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생각일 뿐
함몰되지 말고
직시해 끊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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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란 무얼까? 행복의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심리적 안락, 즉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도 청정부동심(淸靜不動心)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맑고 고요한데 안팎의 자극에 휘둘리면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고 산란하다. 더구나 매일 수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복잡한 사회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대인의 마음을 가장 산란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번뇌는 바로 걱정이다. 돈 걱정, 자녀 걱정, 업무 걱정, 건강 걱정, 인간관계 걱정에다가 스케일이 큰 사람은 나라 걱정, 세계정치·경제 걱정, 지구환경 걱정까지 더해서 마음이 산란하다.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 누워서도 여러 가지 걱정으로 편안하게 잠들지 못한다.

걱정이라는 번뇌

걱정은 미래에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걱정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미리 문제해결 방법을 모색하도록 돕는 유익한 부분이다. 그러나 걱정이 지나치면 스트레스가 되어 괴로움의 원천이 된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걱정을 하며 살아가지만, 사람마다 걱정하는 주제가 다를 뿐만 아니라 걱정의 빈도나 강도가 각기 다르다. 요즘 심리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내담자 중에는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 40대 주부인 K씨는 왠지 늘 초조하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자주 느끼며 여러 가지 일로 걱정이 많다. 예를 들면, 남편이 직장에서 실직하지 않을까? 자녀가 학교에서 싸우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가족들이 병들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시집식구나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도둑이나 강도가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비롯해 사소하게는 자신이 만든 음식이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어떡하나? 물건을 비싸게 사면 어떡하나? 등 일상생활 전반에 대해 크고 작은 걱정이 많다.

K씨는 이러한 걱정이 때로는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걱정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늘 절벽 옆을 걷는 듯이 아슬아슬한 불안 상태에서 긴장하게 되어, 특별히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저녁시간이 되면 몹시 피곤하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생활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K씨의 경우처럼 과도한 걱정과 불안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 경우를 ‘범(汎)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라고 부른다. 범불안장애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넓게 퍼져있는 불안을 나타내는 장애라는 뜻이다. 상위범주인 불안장애에는 범불안장애 외에도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두려워하는 공포증, 다른 사람의 부정적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회불안장애, 갑작스럽게 죽을 것 같은 강렬한 공포를 경험하는 공황장애, 사랑하는 사람과 공간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리불안장애 등이 있다. 범불안장애는 다른 불안장애와 사촌지간이라서 증상이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다른 불안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다.

범불안장애를 지닌 사람의 주된 특징은 매사에 걱정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사소한 일에도 잘 놀라고 긴장한다. 따라서 늘 과민하고 긴장된 상태에 있으며 짜증과 화를 잘 내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때로는 지속적인 긴장으로 인한 근육통과 더불어 만성적 피로감·두통·소화불량·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들은 우유부단하여 선택이나 결정을 잘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꾸물거리는 지연행동을 나타내어 현실적인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삶이 몹시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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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증폭시키는 요인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의 가능성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자동차가 급발진으로 들이닥칠 것을 우려하고, 산에 가면 뱀에 물릴 것을 걱정하며, 사소한 통증도 심각한 질병의 징조로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이들은 그러한 위험이 실제로 발생할 확률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이 실제로 발생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돼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걱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래의 위험을 예상하고 미리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에 큰 위험을 당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과도한 걱정은 적응을 방해한다. 시험에 대한 걱정이 많은 학생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험장에서도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위험 가능성을 감지하면 ‘이런 위험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떡하지?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지?’와 같은 의문을 연쇄적으로 제기하면서 점점 더 심각한 걱정으로 가지를 펼쳐간다. 이처럼 걱정하는 사고방식이 습관으로 형성되면 걱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걱정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걱정이 자꾸 마음에 침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상을 하기 위해 정좌를 하지만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은 채 자꾸 이런저런 걱정이 침투해 산란해진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마음은 온 세상을 헤매고 다니며 갖가지 세상사에 대해 걱정한다. 그래서 걱정이 많은 사람은 마음을 편안히 쉬기가 참으로 어렵다.

걱정은 미래의 위험에 대한 생각일 뿐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걱정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유사한 심신반응을 유발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고-사건 융합(thought-event fusion)’이라고 부른다. 위험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실제의 사건에 직면한 것처럼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서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걱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불필요하게 흥분시키며 고통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면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심장마비와 연결시켜 걱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서 심장은 더욱 강하고 빠르게 뛴다. 그러한 신체적 변화를 심장마비의 징조로 확신하게 되면 죽을 것 같은 공포, 즉 ‘공황발작(panic attack)’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내용과 빈도를 조사한 미국의 심리상담사 어니 젤린스키(Ernie Zelinski)에 따르면, 걱정의 40%는 결코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22%는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이고, 4%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이며, 걱정의 4%만이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96%는 불필요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걱정을 감소시키는 수행법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평정심을 얻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대부분의 불교 수행방법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혀 평정심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명상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달라붙는 걱정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몸을 사용하는 108배나 좀 더 집중하기에 용이한 염불·독경·사경 수행이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걱정으로 인한 산란심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이다. 절이나 명상센터에서는 집중이 잘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현실적인 걱정들이 몰려오면서 마음이 산란하고 복잡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불교수행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꾸준히 들여다보며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우선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할 때는 그렇게 만드는 생각[상황]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하, 내가 걱정을 하고 있구나. 그래서 불안해하며 긴장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걱정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걱정에 함몰되지 말고 사고-사건 융합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자신의 걱정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걱정하는 문제에는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행동을 통해 조속히 바꾸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만 많이 할 뿐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티베트에 “걱정한다고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함으로 인해 자신의 키를 한 치라도 키울 수 있느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욕심도 많은 경향이 있다. 많은 일을 벌이고 도모하기 때문에 신경 쓰며 걱정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걱정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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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에 담긴 깊은 의미

걱정이 많은 사람 중에는 과거에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갑작스런 가족의 사망, 예상 못한 치명적 사고, 실수로 인한 중요한 시험의 실패,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한 수치스러운 경험은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앞에서 소개한 K씨의 경우도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오랜 기간 가난과 불행 속에서 고통 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처럼 충격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세상은 위험한 곳이며, 언제든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 깊은 곳에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사소한 단서가 이러한 상처와 믿음을 자극하면 불길한 생각과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걱정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깊을수록 걱정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과거의 상처는 흔히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노력으로 치유하기 어렵다. 현재의 걱정이 과거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도록 돕는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 것이 심리상담자의 역할이다. 과거의 상처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슬픔과 공포 그리고 분노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자각하고 표현하면서 심리상담자로부터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때 비로소 내담자는 마음의 상처가 가벼워짐을 경험하게 된다.

걱정은 대물림을 통해 자녀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걱정이 많은 부모는 자녀에게 수시로 위험을 인식시키며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주의를 준다. 그러한 양육의 결과로 자녀는 부모의 걱정하는 습관을 물려받게 된다. 이처럼 걱정을 비롯한 많은 심리적 장애는 세대 간 전이를 통해 대대손손 자손에게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부모의 업(業)이 자녀에게로 이어지는 것이다. 면밀히 살펴보면, 한 사람의 걱정 속에는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조상들의 심리적 상처와 걱정하는 습관이 담겨있다. 〈화엄경〉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톨 먼지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걱정이라는 한 생각 속에 수많은 조상들의 삶과 마음의 상처가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현재의 심리적 장애를 해결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조상의 업장을 해소하는 것인 동시에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는 악업을 단절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석만 -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유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 이상심리학〉·〈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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