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한 보살서원, 정치적 각성 통해 시민의식 승화돼야

뭇 생명을 뜻하는 衆生(薩/살타, sattva)의 불교적 용례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깨달은 자(覺者, buddha)와 대비되는 범부우치로서의 중생이라는 용례다. 흔히 어리석은 행동이나 집단을 가리켜 ‘중생놀음’이라 하는 것도 중생이란 용어가 함의 하고 있는 부정적 속성인 ‘어리석음’ ‘탐욕’에 그 의미론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중생’이 함의하고 있는 부정적 의미는 원죄(原罪) 의식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죄인’이라 반성하는 기독교의 경우와는 그 종교적 문법이 다르다. 불교에서 중생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시원(始原)과 본질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마땅히 지향해야 할 ‘깨달음’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修辭的)장치라고 할 수 있다.

불보살의 구제 대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중생성을 자각하고 수행의 주체로서 깨달음을 지향하는 새로운 존재가 바로 ‘보디-사트바’(깨달음을 지향하는 존재/중생) 곧 보살이다.

중생적인 삶에서 보살에로의 개전(開展)을 정치사회학적 맥락에서 본다면, 백성에서 시민으로의 발전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성이 통치 행위의 ‘대상’이었다면, 시민은 정치의 주체이다. 마찬가지로 보살은 구원의 ‘대상’ 이 아니라 구원의 능동적 주체인 것이다. 보살정신은 현대 사회가 요청하고 있는 시민의식의 불교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보살정신은 수행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주체적 시민의식의 차원으로 까지 그 의미의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 요컨대 보살이 정치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보살의 정치적 각성, 이것이 바로 수연불변(隨緣不變)하는 불교적 정신의 현대적 실천이요, 수처작주(隨處作主)하는 불교적 삶의 방식이라 할 것이다.

중생과 보살이라는 불교 용어를 굳이 정치사회학적 개념으로 재구성 하고자 하는 것은 대선이후 전개되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 행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종교적 편향을 보여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이었다. 이후 대선주자 시절에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종교 편향의 발언과 행태를 보여왔으나 불교계는 필요 이상의 관용적 태도로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고소영’이니 ‘강부자’ 등으로 희화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공직 인사의 문제점이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종교 편향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거론하고 있지 않다.

항간에는 그간 봉황 무늬 대통령 표장(標章)을 없앤 것이 우상 숭배를 우려한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하는 소문도 있다. 이 대통령의 식견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평소 보여 왔던 기독교 편향의 행태가 이런 소문을 낳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사회에서 종교 간의 균형은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헌법에 보장된 종교 선택 자유의 정책적 구현이며, 다양한 가치와 이념의 추구를 보장하는 정책적 실천이다. 주요 공직자 인사에 있어 특정 종교의 편중 현상에 대해 더 이상 불교계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불교계의 몫을 챙기고자 함이 아니라, 보살정신의 현대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보살정신은 정치적 각성과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 정신을 통해 시민의식으로 거듭 나야 할 것이다.

조성택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