 먹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탁발을 하는 남방불교권은 오신채를 금기시 하지 않는다.

오신채에 대한 부처님 견해는 초기경전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늘을 먹은 한 비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러 법회 장소에 왔는데, 마늘 냄새가 스스로 느낄 정도로 심해 부처님을 마주보지 못하고 얼굴을 돌리는 일이 잦았다. 그 이유가 마늘 냄새 때문임을 안 부처님이 확인해보니 의외로 마늘을 먹는 수행자가 많았다.(혹은 가까이 앉아 설법을 듣던 비구가 어느 날 멀리 앉아있는 것을 보고 그 연유를 확인했다) 이후 마늘·파·부추 등 냄새가 심한 종류의 채소를 먹지 못하게 계율로 정했다는 것이다.

대중생활을 하는 수행자들이 입 냄새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으려던 게 오신채 금지의 계기였던 셈이다. 오신채의 성분으로 인해 금기시했다는 주장과 반하는 이런 내용은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재가불자가 한 비구니에게 다섯 뿌리씩 가져가도 좋다고 하자 비구니들이 우르르 몰려가 불자의 밭에 있는 마늘을 모두 걷어와 버렸다. 황당해진 거사가 부처님께 이 일을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마늘을 먹지 말라고 금하셨다.

특이한 냄새가 나는 마늘·부추 따위의 채소를 ‘훈채(菜)’라고 하는데, 두 경전에서 볼 때 훈채의 성분이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냄새로 인한 대중생활의 피해를 고려했고, 마늘에 대한 식탐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봐야 한다.

브라만교 “훈채 不淨한 음식” 영향
앞서 〈입능가경〉에서 오신채를 ‘더럽고 부정한 음식’이라고 표현하는 등 훈채에 대해 금기시 한 계기는 고대 인도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승불교의 육식 금지가 힌두교·자이나교 등 고대 인도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브라만교의 경전인 〈다르마수트라〉나 고대 인도의 법전인 〈다르마샤스트라〉에는 ‘훈채’를 육류와 더불어 가장 부정(不淨)한 음식으로 꼽는다. 마늘이 닿은 음식조차 먹지 못하게 하고 있다. 힌두 신화에서는 마늘의 부정성(不淨性)과 불가촉성을 보여주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화에서 마늘은 악마의 잘린 머리에서 떨어진 핏방울로 묘사된다. 마늘의 본질이 청정하지 못하고, 마늘이 육식성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아육왕경〉을 보면 아쇼카왕이 병들자 왕비가 마늘을 넣은 음식을 가져오는데, 아육왕이 부정한 음식이라 하여 거부하기도 한다.

결국 육식과 오신채 모두 부처님께서 금기시 한 게 아니라 고대 인도의 금기시하던 문화가 사회적으로 힘을 받으면서 불교가 이를 수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된 후 오신채는 부처님께서 언급한 ‘냄새로 인한 대중생활의 방해’나 고대 인도의 ‘부정한 음식’이란 이유가 아니라 지나치게 기력을 북돋아 음욕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로 금기시된다. 서두에 언급한 〈능엄경〉의 “날로 먹으면 성냄을 야기하고 익혀 먹으면 음심을 일으킨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학자들은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까지는 술과 고기 등이 금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양무제 이후 육식·음주·오신채를 금기시하는 등 계율이 변화한다”면서 “인도와 달리 산중에 모여 대중생활을 하고, 경내에 공양간을 만들어 음식을 조리하는 등의 중국 불교의 특성에 따른 계율의 해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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