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양(朝陽)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조양은 만리장성(北京)과 요동(沈陽) 사이의 지리적 요충지였던 역사 문화도시인 옛 영주(營州)이다. 그 옛날 모용씨(慕容氏)가 세웠던 전연(前燕)과 후연(後燕)과 북연(北燕)의 수도이자 글안(契丹)의 황성이 있던 곳이다. 또 이곳은 당에게 끌려간 고구려 유민 20만과 글안에게 끌려간 대발해 유민 수만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해체시킨 ‘서남공정’을 마무리한 뒤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의 역사와 문화를 해체시키는 ‘동북공정’(2002~2007)에 착수했다. 그들은 지금 이 지역을 다스려온 고조선-부여-고구려와 대발해 및 요-금-후금-청-만주국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조작하여 자국의 역사로 재편하고 있다. 요하 서쪽(遼西)에 자리한 조양은 고조선과 부여에 이어 동북 일대를 지배해온 대제국 고구려와 대발해의 무대이자 간접통치지역이기도 하다.

우리 ‘한중불교포럼’ 회원들이 준비한 논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불교정책’, ‘고구려 승랑사상의 범위’, ‘북조 불교에 나타난 발해인에 관한 소고’, ‘대발해 문황 이래 발해불교의 동향’이었다.

역사 왜곡에 영향주는
학술발표까지 막는 중국
우리도 강력 대처해야

그런데 학술대회를 주관한 그들은 일정표 안내에는 물론이고 논문집에도 우리의 논문들을 게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발표 당일 학술대회 좌장이었던 같은 기관의 양증문 교수는 ‘고구려’와 ‘대발해’의 ‘영토’ 관련 얘기는 빼고 ‘발해불교의 동향’에 대해서만 발표하라고 했다. 고구려와 대발해 불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러 온 우리는 학문에 대한 이해와 학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들의 무지막지한 ‘횡포’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일본과 대만의 발표자를 언급하며 밀고 당긴 끝에 기조발표를 약속받았다. 그날 오후 주석대에 오른 필자는 짧은 시간 동안 ‘발해불교의 동향’에 대해 발표한 뒤 말미에 “‘학문’과 ‘정치’를 분리해서 봐야만 학문이 성숙해질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이처럼 발표를 온전히 못하게 한다면 왕복항공료를 지불하라고 요청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를 찾아온 그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들은 항공료를 지불할 수 없다고 했다. 8월 하순에 열겠다던 학술회의도 대회 직전에 한 달 뒤로 연기되었다고 통보하였다. 귀국 당일 심양의 요녕대학을 방문해 간담회를 하기로 했던 약속도 그들의  배차 변경과 재배정으로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과시하려 했던 중국인들의 ‘제멋대로의 행동’을 보며 이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다. 우리는 그들의 트렌드인 ‘만만디’가 그냥 ‘늦은 사고방식’이 아니라 ‘속으로 온갖 계산을 다 하며 자기 이익 중심으로 결론을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속내는 ‘국가 간 약속의 잦은 번복’, ‘철저한 자기중심주의’, ‘학문과 정치의 방편적 활용’, ‘역사와 영토의 분리와 탈취’로 요약된다. ‘순진한’ 한국인들이 ‘노회한’ 중국인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가 이번 학술대회 내내 들 수밖에 없었던 화두였다. 역사와 영토의 분리로 겪는 우리 ‘한고려’(통일 이후 국호, 윤명철 案)의 슬픔과 고통을 언급하며 한국은 ‘조선족’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느냐며 큰 소리로 원망하던 조선족 장학사의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쟁 들려오고 있다.

고영섭 한국불교사연구소장·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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