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기초한 단체 철저한 5계 실천할 때 존립이유·정체성 갖는다

윤세원 인천전문대 교수

새삼스런 질문을 하나 해 보자.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들과 여타의 외도를 신봉하는 사람들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가? 그리고 특정한 목적 수행을 위하여 불교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설립된 사회단체나 조직은 여타의 집단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고, 내부 구성원끼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좀 장황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없다면, 우리는 굳이 외도와 구분되는 불교도라는 명을 가져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다.

필자는 이 구분의 기준이 오계의 실천여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불교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생명에 대하여 좀 더 깊고 넓은 자비심을 가져야 하고(불살생), 약자들을 돕고 보호하는데 더 적극적이어야 하며(불사음, 불망어), 부와 명예에 대하여 덜 탐욕적이고, 덜 폭력적이며 덜 파괴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불투도, 불살생)

그리고 이러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불교적 가치를 토대로 좀 더 효율적으로 세상을 밝고 맑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종류의 조직을 결성하였을 때, 우리는 그 앞에 형용사적 용법으로서의 ‘불교’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것이 명과 실이 일치되는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내부 구성원 상호간에서부터 이 기본원칙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의 구호와 명은 불교인데, 내부에서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은 ‘줄 끄은 호박’이지 결코 수박이 아니다. ‘줄 끄은 호박’은 불교 내부에서 정화되어야 할 대상이지 결코 불교라는 이름으로 수박 행세를 하도록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이러한 목적을 가진 불교계의 다양한 조직체들 중에서 언론 매체나 대학이라는 조직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역할은 불교도들에게 불교도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 자신이 불교도라는 사실에 대한 자긍심을 고양시키며, 전체로서의 사회와 불교적인 삶 사이를 연결하는 담론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그 결과를 전 사회로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조직과 그 구성원들은 불교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하고, 정체성과 방향성에 문제가 있을 때는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자기존립을 위한 최소한 금기를 내부 구성원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러한 일은 그 조직이 내세우는 명분과 그 속에서 진행되는 알맹이가 부합되지 못함을 스스로 만천하에 공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치지향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수박 줄이 그어진 호박이 아닌가를 반성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되고, 특히 불교계의 조직 내부 구성원들의 도덕성은 일반인들보다 그 기준이 훨씬 높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최근 불교계 교육기관 등에서 불교의 기본정신을 외면하고, 세속적인 윤리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패륜적 성격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오계는 고사하고 가장 저차원의 윤리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적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범법행위이다. 사실여부에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 성격과 의미가 반불교적인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다시는 불교라는 이름을 건 집단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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