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세속화된 기성종교에 회의
갈증 해소 대안으로 불교 찾아
‘사회·제도와 습합’은 과제

스웨덴 헬싱보리의 랜드마크인 시청 건물.

현대 유럽불교는 단계별 발전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19세기 후반까지는 보편적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영국을 중심으로 일부 식자층의 학문적 관심이 주를 이루었고, 세계 1·2차 대전 이후 유럽인들은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지침을 찾아 서서히 불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전후 베트남 등 아시아의 불교문화권 국가에서 정치적 망명자가 유입되면서 유럽 내 불교 신자 수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중·후반기를 거쳐 불교에 대한 유럽 현지인들의 관심은 꾸준히 증가했고, 현재 여러 종단이 유럽에서 점점 입지를 굳히고 있다.

교회 등 정통종교에 대한 회의감 커져

유럽에서의 불교의 지평 확장은 각종 통계 수치에서 잘 드러난다. 독일의 경우 1970년과2000년 사이 불교 관련 단체의 수가 100배 이상 증가했으며, 영국·독일·오스트리아 등 주요 유럽 국가의 불자 인구는 2000년부터 2019년 사이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불교와 꽤 인연이 깊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 주요 국가를 넘어서 이제는 북유럽에서도 점점 불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많은 유럽불자들이 서유럽 주요 국가 출신인 탓에 보통 ‘유럽불교’라고 하면 영국·프랑스·독일 등을 떠올리지만 올해 여름 유럽불교연합(European Buddhist Union) 회의에서 북유럽, 특히 스웨덴 불자들이 눈에 많이 띄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대도시 예테보리(Gothenburg), 말뫼(Malmö), 스톡홀롬(Stockholm) 등을 중심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이유로 서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유구한 항구도시 헬싱보리(Helsingborg)의 부디스트 비하라(Buddhist Vihara, 불교 사원)를 찾아가 보았다. 헬싱보리는 스웨덴 남단 덴마크 헬싱외르(Helsingør) 맞은 편에 위치해 배를 타고 20분이면 서유럽에 닿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중세시대부터 타국과 잦은 교류가 있어 왔고,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가까운 거리에 스웨덴의 대표 대학 도시인 룬드(Lund)가 있어서 젊은 세대와 정년 후 한적한 바닷가에서 살고자 정착한 노년층 인구가 어우러진 곳이다.

현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웨덴은 2000년 북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정교분리를 감행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반 정도가 교회에 등록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교회를 전통문화 유산의 일부로 생각한다. 현재 문화유산 보호의 차원에서 여전히 소득의 10% 정도 되는 교회세를 내고, 결혼식 등을 교회에서 거행하는 사례는 여전히 많지만 실제로 매주 미사에 참여하는 독실한 신자는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현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교회나 전통종교 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느껴졌다. 서유럽에서도 불교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비슷한 결의 회의감에서 시작되었다. 유럽 불교의 미래와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찾아간 헬싱보리 부디스트 비하라에서의 인터뷰는 필자가 독일에서 거주하면서 경험하고 관찰한 바와 일부 들어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시에 의외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헬싱보리의 도심 풍경.

헬싱보리 부디스트 비하라

헬싱보리 부디스트 비하라는 도시 중심지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일반 주택에 내부를 수행 공간으로 꾸렸기 때문에 안내 팻말을 보지 못했으면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스리랑카 출신의 비구 반테 사티만타(Bhante Satimanta) 스님은 예테보리에서 불교 수행회를 이끄느라 자리를 비운 터였고, 미리 연락을 취해 둔 옘(Jem, 법명 Chân Pháp Hộ) 법사가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를 마시며 그와 유럽과 스웨덴의 불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비하라의 독특한 점은 바로 각각 다른 불교 전통으로 출가한 승려와 승려생활을 했던 2인이 한 팀을 꾸려 사찰을 운영한다는데 있다. 반테 사티만타 스님은 28년 전 모국 스리랑카에서 출가해 8년 전 헬싱보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필자가 헬싱보리 비하라를 방문한 날은 마침 자리를 비워서 잠깐의 통화만 가능했다. 필요에 따라 스웨덴 타 도시를 방문해 명상 지도를 하거나 불교의식을 거행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했다.

비하라의 또 다른 운영자는 18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1년 반 전에 환속한 스웨덴 불자 옘 법사이다. 옘 법사에게 불교와 어떻게 인연이 닿아 출가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원래 룬드 대학을 다니던 법학도였는데 대학 시절 불교명상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사람들을 돕는 걸 좋아해 가정법을 전공했고, 29세까지 법조계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사람들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부분과 본인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간극이 있음을 깨닫고는 삶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성찰을 위해 인도로 훌쩍 떠났다고 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수행하는 불교수행자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고,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찾아가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께 계를 받았다고 한다.(플럼 빌리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가 2020년 3월까지 진행한 법회를 볼 수 있다.) 이후 18년 동안 플럼 빌리지를 거점으로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다가 1년 반 전 환속했고, 현재는 법사로서 헬싱보리에 정착하여 스웨덴어로 다양한 불교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그날도 1시간 반 가량의 명상코스 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일부는 비하라에 와서 참여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줌(Zoom) 미팅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수행회라고 했다.

헬싱보리 비하라의 외관.

유럽불교와 아시아불교의 차이

지난 20년간 유럽 불자들의 수행에 눈에 띄는 변화나 경향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옘 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플럼 빌리지는 명성이 있다 보니 20년 전에도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고 불교 수행에 진지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규모가 가져다주는 장엄함과 수행 분위기도 있고, 플럼 빌리지에 머물면서 법우의 중요함을 깨달았죠. 함께 수행하는 즐거움과 수행 분위기의 무게가 생각보다 크더군요. 이에 비해 스웨덴의 불교수행회는 상대적으로 아직 규모가 작고, 간헐적으로 또는 호기심에 의해 방문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그리고 소위 말하는 ‘유럽불교’가 점점 스웨덴에도 자리잡아가는 걸 느꼈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필자의 요청에 옘 법사는 덧붙여 답변했다.

“유럽의 불교와 오랜 전통에 바탕을 둔 아시아의 불교는 아무래도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초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유럽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수행합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불교는 역사와 전통 때문에 전체로서의 종단 유지가 중요해 보입니다. 따라서 정통·비정통 등에 대한 입장이 나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유럽에서는 종단의 엄격성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실제 우리 헬싱보리 비하라에서도 상좌부불교 전통에 귀의한 스리랑카 승려와 베트남식 대승불교 전통을 따르는 승려 두 명이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지고 다른 방식의 가르침과 수행을 지도하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플럼 빌리지의 참여불교(Engaged Buddhism)가 아니었다면 다른 종단으로 출가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어요. 저는 출가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건강한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안녕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강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국가의 불교와 유럽에서의 불교는 그 성격과 수행하는 이들이 중요시하는 점이 꽤 다름을 종종 체감하고 있어요.”

마침 비하라에 들어서는 60대 스웨덴 여성에게 “불자인가요?”하고 물으니 “스스로 불자인지 아닌지 규정을 지은 적은 없고, 불교식 명상을 하고 불교적 삶을 지향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옘 법사의 답변과 어울리는 답변이었다. 옘 법사는 덧붙여 “서유럽에서처럼 스웨덴 사회도 세속화 되면서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늘었지만 마음 한 편에 사람들이 허전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자주 느끼고,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렇게 세속화된 사회나 딱딱한 교회의 종교 문화에서 채우지 못하는 갈증 때문에 대안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럽인들은 유연함을 거듭 불교의 매력으로 꼽고 재차 등장하는 표현은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는 의견이다.

한국에서 6년 정도 거주한 경험이 있는 필자의 현지 지인들 역시 스웨덴의 불교는 초기에 베트남출신 등 정치적 망명자들에 의해 정착과 확장이 시작되었지만, 아시아 출신 이민자의 ‘정통’ 불교와 유럽 토박이들의 불교는 조금 달라서 융합이 되었다고 보기보다는 평행하게 동시적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유럽 본토에 자리 잡고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위)헬싱보리 비하라의 내부 모습.(아래 왼쪽) 지역 매거진에 실린 헬싱보리 비하라와 스리랑카 출신의 비구 반테 사티만타 스님.(아래 오른쪽) 스웨덴 불자인 옘 법사는 18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다가 건 강상의 문제로 환속했다.

유럽 불교의 미래에 대한 전망

각종 통계자료에서 나타나듯이, 유럽인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개개인의 관심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종교의 하나로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도 보인다. 2019년 벨기에에서는 공통 교육과정 교과서 개편을 위해 중국불교 전문가인 겐트대학(Ghent University) 안 헤어만(Ann Heirman) 교수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옘 법사를 포함한 유럽인들에게 유럽불교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이 매우 긍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유럽 불자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 활동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독일을 포함한 많은 유럽국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또 시민단체 차원에서 종교 간의 화합을 주제로 많은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점점 다원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서로 간의 이해를 도모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적 사회 실현을 위한 노력이다.

이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베를린에서는 2011년 10월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이 모여 함께 만든 ‘The House of One’이라는 인류 최초의 ‘한지붕 아래 세 종교’ 교당이 세워졌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유대교당·교회·모스크의 모습을 모두 반영하는 교당을 짓기 위해 개최한 건축대회를 통해 지은 특별한 교당이다. 하지만 다종교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불교계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이미지는 유럽 사회에서 불교가 종교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강점이 될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불교가 유럽 사회에서 여전히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 비해 소수의 종교임은 사실이다. 유럽 사회에서 불교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예외적 존재 또는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이미 자리 잡은 제도와 함께 어울려 성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House of One’의 목사 그레고르 호베르그(Gregor Hohberg), 랍비 안드레아스 나하(Andreas Nachama), 이맘 카디르 산치(Kadir Sanci). ©House of One/René Arnold.

이혜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하고 현재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수학 중이다. 불교와 전쟁, 불교와 국가의 관계, 불교 개념의 제도화 과정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그 외 세계의 비전통적 고등교육기관에도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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