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적 신앙 벗어나 만물과 공생할 수 있도록 육상원융 진리 따라야

붓다는 연기법이 물체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가장 일반적인 물심연기법(物心緣起法)을 발견했다. 이것은 만유의 진리 중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이법이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외부 대상과의 연기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연기는 존재의 한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존재론적 연기가 무위적으로 일어날 경우는 삶의 존재가치를 추구하지만 집착에 따른 유위적인 소유론적 연기에서는 주체가 대상을 지배하거나 주종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현대 물질문명사회에서는 경쟁적인 소유론적 집단연기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연기는 두 개체 사이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대상과 연관되는 집단연기가 연기의 근본이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연기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깊은 연기관계가 존재한다. 인간의 생존은 자연으로부터 청정한 공기, 물, 양식을 보시 받는 연기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과의 깊은 연기관계를 망각하고 인간과의 연기관계 즉 인연관계만을 중시해오는 동안 자연에 대한 삼륜청정(三輪淸淨)한 보시를 행하지 못해 오늘날 지구가 중병의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통감하고 치유책을 찾는 데 불교가 앞장서야 한다.

만물을 포함하는 집단에서 무위적(자연적) 연기관계가 일어나면 궁극에는 구성원 모두가 육상원융에 이르러 화엄세계를 이루게 된다. 즉 각 구성원의 초기 특성을 나타내는 정체성(正體性)이 사라지고 무위적 무질서의 조화가 이루어지면서 집단 전체의 공통된 보편적 특성이 형성된다. 이처럼 모든 구성원이 역동적 집단연기로 이완(弛緩)되면 자타(自他)의 분별이 없어지며 평등해진다.

이처럼 연기적 집단이 이완상태에 이르면 원융무애한 상즉상입(相卽相入)상태에서 무위성, 보편성, 평등성, 이완성이 달성되므로 개체를 보면 전체를 알 수 있고[一卽多] 전체를 보면 개체를 알 수 있는[多卽一] 육상원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모든[總相] 구성원[別相]이 모여 적극적 연기관계를 거치면서 에너지 등분배로 모두가 동등한 존재가치를 지니는[同相] 안정된 이완계[成相]를 이룬다. 여기서 구성원은 각자의 특성[異相]을 지니며, 그 특성에 알맞은 자리에서 자기 역할[壞相]을 수행하게 된다.

육상원융이 이루어진 성단(星團)에서는 무거운 별이 집단 중앙에 모여 강한 구속력으로 집단 전체를 안정되게 이끌며, 작은 별들은 외각에서 빠른 운동으로 집단에 활성도를 높이며 모두가 함께 공존 공생한다. 만약 주위의 섭동으로 별이 이탈하면 성단 전체는 수축을 통해 더 이상 별이 집단을 이탈치 못하도록 집단의 구속력을 높인다. 집단이 클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우주에는 계층적 집단형성을 통한 중중무진의 화엄세계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엄세계의 집단연기적 질서가 현재 지상에서는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의 대기와 땅 및 바다는 심하게 오염되었으며 이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로 각종 생물종은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위기는 전적으로 인간의 탐욕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 불자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어머니의 땅인 지구(가이아)를 살리기 위해 불자들만이라도 이제는 인간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 생의(生意)를 지닌 만물과 함께 공존 공생할 수 있도록 육상원융의 진리를 충실히 따라야만 한다.
                                                                                            / 이시우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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