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향 소통 이뤄지면 국민들 공감 얻을 것, 국민섬김 직접 보여야

대통령과 국민들 사이에 현안을 보는 인식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집권층 내부의 분열이 더해지면서 국정이 총체적 난맥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요한 국가적 현안들에 대한 다수의 우려를 과감하게 일축하고 ‘나를 따르라’며 의기양양했던 대통령의 모습은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고, 탈출구 없는 사면초가의 ‘쇠고기 정국’에 빠진 ‘위기의 6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참으로 기막힌 반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당선 직후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고, 국민들은 이 말에 한껏 감동되었었다. 그러나 그 감동의 시간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에 국민들은 대통령의 ‘낮은 자세’가 실제로는 별로 낮지 않으며, ‘국민을 섬기는’ 방식과 내용은 국민들이 반가워하거나 기대하는 섬김이 아니라 그다지 원하지 않는 ‘섬김’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이는 대통령의 말이 국민들의 마음에 진솔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하나의 립스비서로 치부되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소위 말하는 진정성의 부족은 촛불민심으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연일 CEO형 리더십의 독선과 아집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취임 100일을 갓 넘긴 대통령이 이토록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된 경우는 그 예를 찾아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통령 자신의 진단은 소통부재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도덕적 기준에 소홀했다”고 반성했다.

소통이란 막힘없이 잘 통하는 것을 뜻한다. 즉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문제의 발단이 소통의 부재에 있다면, 소통의 길을 열어주면 된다. 이 소통의 길은 진정성이 담보된 마음의 길이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길이 열리면 공감(共感)을 얻게 되고, 공감을 얻으면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입으로는 반성하고 소통을 강조하였지만,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일, 즉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공감을 얻지 못하면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다.

소통은 말이나 강요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며, 일방통행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쌍방향적인 것이다. 말로는 섬김을 외치면서 진정으로 섬기지 않았고, 귀 막고 눈 감은 인사와 정책에 절망한 시민들의 촛불은 점점 광풍으로 변해갔다. 대통령은 자신의 신을 섬기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일은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아마도 ‘자수성가’라는 그의 인생여정에 내재된 함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컨테이너 장벽의 등장은 이러한 모습의 절정이다. 이는 소통의 길이 아니라 단절의 선택이다. 이는 불통의 선택이지 어떠한 논리와 변명으로도 소통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명박산성(明博山城)’으로 이름 붙여진 소통되어야 할 당사자들을 단절시킨 컨테이너 장벽이 누리꾼에 의해 이명박식의 소통이라며 조롱거리가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문화 축제형 촛불시위는 당선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훨씬 진전된 새로운 차원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 땅의 지도자들이 이 새로운 정치문화의 의미와 파급효과가 주는 교훈에서 시대 전환의 함의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더 가혹한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윤세원 시립인천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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