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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삶의 현장서 중생과 함께 해야
대중들 삶의 방향
제시하는
참 종교 되자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마련한 공식 호스피스 교육 과정에 강사로서 모처럼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타 종교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체계적으로 조직화돼 임종을 앞 둔 이들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국내 최대 종단인 조계종 내에서는 그러한 교육과정이나 운용 제도가 없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공식적인 첫걸음을 시작했다는 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중세 기독교의 모습처럼 종교가 일반인들의 삶을 위해 존재하지 못하고 이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유리돼 존재할 때 그것은 관념적이다 못해 억압으로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과거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 중에 보였던 미약했던 불교계의 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종단 개혁을 거쳐 지금에 이른 한국 불교계 역시 얼마나 우리의 삶과 하나 되어 있을까?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불교계가 일반인들에게 사표가 되기는커녕 사회 속의 작은 이익 집단에 불과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배아줄기 사태 과정에서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불교계의 출가자들이 타 종교인들보다도 못한 생명관을 지닌 채 당장의 이익을 위해 길거리로 나오는 모습과 더불어 최근에는 조계종립 대학에서 발생한 교수 임용과 관련해 서로 비방하고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는 모습이 공공매체를 통하여 방영되고 있다.

과연 한국불교에는 중생의 삶을 이끌고 방향을 제시할 생명력은 있는 것일까? 이들이 신도들의 신심에 의지하여 편하게 살고 재산이나 모으려는 이익집단이 아닐 바에는 종교인으로서 이 사회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위를 보면 특정 종단을 떠나 많은 스님들이 알게 모르게 헌신적으로 참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불교를 접하는 것은 종단으로 대표되는 전체 모습이기 때문에 종단이 사회의 귀감이 되지 못하고 일반인들의 삶과 함께 하지 못하면 그것이 곧 한국 불교계의 모습으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보였던 불교계의 모습이 사회적 상황이 바뀐 지금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우리의 삶과 분리돼 참된 종교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 모습이라면,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속에서 한국불교는 자신들의 집단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퇴색한 종교 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진리와 깨달음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일반인보다도 더 우매하고 부끄러운 행태를 연출하고 있는 한국불교계에 대하여 참 종교로서의 기대를 지니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에 종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호스피스 교육과정과 체계를 갖추고 일반인들의 삶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모처럼 한국불교 안에 있는 작은 생명력의 씨앗을 본 것 같아 참으로 즐거웠다면 필자의 지나친 이야기일까? 이제 작은 첫걸음일지는 몰라도 지금과 같이 퇴색된 이익집단으로서의 한국불교가 중생의 눈물을 어루만지며 깨달음의 삶을 제시하는 사표로서의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민초의 삶과 함께 하며, 더 이상 진정한 지혜가 필요한 삶의 현장에서 ‘스님, 당신은 어디 계신 것입니까'란 질문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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