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만해학술원장·경희대 교수

최근 대선전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마치 온 나라가 대선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정치가 국민을 안심시키고 상생하는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며 역사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터인데 사생결단, 이전투구를 일삼는 모습만 주로 보았기에 그런 생각이 아니들 수 없었다.

이제 대선 잔치는 끝났다. 어찌됐든 간에 서로 가슴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원망과 미움, 어리석음의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서로 승복하며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래선지 문득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 ‘사랑하는 까닭’이 떠오른다. 이 시는 참사랑과 참생명의 길을 아주 극명하고 알기 쉽게 일러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이젠 우리 모두가 진정한 생명사랑, 상생과 사랑의 철학, 평화의 실현의 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리라.

한마디로 필자는 그것을 ‘진정성의 시혼’이라 부르고자 한다. 오늘날 기계문명과 물신주의 등이 범람하는 가운데 현대인들은 단절과 소외, 불안과 방황 속에서 서로 불신하고 좌절하며 증오와 방황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인 삼독(三毒)을 품고 살아가고, 집착과 애착, 원착(怨着)인 삼착(三着)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불쌍한 중생의 모습으로 해 저문 벌판을 헤매는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 ‘사랑하는 까닭’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참 인간회복에의 길, 참 생명사랑의 길로서 ‘진정성의 시혼’을 낮고 그윽한 목소리로 일러줘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다.

인간 내면의
3독·3착 털어내고
진실하려 노력해야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표징으로서 진실성과 성실성, 치열성과 일관성을 가치덕목으로 해 성립되는 것이다. 진실성이란 진실되고 착하며 아름다운 것으로서 진ㆍ선ㆍ미의 실천규범과 정신자세를 의미한다. 인간인 한 100% 진실한 사람은 없지만 진실하고 착하며 아름답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진실성을 보여주는 길이다. 성실성이란 매사에 성심성의를 다하려는 노력의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의미한다. 치열성이란 해야만 하는 일에 온 정열을 바치는, 목숨까지도 헌신할 수 있는 소신공양적 불태움의 자세를 말한다. 순사, 순국, 순교를 비롯해 연구를 위해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 연구실의 등불, 영하의 추위 속에서 전선을 지키는 병사들, 그리고 고통의 단근질을 이 악물고 견뎌내는 환자의 인내심도 그러한 치열성의 단적인 표상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덕목은 일관성이다. 온갖 역경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마음 자세, 세상의 온갖 유혹과 탐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절을 변치 않는 정신의 곧은 자세야말로 사람의 믿음과 존경을 자아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삼독과 삼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부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수인생, 그러나 이러한 진실성, 성실성, 치열성, 일관성을 지니고 또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진정성의 시혼을 지키는 인류정신의 파수꾼이자 등불이 아닐 수 없다.

만해 스님의 시 ‘사랑하는 까닭’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바로 이런 진정성의 삶을 살아가라 하는 교훈이자 지혜의 말씀이 아닌가 한다. 바로 이런 진정성을 지닌 분이 만해 한용운 선생이기에 나는 오늘도 그분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시편들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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