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인사 민심 수렴이
대통령 리더십 살리는 길
근본적인 인식 전환해야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에 몇 번 ‘새 대통령에 대한 바람’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심할 정도로 대통령의 독주를 경계하는 내용의 글들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위상과 본질에 대한 인식 부족이 너무 심각하게 드러나는 일들이 많아 “이 정권 끝까지 가겠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위 분들은 “에이, 무슨 말이야!”하며 일소에 붙였었다. 이제는 그분들이 “이러다 성 교수 말 정말 맞는 거 아니야?”라며 나를 예언자로 만들려 한다. 제발 그런 예언자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던 중, 지난 7월 4일 열렸던 시국법회의 자료를 입수해 보던 중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문구를 발견하였다.

“모두 부자 만들어 준다는 말에 속아서 온갖 탈법을 저지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허물을 참회하며….”

불교계에 언제 이렇게 강렬한 정권 비판이 있었던가? 참으로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동안은 불교가 너무도 정치적인 데 무관심하여 신도 수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정치적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자괴감을 느끼곤 하였던 내가, 왜 이렇게 강렬한 메시지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우선은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며 고군분투하던 분들의 그동안 쌓였던 분기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과정에 좀 앞서 나간 듯한 점이 보였다. 한편으론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런 때일수록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의 반성도 있었다.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온갖 탈법을 저지른’ 이라는 수식어를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모자 씌우듯 쉽게 덮어 씌워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급하게 강열한 어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근본적인 잘못을 충분히 지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드러난 근본적인 문제가 이런 용어로 인해 오히려 덮이지 않을까?

참회를 해야 한다면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말’에 속은 것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다. 불교계로선 서울시를 하느님께 통째로 바치겠다고 했던,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종교적 편향성을 눈감고 지나갔던 것을 가슴 치며 반성해야 한다. 오로지 그것만을 문제 삼아서는 또 안 되겠지만, 한 번도 제대로 따져 묻지도 않고 불교계가 대통령 만드는 데 앞장섰던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대통령이 다니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인맥들이 요직들을 독식하다 시피 장악하고, 알게 모르게 불교를 소외시키는 여러 양상들이 벌써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종교적 관용성의 문제가 아니다. 다종교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원칙을 깨뜨리면 결국은 종교 간의 끔찍한 증오와 분쟁이 우리 사회를 사람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아무튼 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에게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오기를 바라는데, 아직까지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과감한 추진력이라는 장점은 치우치지 않은 인사와 성실하게 민심을 살피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고 싶다. 제발 이번 사태가 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성 태 용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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