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 떠나 존재하는 불교는 생명 잃은 종교사업 불과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이다 보니 불자 중에는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세속 일에 관여하기보다는 개인 수양에 힘을 기울여야하는 것이지 갈등을 겪는 이가 있다. 더욱이 요즘처럼 정권이 바뀐 것뿐인데 뼛조각까지 찾아내며 검역되던 미국 쇠고기가 하루아침에 안전한 것으로 포장되고, UN 권고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이면 ‘좌빨’이라 몰아붙이고, 10여 년이 넘도록 국가 안보상 안 된다던 공항 앞의 고층 건물이 특별한 이유 없이 즉시 허가되는 사회가 되면서 새삼 부딪히는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갈등에 대한 답을 부처님은 확실히 보여준다.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은 연기법이며, 연기법이란 우리 모두 개체이건 사회집단이건 중중무진의 관계로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또 싯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깨우친 후 지금 그대로 온전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왜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 설법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허망한 욕망으로 왜곡된 관계에서 생겨나는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사항을 잘 생각해 보아도 불자의 사회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자세마저 명확해진다.

물론 수행이 강조되는 불교의 입장에서 관점에 따라서는 세속일과 무관하게 참선만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권력의 힘이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불자라면 나 자신을 포함해 내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에서 바람직한 관계 형성을 위해 체념 없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의 삶 자체가 이웃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생들의 삶의 현장인 사회와 무관하게 사찰 속에서만 존재하는 불교는 이미 생명을 잃은 종교다. 지식을 다루는 학문과는 달리 종교는 인간의 삶을 말하는 것이기에 우리들의 삶과 분리된 종교는 그저 신도들의 시주로 밥벌이 하는 종교 사업에 불과하다.

불행히도 요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눈과 입이 되어야 하는 방송 언론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간섭이 눈에 뜨인다. 언론은 사회구성원들의 소통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특정 사회가 바람직한 관계로 유지되는 데에 가장 중요하며, 비판적 시각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송 언론을 강압적으로 통제하여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 사회를 왜곡된 관계로 유도하는 지름길이기에 국민에 대한 폭력이다. 바람직한 관계의 단절이나 왜곡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최근 불교언론대책위원회에서 KBS의 PD와 기자에 대한 해고 사태에 대하여 우려의 성명서를 냈다. 어쩌면 이러한 사태는 미국쇠고기의 위험성을 밝힌 PD수첩에 대하여 전체 내용보다는 말꼬리를 따지며 하는 검찰 수사에 담당 부장검사마저 사퇴한 현실과 더불어 시끄러웠던 KBS, YTN의 낙하산 사장 임명으로 충분히 예견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언론인을 해임하고 파면하는 것은 벌건 대낮에 자행된 권력에 의한 폭거 외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불자의 삶은 부처님이 보여준 너와 나의 비폭력적 삶을 위하여 바른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를 위해 노력하며 산속이 아닌 이 세속 사회의 빛이 되는 것이다. 참된 수행이란 삶의 현장을 떠나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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