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비자금 로비의혹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발표된 이 사건은 일부 정치권의 반부패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야는 각기 다른 입장에서 국회에 특검 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삼성은 브랜드 가치가 높은 세계 100대 기업 중에서 21위의 기업이며 총자본규모가 우리나라 시장규모의 5분의 1이나 되는 초일류 대기업이다.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이런 기업이 이상한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에서는 선입견(相)을 비우고 사물을 보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사건을 잘 살펴보면 세 가지 문제가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기업의 불법로비의혹 사건을 밝혀내는 일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공방이며 셋째는 변호사와 공직사회의 직업윤리에 관한 것이다. 양심선언은 삼성이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하여 사회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엄청난 불법 로비를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 진위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검찰은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반부패운동 운운하지만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세력이 부패를 척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아마 드물 것이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수사를 방해하거나 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 사건은 로비사건에 국한하고 엄정하고 빠르게 수사를 종결지어야 한다. 수사가 장기화되고 정치쟁점화된다면 경제5단체가 우려한 것처럼 “진실여부를 떠나 우리 기업의 이미지 손상과 대외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다.”

양심선언은 용기 있는 일이며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의 경우는 다르다. 신부가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호사는 고객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법이전의 직업윤리의 문제이다. 변호사 또는 변호사였던 자가 고객의 비밀을 지키지 않는 일을 이 사회가 부추긴다면 변호사라는 직업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또한 기업의 로비에 응해 소위 떡값을 받은 검사가 많다는 폭로는 우리 사회 공직자의 기강과 윤리의식이 어느 정도 타락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부패 없는 깨끗한 사회를 위해서는 이 사회를 주도하는 정치인과 공직자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경에 이르기를 한마음이 깨끗하면 여러 마음이 깨끗하고 여러 마음이 깨끗하면 세계가 깨끗해진다고 한다. 양심선언이 사실이라면 왜 기업이 그 많은 돈을 들여 말썽 많은 로비활동을 했을까.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규제하고 기회만 있으면 수탈하려는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과 공직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삼성불법비자금 로비의혹 사건의 진상은 철저하게 진상이 밝혀지고 범법자에게는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장기화되고 확대되어 국민경제에 주름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은 정치와 공직사회의 타락과 부패에 있다. 기업을 매도하기 이전에 정치권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중지하고 검찰수사에 맡기는 것이 바른 일인 것 같다.

정천구 영산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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