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세계경제의 어려움이 해를 넘기면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견뎌내야 할 고통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비상경제기구를 신설하는 한편 세계경제의 조류에 대응하고자 G-20조정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경제적 위기를 돌파해 나가기 위한 수순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대책이 얼마나 서민의 고충을 덜어주고 국민들의 주름살을 펴게 할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축년 새해를 맞아서도 국민들의 마음이 매서운 겨울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상적 삶까지 덩달아 위축돼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위기의 경제상황을 풀어나가는 공식은 경제계와 정부에 있겠지만 공식으로도 풀리지 않는 해법은 우리 삶에 있습니다. 현하(現下)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실상 인간들의 비도덕적이고도 절제 없는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게 학자들의 진단입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문제를 풀어나갈 해법도 인간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앞의 이익만 좇는 허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뒤돌아보면 인간은 자기중심의 이익에 집착함으로써 본질보다는 현상에 치우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우리’라는 개념보다 ‘나’라는 테두리에 갇혀 당장의 이익과 편리를 추구하다보니 대립과 갈등이 조장되었던 것입니다. ‘나’를 앞세우는 인식은 알게 모르게 습관화돼 개인주의를 불러왔고 이기주의를 팽배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경제위기도 일회성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 향후에도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요인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눈앞의 허상을 좇고 자신만의 이익을 중시하는 행태는 과거에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예화(例話)를 들어보겠습니다.

신라 효소왕 때의 일입니다. 효소왕은 망덕사를 창건하고 낙성법회를 봉행할 때 몸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라한 납의를 걸친 한 비구가 왕에게 다가와 자신도 그 법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왕은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은 비구의 청을 허락하면서 말했습니다. “스님은 다른 곳에 가서 왕과 함께 이 법회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 왕은 자신의 위엄과 체통을 생각해 누더기 납의의 비구를 깔보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답했습니다. “폐하도 다른 사람에게 진신석가를 친견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효소왕의 일화는 현대사회에서도 여러 형태로 비슷하게 재연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외모지상주의로도 일컬어지는 ‘루키즘(lookism)’이 그것인바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3~43세 여성의 68%가 “외모가 인생의 성패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으며 78%가 “외모 가꾸기는 생활의 필수요소”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외모 가꾸기에 하루 평균 53분을 투자하고 있으며 하루 8.3회 거울을 본다고 합니다. 특히 35~43세 여성 중 절반 이상이 외모를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의 절대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왜 이처럼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청소년들은 성형수술을 제1의 선물로 받아들이는가하면 새해 소망 가운데 하나로 성형수술을 꼽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인사담당자 94%가 신규직원 채용 시 ‘외모를 고려하겠다’고 응답한 것을 놓고 보더라도 외형을 가꾸려는 이들을 무조건 탓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업의 상업적 속셈과 신문과 방송 등 대중매체의 부추김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업적 전략이 젊은이들의 가치관과 우리 고유의 건강한 문화를 어떻게 좀먹는지는 계산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의 입장에서만 이익과 즐거움을 누리려는 인간들 욕심의 반영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경제적 위기도 이러한 행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풀어나갈 해법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사섭법이 있습니다. 그 사섭법 가운데 동사(同事)의 가르침을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동사란 협력한다는 말이니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같이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과 일을 하는데 있어서 사회적 신분이나 귀천을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처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지 못한 생각과 상술로 일신뿐 아니라 사회, 넓게는 지구촌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잘못된 군생(群生)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을 잘 지도하고, 또 이들에게 생활의 올바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불자들이 먼저 동사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위기를 풀 해법은 바로 이 동사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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