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恩 입은 부친 당부에 불교와 인연
“초기불교에 부처님 大意 담겨있어요”

황경환(71·법명 無塵) (사)21세기 불교포럼 공동대표는 ㈜진양유조선과 ㈜경주아이씨에스를 경영하고 있는 중견사업가이자,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지금도 불교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고, 노력하는 신심 깊은 불자다. 그는 초기불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초기불교 공부와 함께 다양한 후원활동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황경환 공동대표를 경주에서 만나 그의 삶과 신행이야기를 들어봤다.

2020년 2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전하기 위한 문화·학술단체 (사)21세기 불교포럼(이하 불교포럼)이 창립됐다. 불교포럼 초대 이사장은 강성용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맡았고, 발기인에는 황경환 당시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과 김세곤 동국대 경주캠퍼스 대외협력처장·차상엽 전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교수·함형석 전남대 철학과 교수·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황경환 대표는 창립 당시 5,000만 원을 출연했고, 이후 매년 5,000만 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불교포럼은 이 후원금으로 황 선임연구원의 법명인 ‘무진’을 따 ‘무진국제학술상’을 제정했다. 영어 불교논문만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무진국제학술상은 지난해 세 편의 우수 논문을 선정해 시상했으며, 올해 2회 차 시상을 앞두고 있다. 창립 초기부터 꾸준한 지원과 활동을 해온 황경환 대표는 지난해 7월에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관음주송’ 통해 살아난 아버지

황경환 대표는 1950년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에서 태어났다. 그가 불교를 알게 된 것은 부친이 입은 불은(佛恩) 덕분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9살 무렵 늦은 가을 저녁, 어린 경환은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기적과 불교 설화 같은 이야기를 곧잘 해주셨다. 하지만 이날은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부자간에 오고 갔다.

아버지는 해방 전, 매형과 함께 조그마한 선박으로 연근해에서 상인들의 짐을 실어다주는 해상운송업에 종사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어떤 두 사람이 울산 방어진항을 출발해 부산항까지 화물을 수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관장이었던 아버지는 늦은 시간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뱃삯을 두둑하게 준다는 말에 두 사람을 태우고 출항했다. 하지만 울산 앞바다를 나서자마자 두 사람은 갑자기 해적으로 돌변했다. 배를 빼앗기 위해 아버지와 선장인 매형을 총으로 위협했다. 그들은 배를 빼앗아 일본으로 밀항을 하려는 속셈이었다.

배 갑판에서 네 사람의 치열한 격투가 벌어졌다. 그러다 배에 타고 있던 네 사람 모두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매형 두 사람만 구사일생 살아남게 됐다. 그때 매형은 범인들이 쏜 권총에 턱관절을 맞아 총상을 입은 상태였고, 아버지는 선박업에 종사했지만 헤엄을 칠 줄 몰랐다. 그렇다보니 두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살아 났을까?

아버지는 사찰을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앉아있을 때면 항상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곤 했다. 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외다보니 그때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관세음보살’을 불렀다고 했다. 정말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였을까? 비몽사몽으로 물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온 바로 그 순간 아버지의 목전에 배에서 떨어진 큰 왕대가 아버지의 손에 잡히는 기적이 일어났다. 아버지와 매형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배를 탈취하려던 둘 중 한 사람은 바다에 수장됐고, 나머지 한 사람은 경찰에 넘겨졌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시면서 “환아, 너도 태어났기 때문에 그날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반드시 죽는 날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하고 당부했다. 자신이 반드시 죽게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9살 소년은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고, 한참동안 어리둥절했다. 이어 아버지는 “네가 앞으로 커서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불교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거라.”며 유언하듯 당부하셨다.

“태어난 존재의 죽음에 대한 당시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그때 그 두려움은 지금도 저의 뇌리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남기신 말씀은 제 삶의 방향이 됐고, 비록 제가 원하는 바에 비해 제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만은 지금 이 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불교 공부를 시작한 황 대표도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인지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무사히 헤쳐 나갔다. 초등학교 시절 갓 배운 서툰 솜씨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마을의 오작교라는 다리에서 7m 아래로 떨어졌는데, 외상 하나 입지 않은 채 무사했다. 20대 후반이던 1977년에는 소형유조선(30톤)을 타고 작업을 나갔다가 심한 돌풍이 불어 배가 전복되기 직전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같은 해 삼척 화력발전소 벙커C유 부정 유출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옥고를 치렀고, 1997년 IMF 경제위기 때는 환율 상승으로 인해 미화 300만 불 선박을 10% 계약금만 지불하고 일본에서 수입한 선박의 부채가 100% 급상승해 큰 손해를 입었지만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또 2002년 종합검진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당시 갑상선 절제 수술을 했지만, 그 후 지금까지 후유증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는 부처님의 법을 공부한 가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들은 ‘죽음의 문제’와 아버지가 당부한 ‘불교’를 늘 기억하고 있다.

1970년 경봉 스님(1892~1982)과 인연을 맺은 후에는 스님이 입적하기 전까지 십수년 동안을 매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법회에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했다. 당시 경봉 스님은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하루가 24시간인데 9시간 일하고 8시간 잠자고 4시간을 놀아도 3시간이 남으니, 이 3시간 중 단 30분, 아니 단 10분이라도 나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설하셨다. 그는 이 법문을 들은 후부터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한 후 30분간 걷기 명상인 경행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30대 초반 황경환 대표가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 봉 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

초기불교 매력에 빠지다

황경환 대표는 해상·육상유류판매업과 연안유조사업 등을 하면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의 불교 공부는 1977년 통도사 화엄전에서 (사)한국불교연구원이 주최한 하계수련대회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때 이기영(1922~1996) 박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1977년부터 2007년까지 30여 년 동안 한국불교연구원 이사와 연구위원을 맡았다. ‘무진(無塵)’이란 법명도 당시 하계수련대회 회향 날 벽안 스님(1901~1988)에게 받은 것이다. 그는 서경수(1925~1986) 박사에게도 인도 불교의 역사를 배웠다. 특히 서경수 박사의 〈미린다 팡하〉(현대불교신서 3)는 황 대표의 불교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다 1997년 지인을 통해 울산에서 김사철 박사를 만나면서 초기불교의 매력에 심취하게 됐다. 김사철 박사는 인공지능분야의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불교수행자다. 미국 뉴멕시코 주립대학에서 응용수학과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휴즈사에서 근무하다가 은퇴 후 귀국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고타마 명상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김사철 박사와의 만남은 제 인생에 축복이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김 박사는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빠알리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하고 있었죠.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반야심경〉 내용을 조목조목 과학적 예를 들어가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셨고, 또 열 가지 족쇄를 끊어야 해탈 열반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불교 공부를 해오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기가 막힐 정도의 내용이었어요. 덕분에 그동안 대승불교에서 얻지 못했던 답을 초기불교에서 얻을 수 있었고, 이후 10여 년간 김 박사에게 초기경전의 대의(大意)를 상세하게 지도 받았습니다.”

김사철 박사는 황 대표의 의식 안에 있던 ‘깨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잡다하고 불필요한 불교 지식을 말끔히 청소해줬다. 그리고는 ‘깨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 즉 부처님의 말씀처럼 불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교학 체계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한 후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증명된 것만 확신하라.’는 과학적 바탕 위에서 불교 교학과 수행을 지도해줬다. 초기불교는 지금 알게 모르게 한국불교 사회에 존재하는 왜곡된 불교관을 바로 잡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황 대표는 당시 김 박사와 교류하면서 왜곡되거나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경전 내용, 수많은 법문과 강의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을 지금은 완전히 해소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황경환 대표는 김 박사에게 팔리어 경전을 배운 후 2002년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초기경전 연구와 보급에 앞장서왔다. 이런 인연으로 전재성 박사가 펴낸 〈빠알리어사전〉 제작비용을 후원하는 등 지금까지 초기불교경전 번역과 관련한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그 자신도 〈산스크리트 원문에서 본 반야심경 역해〉(김사철·황경환 공저)·〈불교는 깨달음의 과학〉 등의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미국 데스벨리는 극단적인 자연환경으로 과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곳이다. 1998년 데스벨리 정상에서 김 사철(오른쪽) 박사와 함께한 황경환 대표.

국내·외서 다양한 활동 펼쳐

황경환 대표는 반세기 동안 불교활동을 해오면서 다양한 사회공헌도 전개해왔다. 그는 2006년 울산광역시불교신도회장, 2012년 울산불교방송 사장을 역임했다. 울산불교신도회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에는 스리랑카 농촌마을인 바나두라 지역의 우디토디타라마야(Uditoditaramaya) 사원 인근에 어린이·노인·재활복지를 위한 복지관 ‘비컨 홀(Beacon hall)’을 건립했다.

그가 스리랑카 오지에 복지시설을 건립하게 된 계기는 스리랑카 구호활동에서 비롯됐다. 2005년 지진해일(쓰나미)이 스리랑카를 강타했을 때 인연이 있는 현지 스님의 요청으로 피해 현장을 방문해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그후로 교류의 끈을 이어왔으며,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의 경제적 어려움을 떠올리며 ‘스리랑카의 복지 향상을 위해 후원을 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이 스님은 황 대표에게 복지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자신이 출현한 5,200여 만 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비컨 홀을 건립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왕실이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Anurādhapura)를 중심으로 1,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려하게 꽃을 피웠죠. 스리랑카 불교는 상좌부 불교 자체가 스리랑카에 기원을 두고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습니다. 스리랑카가 부처님의 생생한 육성이 그대로 담긴 초기불교의 명맥을 유지해 저에게 전해줬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도 마음껏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있는 거겠죠. 그렇기에 기쁜 마음으로 스리랑카에 복지관을 지었죠.”

2006년 울산불교신도회장 재임시 황경환 대표. 황 대표 왼쪽부터 박맹우 울산시장, 김철욱 시의회의장, 최병국 국회의원이 함께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황 대표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국제 PTP(People To People, 세계평화 구현을 위한 국제민간외교단체)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1996년에는 한국본부 제13대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본부는 미국과 이라크가 한창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이라크 아동들을 위한 학용품을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또 법무부 종교위원(불교분과)·법무부 울산구치소 교정협의회장 등을 맡아 재소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며 교정교화 활동에도 힘써왔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 온 황 대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 본부로부터 국제 PTP 공로상·최우수 리더쉽상·평화상 등을 받았다. 또 2003년 법무부장관 표창, 2007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제10회 대원상 특별상, 2014년 제32회 교정대상 자비상, 2017년 울산불교방송 설립 공로패, 2020년 제8회 청호불교복지대상 저술상 등을 수상했다.

1982년 미국 국무성에서 조지 부시 부통령과 환담을 하고 있는 황경환 대표. 이 일을 계기로 황 대표는 국제 PTP 활동을 시작했다.

“사성제 공부하면 고통 소멸”

황경환 대표는 불문(佛門)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들에게 “불교공부란 이 세상의 삶이 우선 고통이라는 실존적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사성제(四聖諦) 가운데 고(苦)의 진실에 대한 이해가 우선 확실해야 깊은 신심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불교공부의 출발점은 바로 이 ‘고’의 진실을 직면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불교공부와 수행의 체계는 모두 ‘사성제’ 안에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삶의 방향을 사성제를 중심으로 삼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선업(善業) 짓기를 삶의 최우선순위로 할 때 각자가 원하는 목적지에 잘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기 경전인 〈진리상윳따〉에서는 ‘삼매를 닦는 이유가 사성제를 꿰뚫기 위해서며, 출가자가 되는 이유도 사성제를 관통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또 ‘사색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사성제를 사색하고, 사성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리고 사성제를 완전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여래·아라한·정등각자라고 부르며 사성제를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고 부처님께서는 강조하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고귀한 네 가지 진실[四聖諦]’을 통해 우리도 ‘고통’과 ‘고통의 소멸’을 금생에 성취해야 합니다.”

인터뷰 내내 눈빛을 반짝이며 인터뷰에 응한 황경환 대표는 앞으로 지속적인 신행활동과 함께 정기적인 포럼 및 대중강연을 통해 지역사회와 인문학 발전에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적인 역량을 갖춘 불교학자와 불교활동가를 발굴·육성하는 사업도 전개해 초기불교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홍포하고자 한다. 그의 바람대로 더 많은 불자가 부처님의 원음인 초기불교를 이해하고, 불교 공부에 빠져든다면 세상이 좀 더 맑고 향기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황 대표는 2010년 8월 인도 다람살라 법왕청에서 달라이라 마 존자를 친견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