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자아’ 가면 벗고
‘있는 그대로’ 현실 수용은
선불교 평상심과 유사

칼 로저스는
인본주의 심리학에 기반을 둔
‘사람중심 상담’의 창시자이다.
그는 당시 정신분석과 행동주의
사조를 따라가던 심리치료의 방향을
내담자 중심의 상담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도교와 불교, 그중에서도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로 비춰볼 때, 그의 이론에
선불교가 스며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운전을 할 때 내비게이션(길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목적지를 찾아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된지 이미 오래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지도를 보거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목적지를 찾아갔지만, 요즘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초행길을 떠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인생이라는 길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목적지에 실패 없이 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과연 인생이란 길에도 내비게이션처럼 빠르고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도구가 있다면 우리 인생의 질은 더 나아질까? 그러한 도구가 나오길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일한 질문을 미국심리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칼 로저스(Carl R. Rogers, 1902~1987)에게 던진다면 그는 “내비게이션 따위는 필요없다.”며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내담자 중심 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심리학에 기반을 둔 ‘내담자 중심 상담’, 즉 ‘사람 중심 상담’의 창시자이다. 그는 정신분석과 행동주의의 사조를 따라가던 당시 심리치료의 방향을 바꾸어놓을 만큼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였다. 그는 반세기에 걸쳐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고 자신도 그런 사상이 반영된 삶을 살았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용감한 사람이었다. 노년에는 인종·집단·국가 간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활동을 펼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로저스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내비게이션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살아간다. 로저스 심리학에서는 이 내비게이션을 ‘이상적인 자아상’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현실보다 더 멋지고 근사한 내 모습’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현실의 자신보다 더 잘난 스스로의 모습을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적인 자아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은 마치 맹목적으로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차를 모는 운전자와 비슷하다.

로저스는 “이상적인 자아상을 실현하려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상적인 자아상과 실제의 자신을 비교했을 때 괴리가 크면 ‘불일치의 인식’이 일어나고, 불안과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는 현실 속의 자신과 이상적 자아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자, 여기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직업에 열정적인 젊은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무명의 가난한 연극배우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고, 높은 출연료를 받는 모습을 꿈꾸며 살고 있다. 이 젊은이는 자신이 꿈꾸는 스타가 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워진다고 느낄수록 더욱 강한 불안과 초조함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불안·초조·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현실에서 경험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좌절에서 시작된다.

로저스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이상적인 자아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부조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부조화 상태는 불안과 우울을 야기한다. 일부에서는 부조화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해 현실에서 이상적인 자아의 모습을 이루라고 주장한다. 아이에게 일등이 되기 위해 1분 1초를 아껴 공부하도록 하는 학부모에게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스포츠맨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라고 소리치는 코치에게서 이상적 자아상을 심어주고 실현하도록 부추기는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로저스는 우리에게 노력의 방향을 이상적 자아상과 반대 방향으로 돌리라고 조언한다.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고,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좀 더 깊이 수용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경험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경험하는 많은 것들, 특히 감각과 본능적인 반응이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고, 자신이 경험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저스는 이러한 상태를 ‘완전하게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로저스는 마음속의 여러 상념과 생각의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마음을 열면, 자신의 감정과 현재의 모습이 점점 일체화되어 이제까지 자신이 부정하고 억압했던 감정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조건·행동·감정과 상관없이 스스로를 따뜻하게 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로저스는 “우리가 이상적인 자아상을 추구하는 행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과 같고, 우리를 더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적인 자아상이란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가면을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게 되면, 온전하게 기능하는 본래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칼 로저스는 인본주의 심리학에 기반을 둔 ‘내담자 중심 상담’의 창시자이다.

로저스의 상담이론과 동양사상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농장을 운영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이 농업에 관심을 가졌던 로저스는 위스콘신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재학 중 전과해 역사학 전공으로 졸업했다. 이후 유니언 신학대학을 2년 간 다녔고, 다시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과 임상심리학을 공부해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홀링워스(Hollingworth) 교수 밑에서 아동상담을 시작해 아동지도연구소에서 인턴을 거쳤다. 아동학대방지협회 아동연구부서에 취직해 비행 및 부적응 아동·청소년을 상담했는데, 이 기간은 그가 상담이론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로저스는 이 경험을 통해 상담자 위주로 진행되는 기존의 상담방식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었고, 상담자가 자신의 박식함을 드러내고자하는 욕구만 억제한다면 내담자에 의해 훨씬 효과적으로 상담이 진행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는 1940년 오하이오 주립대의 교수직 제의를 받아들여 상담 실제와 연구를 통해 내담자들과 깊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법을 익혀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상담방법을 체계화해나가면서 자신의 견해가 동양의 사상과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공감하는 사상으로 노자(老子)를 언급했는데, 그가 인용했던 노자의 사상 중 한 구절에는 심리상담에 대한 그의 견해가 잘 녹아들어 있다.

“사물의 삶에 간섭한다는 것은 사물과 자기 자신 모두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힘을 행사하는 자는 드러나 보이기는 하나 작은 힘을 소유한 자요, 힘을 행사하지 않는 자는 숨겨져 있지만 큰 힘을 소유한 자다. 수행을 쌓은 사람은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다른 인간에게 힘을 행사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가 자유로워지도록 돕는다. 조화로운 사람은 그 조화를 통해 다른 사람을 조화로 이끌며, 그들의 본성과 운명을 해방시켜 주고 그들 안의 도가 발현되도록 돕는다.”

칼 로저스가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리처드 파슨(Richard Farson Ph.D, 1926~2017)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불교의 평상심

로저스의 상담이론은 선(禪)불교에서 강조하는 평상심(平常心)의 상태와도 매우 유사하다. 선불교에서는 “구체적인 매일의 일상 속에서 올바른 법이 실현된다.”고 말한다. 생활 속에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불교의 수행이라는 말이다. 마음에서 인위적인 조작이 거두어지면 내면의 본성에서 나오는 참다운 마음이 그때그때의 일을 적절히 잘 처리하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이를 ‘평상심이 도(道)’라고 표현한다.

졸리면 잠을 자는 것처럼 인위적인 조작이 끼어들지 않는 소박한 마음이 곧 평상심이다. 이 마음은 참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이르기가 쉽지 않다. 현실의 삶을 회피하지 않고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일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청정한 본성에서 발동하는 의식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은 언뜻 쉬워 보일 수 있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다. 경험에 대한 완전한 수용과 긍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상심에는 두려움·불안·성냄·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자리 잡지 못한다. 그래서 일상의 모든 일을 다 해내면서도 언제나 편안하고 아무 일 없는 한가함을 누릴 수 있다. 평상심으로 사는 삶은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지만 단절된 마음은 없다. 마조 스님(馬組, 709~788)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박에 그 도를 알고자 하는가? 평상심이 도(道)이다. 무엇을 일러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조작함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으며 취하거나 버림도 없고 단절되거나 항상함도 없으며 범부나 성인도 없다. 경에 이르기를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현의 행도 아니며 보살의 행이다.’라고 하였다.”

평상심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법계(法界)이며, 평상심이 바로 도(道)이다. 또한 평상심의 실천이 보살의 행(行)이다. 법계는 추상적인 뜻이 아니라 삼라만상이 어우러진 세계를 의미한다. 모든 존재가 상호작용하는 수평적인 질서 속에서 하나로 통일된 전체를 구성하는 세계를 뜻한다. 이러한 법계는 우리의 모든 행위, 즉 말하고 행하고 먹고 살아가는 작용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일컫는 강가의 모래까지도 포함한다.

로저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도 이와 같다고 말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존재가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독립적이라는 점, 동시에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상적인 자아상과 일치하려고 애쓰지 않고, 경험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소통할 때 진정한 일치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 순간에 “통합이 되고 전체가 되며 완전히 하나가 된다.”고 로저스는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로저스는 동양사상을 공부하길 즐겼다. 도교와 불교, 그중에서도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그의 이론에 선불교가 스며들어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실제 로저스는 주변으로부터 그의 신념과 행동이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을 이어 주는 다리와 같다.’는 평가를 들었고, 스스로도 ‘불교와 선(禪)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로저스는 이러한 평상심의 마음을 체험과 연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경험을 가장 큰 스승으로 여겼는데, 통제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수용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상태에는 이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로저스 혼자 느낀 변화가 아니라 상담 중에 자신이 마음을 열고 본연의 마음으로 내담자에게 다가설 때 내담자에게도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상담기법을 사용하기보다는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을 개방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했다. 내담자가 자신을 개방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어떤 틀에 맞춰서 고치려는 마음은 감소한다. 자신을 고치려는 마음이 없어지면 지금까지 억눌려있던 정서적 요소가 점차 개방되고 회피했던 감정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내담자는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해온 그 가면이 거짓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힘들어한다. 바로 그 순간에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충분히 경험하도록’ 돕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계속되는 내면의 변화에 스스로를 내맡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운전하면 큰 어려움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길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는 아마도 생생하지 않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의식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서 경험이 온전하게 수용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생생한 경험을 통한 성장을 위해서는 인생에 내비게이션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로저스는 건설적인 성장과 변화는 의식의 통제를 강하게 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통제의 포기를 통해 일어난다고 확신했다.

1966년 정신건강 관련 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칼 로저스.

문진건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조교수.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2012~2014),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2015~2019)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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