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차별 탓하기보다
불교계 현실 직시하고
내일 준비해야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문화체육관광부는 종교차별 및 종교편향 사례 등을 모아 편람을 제작해 공직자들의 종교차별 행위를 사전에 예방해 나갈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종교를 절대적 신념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 선교를 선으로 생각하는 공직자가 없다고 보기 어렵기에. 이 때문에 불교계는 공직자의 부당한 종교 차별이나 편향에 대해 감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아무래도 이 일은 불교계 시민단체가 주로 맡아야 할 것이고, 각 종단에서는 이들 시민 단체를 육성하고 후원해야 한다.

설사 공직자들의 종교에 대한 차별이나 편향이 없는 시절이 온다고 한들 우리 사회의 종교 문제가 평화롭기만 할 지 의문이다. 다종교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간의 경쟁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불교계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내일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둑에 물이 스미고 그 둑이 터지는 날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고려가 망하기 약 80여 년 전, 당시 흥청대던 불교계를 향해 미친 듯 외치는 선각자가 있었다. 천태종의 운묵 스님이었다. “위태롭고 위태롭다. 급하고 급하다.” 그러나 이 스님의 외침에 귀 기울인 승려는 없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오백 년 피눈물을 흘렸다. 일제강점시대 만해 또한 외쳤다. 만해는 승려 만의, 불교 사찰만의 불교를 부정하고 대중을 위한 불교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방 공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의 집행부는 대중 불교의 건설을 목표로 했다. 총무원장 김법린은 불교가 비구승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시대의 역행이고 대승불교의 건설이야말로 시대적 요구라고 하면서 새 불교 발전을 모색했다.

그러나 당시의 불교혁신단체들은 비구승단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었다. 대중 불교를 지향하는 교단 측과 비구 승단을 지향하는 혁신 세력 간의 심한 갈등을 거쳐, 1950년대의 정화운동(법난, 분규 등)에서는 불교 대중화 논리가 철저히 배제됐다. 물론 특정 종단의 경우다. 승려 중심의 불교를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불교로 전환해 사찰재산 관리를 신도들에게 맡기고 대도시로 진출하여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종단도 없지 않다.

지금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어떤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 중에 스스로 불교 신도임을 밝히지 못하거나 심지어 개종한 경우도 있다는 소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선 중기에 만들었던 전통 강원의 교과과정으로 과연 21세기를 선도하는 불교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인가? 경쟁과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세속에서 산속의 전통 불교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재가불자의 활동은 또 어떤가? 종교 갈등의 조짐마저 보이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구시대 전통의 고수만으로는 발전하기 어렵다.

“산사로부터 도시에로, 승려 본위로부터 신도 본위로, 은둔적 독선적 불교로부터 사회적 불교로 진출하자.”
80여 년 전의 낡은 잡지에 실린 김법린의 외침이다. 너무나 세상이 변해버린 지금, 빛바랜 주장을 반추하고 있는 심정은 차라리 처연하다. 공무원들의 종교차별이나 편향만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둑에 물이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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