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중흥의 꿈 담긴
미륵사의 디지털 복원은
실제 복원 향한 첫걸음

2019년 4월 30일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 사적 150호)에서는 서탑(西塔) 복원 준공식이 열렸다. 20세기 초 일본에 의해 콘크리트로 덧씌워져 있던 미륵사 서석탑이 복원되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1992년에 9층으로 복원된 동쪽 석탑(미륵사지 9층 석탑)과 달리 서쪽 석탑(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은 6층으로 복원됐다. 그리고 두 석탑 가운데 목탑이 존재했다가 일찍이 소실됐다.

미륵사 석탑의 복원

1992년 당시 정부는 미륵사 동탑 복원을 추진했다. 석탑의 원형을 알려주는 문헌이나 그림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효율성만 따져 2년 만에 졸속으로 석탑을 완공했다. 이 때문에 미륵사 서탑 만큼은 동탑의 잘못된 복원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기존에 나온 모든 미륵사 석탑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 이 백제 석탑이 6층인지 7층인지 혹은 9층으로 봐야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어떤 문헌에서도 미륵사 석탑의 층수를 정확히 언급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륵사 석탑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던 익산 시민은 미륵사 서탑도 동탑처럼 잔존 층수(6층)가 아닌 9층으로 복원해 동탑과 균형을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계에서는 급격한 복원은 아직까지 무리이니 6층까지만 재현하겠다는 최초의 계획을 밀고 나갔다. 미륵사지 서탑의 원형에 대한 고증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9층으로 상상 복원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유였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리나라 문화재 보수 사상 최장 기간인 20년의 기간을 거쳐 미륵사 서탑은 다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미륵사 건립 당시의 상상복원도.

백제 최대 사찰

미륵사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음 등장한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백제 30대 무왕(武王, ?~641)이 창건주로 기록돼 있다. 무왕은 왕비와 함께 용화산(龍華山) 사자사(獅子寺)에 행차했는데, 가던 중에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했다. 왕비가 “미륵부처님들을 위해 절을 지어달라.”고 청하자 무왕은 백제 최대 사찰인 미륵사를 건립한다.

이 설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우선 미륵사가 백제의 국력을 모은 국가적 사찰이었다는 점, 못을 매립해 절터를 만들었다는 점, 미륵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 번의 설법을 통해 미래의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용화삼회설(龍華三會說)에 입각해 전(殿)과 탑과 낭무(廊廡)를 각각 세 곳에 세웠다는 점이다.

이런 내용은 1974년부터 이어진 23년간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미륵사 완공 연대는 백제 무왕 재위기인 630년 전후이고, 임진왜란 때 폐사(廢寺)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를 통해 미륵사의 창건주가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로 밝혀졌다. 그 딸이 무왕의 왕비인 사택왕후(沙宅王后)였기에 선화공주의 진유를 두고 학계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삼국유사〉의 선화공주 설화가 거짓이라는 주장과 정비(正妃)가 여럿일 수 있고, 흔적만 남아 있는 중앙 목탑에 선화공주 사리봉영기가 따로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미륵사 건립에는 백제의 가장 뛰어난 장인들이 총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짐작컨대 십여 년 후 신라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아비지’와 같은 최정상의 백제 장인들이 미륵사지에 모였던 것이다.

7세기경 문화적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압도했던 백제 건축기술이 미륵사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미륵사는 넓이가 10만 평에 달하는 동양 최대 사찰인데, 신라 황룡사가 2만 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미륵사 입구 양쪽에 세워진 두 개의 당간지주 거리가 무려 100m에 달한다.

미륵사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도 존속했다. 1407년(태종 7) 나라에서 지역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정한 것으로 볼 때 조선 초기까지는 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복원 후 미륵사 서석탑 모습.

미륵사의 구조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이라는 백제식 가람배치와 다르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3탑 3금당으로 지어진 절이다. 중원(中院)에는 목탑이, 동원(東院)과 서원(西院)에는 각각 1기의 석탑이 존재했다. 목탑이 언제 소실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동·서원에 존재하는 석탑 중에 동원의 석탑은 발굴 당시 완전히 무너져 내려 석재들이 주변에 흩어졌고, 일부가 유출돼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대부분 새 석재를 사용해 1992년 복원했다.

반면 서탑은 일제강점기 때 콘크리트를 덧대 불안하게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2018년 6층으로 복원됐다. 6층까지의 높이는 약 14m이고, 상·하 2층으로 구성된 기단 전체의 폭은 12m 정도다. 석탑 1층은 각 면이 3칸으로 구성돼 있다. 가운데 칸에는 목조형식의 문(門)을 달아 계단을 통해 사방으로 통하게 했다. 목조형태의 문은 남아있지 않았는데, 복원 당시 문을 다시 달았다. 1층 양끝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석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민흘림기법으로 재건축되었다.

석탑의 1층 내부에는 성인 한 명이 오갈 수 있는 ‘十’자형 공간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2층부터는 석재로 채워져 있어서 올라갈 수 없다. 황룡사 9층 목탑의 경우, 목재로 지어졌기 때문에 1층 계단이 2층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9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석탑의 중심에는 여러 개의 사각형 돌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기둥이 4층까지 연속적으로 올라간다. 이런 형태는 다른 석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현재 미륵사지에는 두 기의 석탑만 세워져 있다. 광활한 절터에 서면 폐허의 쓸쓸한 고적미(孤寂美)는 느낄 수 있지만, 1,400년 전 미륵사의 웅장한 위용은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고증의 문제와 함께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사찰 복원에 나서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디지털 복원’이다. 적은 예산을 들여 복원할 수 있고, 실물 복원이 아닌 만큼 고증 문제에 있어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륵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 디지털 복원이 가능한지 알아본다.

미륵사 각 건물의 3차원 모델링 결과물. 〈사진=㈜모아지오〉

미륵사 디지털 복원

미륵사는 삼국시대 사찰 유형의 가장 기본적인 가람양식으로 건축된 백제 사찰이다. 사찰 입구에서 시작되는 연못을 지나면 당간지주를 지나서 남문-9층 목탑-2기 석탑-대웅전(금당)-강당-승방으로 이어지는 배치구조를 띠고 있다.

미륵사의 가람구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학계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장경호 안(案)’을 바탕으로 미륵사 전각들을 3D 모델링해 전체를 완성해 보았다. 미륵사 창건 당시의 조경 요소도 최대한 고려했고, 향후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용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후반 작업에도 최대한 공을 들였다. 미륵사 전체 복원과정은 도표와 같다.

도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현장방문을 통해 미륵사 배치의 구조를 확인했고, 이를 통해 정확한 미륵사 각 건물배치를 파악했다. 이어 백제 고건축학자의 건물 예상실측도를 입수해 3차원 모델링을 했고, 특히 백제시대의 매핑(Mapping) 자료는 동 시대 일본과 중국 건축 자료를 최대한 참고해 미륵사 전각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추진한 ‘미륵사 프로젝트 체감형 디지털 헤리티지 구축사업’은 1,400년 전 익산에 존재했던 미륵사와 디지털콘텐츠 기술을 융합하여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듬해 ‘가상현실 미륵사’를 만들기 위한 디지털 복원과정을 거쳐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실내에서 체험 가능한 ‘미륵사 VR체험실’을 완공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석탑과 건물터만 남아 있는 현재의 미륵사지에 최신 기술을 활용해 가상의 미륵사를 세운 후 관련 안내서비스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체험거리를 제공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 이를 통해 미륵사 △석탑 부재 가공하기 △동자승 불경 읽기 △동자승 구하기 △석탑에 사리 봉안하기 △무왕의 행차 등과 VR콘텐츠를 제공하게 되었다.

미륵사 디지털 복원과정.

가상현실 미륵사는 당시 국내 디지털헤리티지 관련 가상현실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드론으로 촬영된 360° 동영상과 여기에 디지털 복원된 미륵사의 3차원 CG모델링을 접합했다. 이는 현재(사진촬영) 모습에 과거(디지털 복원)를 결합해 3D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이다. 더 나아가 위성사진으로 미륵사지 반경 2㎞ 주변 환경까지 편집해 구성했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미륵사의 규모와 형태를 재현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이 백제 무왕이 되어 미륵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한편 백제문화의 중심이자, 백제왕국의 고도(古都) 익산의 문화유산을 보존·전시·교육하는 국립익산박물관이 지난 2020년 1월 10일 문을 열었다.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9년 미륵사 서탑이 복원된 직후에 개관한 것이다. 미륵사지 남서쪽에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연면적 7,500㎡, 전시실 면적 2,100㎡로 건립됐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해 유적 밀착형 박물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륵사 디지털 복원 이미지. 〈사진=㈜모아지오〉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등 익산문화권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 보존하며 문화재 전시·교육을 담당하는 복합문화기관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미륵사지에서 발굴한 2만여 점의 유물을 전시 중이다. 박물관의 프로그램 중 압권은 모형실 앞에 위치한 ‘미륵사 디지털 복원’ 영상이다. 미륵사지를 방문한 관람객들은 폐허에서 미륵사의 옛 모습을 찾지는 못하겠지만 국립익산박물관에서 디지털 복원을 통해 되살아난 미륵사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익산시는 지난 9월 3일부터 한 달 간은 미륵사지 석탑 일원에서 홀로그램과 드론 등 첨단기술을 사용한 미륵사지 미디어아트쇼를 개최한 바 있다. 앞으로 미륵사지를 메타버스로 구현하는 ‘세계유산 미륵사지 플랫폼(가제)’ 구축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미륵사지 현장에서 증강현실 체험. 〈사진=㈜나인이즈〉

박진호
― 문화재 디지털복원전문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상명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라벌 왕경·백제 무령왕릉·고구려 고분벽화·바미안 석불·앙코르와트를 디지털 복원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디지털 석굴암을 전시하는 등 20여 년 간 70개의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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