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도 강조한
대승불교 실현위해
예불문 가다듬자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일년의 할 일을 알차게 설계하고, 그 실천을 다짐하기 마련이다. 지난 해의 어려웠던 나라 형편과 힘겨웠던 불교계의 사정을 돌아보아, 지금은 정말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평안하고 즐겁게 살겠다는 서원이 절실할 때다. 그래서 우리 사부대중으로서는 이른바 보살행을 위한 발원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이다.

기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도를 강조하고 육바라밀을 통하여 보살행을 강력히 권장·실현케 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선 그 발원을 하고 불보살님께 기도를 간절히 올린다. 그 기도는 개인적인 염불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으레 새벽·점심·저녁의 삼시 예불로 정형화되었다. 이 예불의 기도 내용은 바로 예불문에 잘 나타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예불문은 크게 보아 삼보전에 지심으로 귀명하는 내용이다. 이만한 예불·기도라면, 그 발원이 헛되지 않고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런 보살도를 따라 보살행을 실현하려면 보살님께 직접 발원·기도하는 것이 최선이요 상책이다. 그러기에 예불문을 모실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기실 그 권능이 가장 높은 무량한 보살님들께 기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실은 그 예불문 중에서 보살 조문이 제일 간략 ·부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심귀명례---시아본사 석가모니불’에서 ‘---상주 일체 불타야중’을 거쳐 ‘---상주 일체 달마야중’까지는 완벽하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보살 조문에서는 ‘지심귀명례 대지 문수사리보살 ·대행 보현보살·대비 관세음보살·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로 끝나서 오히려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승가 조문에서는 ‘지심귀명례---제대 아라한 무량 자비성중’에서 ‘---일체 미진수 제대 선지식’을 거쳐 ‘---상주 일체 승가야중’이라고 입체적으로, 아주 자세히 거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보살 조문은 상대적으로 빈곤할 뿐만 아니라, 그 균형을 완전히 잃었다.

이 보살도·보살행을 위한 기도에서보다 많은 보살님들을 염하여 발원·기도해도 오히려 부족할 판인데, 이렇게 푸대접하고 홀대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보살님들께 바치는 신심과 정성으로서는 부족하기 짝이 없고, 이만저만 잘못된 일이 아니다. 사실 중생심이 보살심인데, 이러한 기도가 얼마나 참된 것이겠으며, 따라서 그 보살님들의 가피가 얼마나 절실하고 크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정통불교 조계종이 통일 제정한 예불문에서 이러한 보살 조문의 불균형·홀대를 방치하여 오니, 사부대중이 보살님들께 드리는 기도가 실질적으로 부실하기 비할 데 없었고, 따라서 보살님들의 감응·가호가 그만큼 부족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 불교계에 불안한 일이 생기고, 부정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나, 참회해야만 되리라. 이제 그냥 참회한다고 말로만 하고, 예불문의 권위와 체면에 집착하여, 알고도 모르는 척 그대로 밀고 나가야만 하겠는가. 아니다. 이를 하루 속히 보완해야 된다. 우리의 마음을 사심없이 열기만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기 때문이다.

기실 이 보살 조문에서 ‘대비 관세음보살’에 짝하여 ‘대력 파사 세지보살’ 정도를 넣어 좌우 보처가 상응토록 하고, 나아가 불교계에 ‘파사현정’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 일이다.  이렇게 보완된 예불문을 통하여 보살행을 발원·실천한다면 신행생활이 올바로 활성화될 것이다.

사재동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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