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불자 여러분! 두루 편안하시지요?
이제 완연한 봄이 온 듯합니다. 계곡마다 얼음이 녹아내려 흐르는 물이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 영양을 더해줍니다. 이 좋은 선물을 받은 초목들은 연두 빛 새싹을 틔워내고, 갖가지 색깔의 꽃을 피워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나무들이 전해주는 이 멋진 선물을 받은 우리들도 세상에 다시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해야 할 터인데, 불자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하고 싶으신지요? 올해는 주변의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불자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혹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고,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가 다른 이웃들이 많지 않습니까? 노동자로 와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든,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이든, 여러분들 중에는 이들에게 혹 불편하게 대하거나 말과 행동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돈을 벌기 위해서든 아니면 흔히 말하는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실현하기 위해서든, 이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온 목적은 서로 다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들이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흔히 ‘3D 업종’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해서 우리 경제가 돌아가고 우리 생활이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또한 갈수록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농어촌의 결혼 적령기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도 배우자가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물설고 낯설고 말도 달라서 의사소통도 어려운 우리나라에 와서 후손을 이어주고 가족을 부양하며 함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제 전국 어디에 가든 이들을 쉽게 만나게 됩니다. 이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인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들을 대하는 자세는 아직도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돈만 보고 왔지!”라며 멸시하고 손가락질을 해대거나, “자기 나라에서는 못 살았을 터인데 우리나라에 와서 호강을 누리고 있는 거지 뭐!”하면서 차별을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얼마 전에는 멀고 먼 이 나라로 시집와서 고생만 하다가 아이까지 빼앗기고 오갈 데 없는 난처한 처지에 놓인 베트남 출신 여인의 이야기가 신문에 나서 우리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불자 여러분!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이웃나라에서 온 이 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역사상 다른 문화를 제대로 수용해서 자신을 발전시켜온 민족만이 강성해질 수 있었다고 전문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여러 다양한 문화가 어울리는 ‘다(多)문화’가 꽃을 피워야 자기 민족 문화도 번창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오늘날이 예전에 없었던 좋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정부나 종교계, 시민 단체 등에서 이들 ‘다문화 가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꼭 필요한 일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입니다.

이들이 ‘돈만 벌어가려고 온 사람들’이나 ‘부자 나라에 시집와서 호강을 누리려고 한 사람들’이라는 삐뚤어진 시각을 고치는 것입니다.

《밀린다왕문경》에 이런 부처님 말씀이 나옵니다.
“갠지스(Ganges)·야무나(Yamuna)·아치라바티(Aciravati)·사라부(Sarabhu)·마히(Mahi)와 같은 강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큰 바다에 도달하면 예전의 이름과 개성을 버리고 그저 ‘큰 바다’라고 불리게 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귀족·바라문·상인과 노동자-네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 또한 집을 떠나 여래께서 알려주신 진리 법과 계율에 따라 집 없는 상태로 출가하고 나면 그들이 가졌던 예전의 이름과 개성을 포기하고 그저 ‘석가족 아들을 따르는 사람들인 수행자들’이라고 불리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그 어떤 큰 강이든지 대양에 도달하면 예전의 이름과 개성을 버리고 그저 ‘큰 바다’라고 불리게 되고 이전에 어느 계층과 종족에 속했었든지 출가 뒤에는 모두 다 똑같은 부처님 제자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태국·우즈베키스탄 등 그 어느 나라 출신이든 우리나라에 와서 함께 어울려 살고 어려운 일을 하며 한국의 미래세대를 이어주는 이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불자 여러분!
올해는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의 이웃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그들이 이 땅에 안착하게 도와주는 좋은 길벗이 되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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