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없이 찾아오는 시련
받아들이는 자세가 관건
‘고난의 경계’ 잘 살펴야

한가위 연휴에 방영해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수용소의 절망 속에서 가족을 지킨 아버지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같은 배경의 또 다른 책 〈죽음의 수용소〉를 꺼내 들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3년간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이 책을 썼다.

수용소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일렬로 서서 장교의 손가락 방향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길이 나누어졌다. 일할 수 없는 이를 선별하는 것이었고, 죽음과 삶을 나누는 최초의 갈림길이었다. 그들은 태어나 가졌던 모든 걸 잃었지만 잃지 않은 단 한 가지는 ‘나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자유’였다.

평범한 그들은 최악의 수용소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지 매 순간 선택할 수 있었다. 시시각각 생존을 위협당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유머와 의연함을 잃지 않은 이들에게서,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운명을 넘어서는 힘을 보았다. 프랭클 자신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인간의 의지를 체험하며 확신에 찬 희망을 지니게 되었다.

극단의 시련과 함께한 그의 생생한 체험담을 읽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깊이 와닿는다. “세상살이에 고난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고난의 경계를 잘 살펴 그것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알면 고난이 어찌 나를 상하게 하랴.”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은 괴로움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삶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시련을 피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시련 자체가 나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프랭클은 자신이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가장 절망적 상황에서조차 삶에 대해 ‘예스!’라고 외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내일 죽음이 닥친다 해도 오늘 나의 영혼에 축복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매일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고 뺨을 문질러 혈색이 좋게 보이고자 했다. 일할 능력이 없어 보이면 가스실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수감자들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미적 추구와 유머를 놓지 않았다. 진흙에 빠져가며 일할 때도 숲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감탄했고, 석양 무렵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에 감동했다. 또 그들은 하루 한 가지씩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급식을 받을 때면 멀건 국통에 건더기는 가라앉아 있으니, 누구나 배식원이 국자를 깊게 휘저어 퍼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지어냈다. “우리가 풀려나서 어느 날 초대를 받았는데, 그 집 안주인에게 이렇게 부탁할 수 있어. ‘밑바닥에서 퍼주세요.’라고 말이야.”

그는 자신이 겪은 지옥 같은 수용소의 나날을 담담히 전하면서, 인간존재에 대해 확신에 차서 말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껴안으며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말을 건넨다. “아들아,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인생은 아름다운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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