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4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24절기로는 7,8번째 절기인 입하(立夏)와 소만(小滿)이 들어 있다. 입하에는 써레질하여 못자리를 만들고, 소만에는 이른 모내기를 한다. 4월의 대표적인 명칭은 맹하(孟夏)로서 혹은 시하(始夏), 초하(初夏)이다. 모두 여름의 첫 달을 일컬음이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 하여 맥추(麥秋), 맥량(麥凉)이라고도 했다. 꾀꼬리가 찾아온다고 하여 앵하(鶯夏)라고도 했다.
 

4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다. 무논에 써레질 하고, 모심기하고, 이른 모내기 하고, 풀 베어 거름 만들고, 목화·뽕나무 관리하고, 수수·참깨 관리를 한다. 세시풍속과 관련하여 4월의 특징은 실제 생업인 파종, 모내기, 써레질 등과 관련된 풍습은 나타나도 여타 농경의례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만 농사와 직접 관련이 많은 보제(洑祭), 기우제 등이 있고, 간혹 초파일에 오는 비를 통해 풍흉을 점치는 경우도 있다.


4월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4월초파일이다. 일년 열두 달 각양의 풍속이 있지만, 유독 4월에는 불교민속이라 할 4월초파일만이 전할 뿐이다. 다른 풍속이 있어도 주로 생업과 관련된 것일 뿐이다. 이에 4월 초파일의 존재에 대해 단순히 ‘노는날'로 무시하는 민속학자들도 있고, 부처님오신날의 종교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불교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양자 공히 사월초파일의 역사성을 무시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하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 신라, 고려의 연등회(등놀이)-사월초파일-부처님오신날의 관계에 대해 약술하기로 한다.


부처님 생신이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전이 택하고 있는 4월 8일설과 일부 경전이 택하고 있는 2월 8일설이 있다.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권에서는 음력 4월 8일로 여기고 행사를 하고 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음력인 비샤카(Vishakha)달(4월-5월) 보름을 비샤카 푸자(Puja), 즉 부처님의 날로 기리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다(혹은 유행경의 기록에 따라 부처님 4대명절을 모두 2월 8일로 여기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승경전에서는 4월 8일설을 택하고 있으며, 인도나 중국에서는 이 날 행상(行像)과 관불(灌佛) 등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는 기록이 많이 전한다. 행상은 갖가지 장식을 한 마차를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하고 성내를 순행하는 행사인데, 이는 불교의 고유 행사라기보다는 본디 인도의 힌두교도를 비롯한 대중의 일반 풍습이었다. 관불은 <<보요경(普曜經)>> 등에 실린 구룡토수(九龍吐水)의 전설에 따라 행해졌다. 그러나 이 관불, 혹은 욕불(浴佛)은 반드시 생신에만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인도에서는 매일 욕불을 행하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행상과 관불 이외에 중국에서 이 날의 행사로는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절에서의 불아회(佛牙會)나 각종 재회와 수계, 그리고 강설이 있었다.


인도나 중국에서의 이러한 행사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을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는 고려 중기 이래로 연등(燃燈)이 초파일의 주요 행사가 되었다. 본디 연등, 혹은 등놀이는 원시사회 이래 불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승되던 고유의 생산의례이자 놀이였다. 특히 이 놀이는 전기의 도입 이전에는 초롱에 촛불을 켜서 다양하게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고유의 등놀이는 삼국 시대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불교적 등공양과 결합되어 연등회라는 국가적 행사로 정착되었으며, 신라 때에는 주로 정월 보름에 국가적 호국신앙의 일환으로 황룡사 등에서 거행되었다. 고려 때에는 연등과 팔관을 설하기를 당부한 태조의 훈요십조에 따라 해마다 국가적 행사로 거행되었다. 연등회는 정월 보름, 혹은 이월 보름에 행해졌으나, 이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리는 행사는 아니었다.
 

고려에서 4월 8일의 연등 기록은 12세기 중반 이래 말까지 여럿 보이나 초파일 등놀이 행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억불의 조선조 일반 백성이나 도시 상인의 주도에 의해서였다. 조선시대에는 큰 도시나 시장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굉장한 연등놀이를 벌이곤 했는데, 이를 보고 즐기는 것을 관등(觀燈)이라 했다.


서울의 경우 이 날은 야금도 없었으며 종로의 밤거리는 낮과 같이 밝았고 성안의 뭇남녀는 이른 저녁부터 남산에 가서 장안의 현등(懸燈)을 구경했으며, 또는 거리에서 악기를 타면서 노닐었고, 인해화성(人海火城)으로 장안이 시끄러웠다고 한다.
 

왕실이 중심이 된 고려 시대의 연등이 정월이나 이월에 행해진 것과 달리, 민간에서 부처님 탄신일과 결합되어 사월초파일에 등놀이가 행해진 것은 이 시기가 힘든 농사일에서 한숨 돌리고 나서 도시나 장시에 나와 여름 차비를 하거나 구경을 하기에 적당했던 때문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는 초파일 등놀이가 서울 외에도 개성, 평양 등 유명한 옛 도읍과 황해도 평산과 신천, 경기도 수원, 충청도 논산 등에서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대도시에서의 연등행사를 보는 것은 대개의 지방민들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어서 관등에 얽힌 효도설화는 현재까지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각종 세시기류에 전하는 4월 초파일 놀이나 음식, 등종류 등은 약한다.

     

진철승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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