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근기 따라 생명 실상 설법

빗물은 부처님 자비의 법음
초목은 중생의 다양성 상징
모든 존재의 근원은 空
그래서 모든 존재는 평등

법화칠유의 하나로 삼초이목의 비유가 있다. 〈약초유품〉에 나오는 이 비유는 중생을 초목에 비유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자비를 대상을 분별하지 않고 내리는 빗물에 비유하고 있다. 약초유품의 전체적인 해석에 대해 천태는 두 가지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첫째 이행과(理行果)로 약을 삼는다고 해석하는 경우다. 이것은 이치와 수행과 그 결과로 약을 삼는다는 뜻인데 여기서 이치는 회삼귀일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자 일체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공하다는 점을 말한다. 행은 수행을 지칭하는데 《법화경》에서 중시하는 수행은 우선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암송하고 해설하고 사경하는 것이다. 《법화경》 〈분별공덕품〉에 의하면 수희, 독송, 설법, 겸행육도, 정행육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 얻어지는 과보는 일승의 세계요 제법실상의 세계다.

두 번째 약으로 법을 비유하고 풀로 근기를 비유한다고 해석하는 경우다. 여기서 약으로 삼는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 가르침을 통해 오욕락에 빠진 우리 자신을 돌이켜 해탈의 경지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풀을 근기로 비유한 것은 삼초이목의 비유에서 중생이 풀이나 나무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구절을 소개한 뒤에 자세한 설명을 더하기로 하자.

“가섭아,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골짜기와 땅 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나 숲, 그리고 약초가 많지마는 각각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느니라.

먹구름이 가득히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고, 일시에 큰 비가 고루 내려 흡족하면, 모든 초목이나 숲이나 약초들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과,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과,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이며, 여러 나무의 크고 작은 것들이 상중하에 따라서 제 각기 비를 받느니라.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그들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자라고 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나니, 비록 한 땅에서 나는 것이며, 한 비로 적시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 풀과 나무가 저마다 차별이 있느니라”

이상의 인용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구절은 크게 비와 초목, 그리고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골짜기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는 부처님의 자비의 법음(法音)이며, 초목은 중생의 다양성이며,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골짜기는 법계(法界)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설법을 통해 생명의 실상을 가르친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상에 따라 천차만별이 아닐 수 없다. 취미도 다르고, 관심도 제 각각이다.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능력도 동일하지 않으며, 지니고 있는 개성이나 소질도 다르다. 그런 점에서 《법화경》이 중생을 초목에 비유한 것은 절묘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은 그러한 중생들의 성품과 욕망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의 근기에 따라 설법을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한결같이 생명의 실상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경전에선 동일한 풀과 나무에도 크고 작은 것이 있다고 가르친다. 초목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예로부터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상초(上草), 중초(中草), 하초(下草)와 대수(大樹), 소수(小樹)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도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천태의 해석에 의하면 소초는 인천승이며, 중초는 성문과 연각승이며, 상초는 보살승이다. 소수는 통교의 보살이며, 대수는 별교의 보살이다. 삼론종의 길장은 약간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데, 소초와 중초는 천태와 동일하게 해석하지만 상초를 보살승 중에서 지전(地前)의 40심(心)으로 해석한다. 소수는 초지보살이며, 대수는 칠지보살이라 본다.

이 구절에 대한 천태의 보다 상세한 해석을 소개하기로 한다. 즉 뿌리는 믿음, 줄기는 계율, 가지는 선정, 잎은 지혜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제 위에서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을 인천의 믿음과 계율, 선정과 지혜로 간주한다.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은 2승의 믿음과 계율, 선정과 지혜로 정의한다.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은 보살의 믿음과 계율, 선정과 지혜로 정의한다. 이하 통교보살과 별교보살의 믿음과 계율, 선정과 지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당나라 때 활약한 법상종의 규기는 삼초이목을 5성각별설로 해석하면서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그들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자라고 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나니’라는 구절에서 ‘자라고 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나니’라는 구절을 매우 멋지게 해석하고 있다. 즉 “자란다[生]는 것은 사람들의 처음 마음[초발심]을 비유한 것이다. 큰다[長]는 것은 그 뒤에도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이치를 깨달아 그 열매를 얻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람이 처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생명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그러한 것에 궁금증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맹목적인 삶의 의지 속에 갇혀 살게 된다. 감각적 허상과 정신적 허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렇지만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인연을 맺어주면 그 다음에는 각자의 근기와 환경에 따라 일정한 과정을 거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규기는 그러한 점에 주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삼초이목의 비유를 통해 간과해선 안 되는 중요한 교훈이 또 있다. 그것은 상대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의 자비의 법우(法雨:진리의 비)를 근기에 따라 수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근본적인 차별의 이유는 아니다. 삼초이목이 우주 법계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대로 법계를 장엄하는 것이며, 그와 같이 현상적인 차별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차별상의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법화경》에서 말하는 일승이나 불성이 그것이다. 〈약초유품〉에선 “마치 저 구름이 모든 것에 비를 내리면 풀과 나무와 숲과 약초들이 그 종류와 성질대로 비를 맞아 제 각각 자람과 같으니라. 여래가 설한 법은 한 모습이며 한 맛이니, 이른바 해탈의 모습과 여의는 모습과 멸하는 모습이니 필경에는 일체종지에 이르는 것이니라”라고 표현한다.

하나의 모습, 하나의 맛, 해탈의 모습, 번뇌를 여의는 모습, 적멸의 모습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하면 공에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은 공이며, 그렇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런 점에서 현상적인 차별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평등의 입장을 무시해선 안 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본질적인 차원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한 것이기에 상대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찬탄해야 하는 것이다. 범위를 인간세계에 국한시켜 말하자면 성별, 인종, 지역, 국적 등등의 외형적 차이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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