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 영산대 석좌교수, 前총장 

붓다의 혜안(慧眼)으로 대한민국의 여의도 정치를 본다면 어떤 코멘트가 가능할까? 여·야에게 모두 잘한다고 하지는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붓다는 강대국 마가다의 침략 위협에 놓여있던 공화국 밧지를 위하여 〈나라를 지키는 일곱 가지 법〉에 관해 설법을 한 바 있다.

붓다는 ①나라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갖고 올바른 정사(政事)를 논의하는가? ②군신이 서로 화순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존경하는가? ③법을 받들고 금기를 지키며 예의에 어그러짐이 없는가? 등 일곱 가지를 묻고 그 중 하나만 잘 지켜도 다른 나라가 침략하여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밧지가 이를 다 지킨다고 하니 마가다는 밧지 공격을 포기하였다.

현대 국가에서 국회는 나라의 바른 정사를 논의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선출해준 대표들의 모임이다. 올바른 정사를 논의하기는커녕 파당을 지어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지켜질지 걱정이다. 붓다 당시의 밧지 못지않게 우리나라는 세계 4대 강국의 위태한 세력균형 아래 놓여있고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서민 경제를 살려야 할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아수라장 국회
나라와 국민 위하는
마음 되돌아봐야

여야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도 힘든 정국인데 세계가 지켜보는 속에서 난장판 정치를 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미FTA비준동의안 상정을 놓고 벌인 한국 국회에서의 폭력사태를 보도하면서 이는 한국의 “투쟁적인 잡종 민주주의( feisty brand of democracy)를 표상하고 있다”고 평가했겠는가?

붓다가 설한 나라를 지키는 법 중에서 세 번째인 “법을 받들고 금기를 지키며 예의에 어그러짐이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여의도의 정치인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회는 입법기관이고 법은 지키라고 만드는 것인데 입법기관의 의원들이 망치와 쇠파이프로 신성한 국회 회의실의 문을 부수는 등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공연히 법을 위반하고 있다. 나라를 부수고 망가뜨리는 일이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고 국민의 심판을 포함한 인과(因果)가 두려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업에는 함께 짓는 공업(共業)이 있고 개별적인 업보가 있다. 여의도 정치가 저렇게 되는 것에는 우리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격미달의 사람들을 뽑아 놓은 업보를 우리는 지금 받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타협점을 찾고 국회가 정상화되어 더 나쁜 업보만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받게 되는 책임 즉 업보이다. 나라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등등 그럴듯한 구실과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업보는 그런 명분이 아니라 각자가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지은 행위의 결과를 받는 것이다.

인간사를 지나놓고 보면 그 때 주장하던 명분과 논리들은 희미하게 잊어버리고 그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만 남게 된다. 붓다는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때 묻지 않은 밝고 청정한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라고 설했다.

지금이라도 여의도 의원님들은 인간 본래의 마음을 돌이켜 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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