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말했다. “섬기는 일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가?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키는 일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을 잃지 않아서 그 어버이를 섬길 수 있었던 자에 대해서는 내가 들은 적이 있지만, 자신을 잃어버리고서 그 어버이를 섬길 수 있었던 자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인들 섬겨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만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섬기는 일의 근본이다. 무엇인들 지켜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만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지키는 일의 근본이다.”

-『맹자』「이루」-

  인간은 자기 성찰적 존재이다. 자신의 언행과 생각과 삶을 돌이켜 살필 수 있는 존재이다. 바로 이 성찰의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생명체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성취를 이룩해 왔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와 보람이 있는 것일까? 과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생을 꾸리는 것일까? 유교는 인간의 윤리 문화적 성숙을 그 대답으로 내 놓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능적 식색지성(食色之性)의 욕망을 제어하고 순화시키는 문화적 성숙을 이룩할 때라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유교에 의하면 그 윤리 문화적 성숙의 근거는 어질 수 있는 잠재력에 있다. 인(仁)이라고 부르는 타자 배려의 잠재력이야말로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제어하고 순화시킬 수 있는 토대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어질 수 있는 면모가 아직은 미약한 잠재적 가능성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없지는 않지만 아직 충분히 힘을 쓸 수는 없는 가능성이므로 그것을 확인하고 계발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그 노력의 과정이 바로 수양이다. 

  수양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개인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차원이다. 개인의 윤리 문화적 성숙과 사회의 윤리 문화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유교의 목표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사회 전체를 인(仁)이 넘쳐나는 윤리 문화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목표인데, 이 목표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윤리 문화적 성숙을 전제로 추구된다. 개인의 윤리 문화적 성숙 노력이 점차 동심원을 그리며 확장되어 마침내 인류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 유교의 이상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이러한 이상을 대변하는 말이다.
 

   맹자는 윤리 문화적 성숙을 위한 개인적 차원의 노력을 ‘자기 지키기'로, 사회적 차원의 노력을 ‘부모 섬기기'로 요약한다. 자기 지키기의 핵심은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어진 마음을 지키고 있는가를 살피는 데 있다. 이기적 충동, 야비한 욕망이 솟구칠 때마다 그것을 제어하고, 따뜻한 타자 배려의 마음을 보호하고 그것에 힘을 실어주려는 노력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을 때라도 이러한 자기 단속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 신독(愼獨) 수양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기 지키기 노력은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로 이어진다. 타인과의 관계, 즉 사회 관계에서도 자기를 향하였던 윤리 문화적 노력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부모 섬기기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용이하게 배려의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어버이라는 혈연 관계를 인(仁)으로 가꾸어 가는 것이 사회의 윤리적 완성을 위한 첫 출발이다. 그저 고리타분한 효도 훈계쯤으로 알았던 부모 섬기기에는 이렇듯 원대한 사상적 기획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불교 3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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