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의 불심 깃든 향로
디지털 전시로 세계에 알려지길

백제금동대향로. 〈사진=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는 중국의 박산향로에서 그 모태를 찾을 수 있지만, 백제의 독창성과 뛰어난 조형성을 담아낸 백제 금속공예기술의 최고 걸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 향로는 백제가 패망하던 서기 660년 6월 사비(현 부여) 능산리 절터[陵寺址]에 묻혔다가 1993년 12월 발견됐다. 발굴 당시 향로는 진흙 속에 묻혀 있었던 덕분에 녹이 슨 흔적도 없었고, 부식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청동에 도금을 했을 당시의 찬란한 황금빛은 퇴색했고, 조각의 섬세함은 무뎌져 있었다.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살려 백제금동대향로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임을 알리고자 디지털 복원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의 모습.

백제금동대향로에 나타난 불교

백제금동대향로는 높이가 61.8cm, 무게가 11.85kg으로 동양 최대 규모이다. 사찰 법당에 향을 피울 때 쓰던 이 향로는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연꽃 봉오리의 중앙이 아래위로 분리돼 향로의 몸체와 뚜껑을 이루고 있다.

먼저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다. 아래 뚜껑에는 23개의 산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고, 뚜껑을 포함한 몸통에는 피리·소비파·현금·북 등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 봉황·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사슴 등 39마리의 동물이 표현돼 있다. 이밖에도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시냇물·폭포·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금동대향로에 등장하는 동물들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향로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은 학계의 의견을 반영해 설명하고 있다.

“향로는 뚜껑과 몸체, 받침이 별도로 주조돼 있다. 아래로부터 수중생물 즉, 음(陰)의 대표격인 용을 받침으로 해 그 위 몸체에는 연꽃을 중심으로 물과 관련된 동물을 연꽃잎에 배치했다. 뚜껑에는 산과 나무 외에 지상의 동물과 인물상 등이 등장하고, 정상에는 양(陽)을 대표하는 봉황을 두고 있어 음양의 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런 구성은 천제(天帝, 봉황)와 오제(五帝, 다섯 마리의 새)가 주재하는 소우주의 신산(神山)으로, 용이 승선(昇仙)을 연결시켜 준다는 한나라 때 유적지인 마왕퇴 1호분의 승선도나 박산향로에 보이는 사상적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3D 스캔 기술을 통한 디지털화 작업과정.

그런데 향로 위에 있는 동물이 봉황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사재동 충남대 명예교수는 “봉황이 아닌 극락조”라고 주장하면서 “불교의 핵심적 상징인 반용이 물어 올린 연화의 대좌 위에 불교의 총체적 이상세계인 극락정토 연화장세계를 찬연하게 조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능사는 백제 위덕왕이 창건했는데, 위덕왕과 그의 아버지 성왕 모두 불심이 대단했던 만큼, 성왕을 기리며 조성한 향로 제작에 당대 고승대덕과 불교공예가가 참여했을 것이란 추측으로 극락조 주장에 무게를 뒀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상단 악사 부분 클로즈업.

3차원 스캔 통한 디지털 복원

가상공간 속의 백제금동대향로를 재현하는 과정은 한마디로 ‘디지털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고대 백제 민족의 문화적 원형을 가장 잘 묘사한 백제금동대향로에서 우리는 백제문화, 더 나아가 한민족 문화의 원초적(原初的)인 유형을 찾고자 했다.

사실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복원한 백제금동대향로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사이버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종의 가상관광(Virtual Time Travel) 형태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이렇게 구축한 데이터는 문화산업, 즉 문화콘텐츠산업의 영역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디지털화·가상공간화 작업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은 3차원 3D 스캔이다. 종래의 수작업을 통한 실측이 아닌 3D 스캔은 대상 유물의 3차원 데이터를 가장 정확하게 얻어낼 수 있다.

3D 스캔으로 완성한 백제금동대향로의 폴리곤 데이터.

실제 오랜 세월의 흐름으로 백제금동대향로에 조각된 약 160개의 형상을 정교하게 파악하긴 힘들 수 있다. 이때 3D 스캔은 눈으로 보지 못한 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3D 스캔의 효용은 사람의 눈으로 미처 감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수천·수만 개의 선으로 잡아내는데, 문화재의 디지털 데이터 저장 기능 외에 해독이 불가능한 향로의 문양이나 향로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을 더 정확하게 찾아낼 수도 있다. 3D 스캔을 통해 오래되어 마모된 향로의 문양 등 육안으로 인식 불가능한 조각에 대한 파악도 가능하다.

먼저 향로의 원본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스캐너 사양에 맞추어 3D 스캔작업을 실시한다. 3D 스캔은 애초에 기계분야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역공학·역설계)’이라고 해서 기존 제품의 형상을 얻어내 캐드(CAD)로 재설계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3D 스캔기술은 레이저를 쏘아 되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하여 형상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현재 레이저 스캔기술은 토목·건축·산업디자인·미술·영화·광고·의료·문화재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3D 스캐너로 유물 촬영을 하면 처음에 ‘점군(Point Cloud) 데이터’가 얻어진다. 이 점군 데이터는 물체에 수십에서 수백만 개의 레이저를 발사해 얻은 3차원 X·Y·Z 좌표들이다. 이렇게 얻어진 점군 데이터를 바탕으로 폴리곤(Polygon, 입체도형) 모델을 만든다. 폴리곤 모델은 일종의 대상 유물의 색깔이 입혀지기 전에 만들어진 외관 3D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 폴리곤 모델이 완성되면 음영이 생겨 물체의 형상을 보다 잘 관찰할 수 있고, 후반 3D 작업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폴리곤 모델은 단색으로 표현되므로 칼라 사진보다 형상의 굴곡과 외관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3D 스캔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3D 스캔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 훼손이 되더라도 이전과 동일한 모양으로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은 탈레반은 2001년 3월 바미안 석불을 폭파시킨 바 있다. 만약 백제금동대향로에 적용한 3D 스캔기술을 바미안 석불에 먼저 적용했더라면, 폭파된 바미안 석불을 원형 그대로 언제든지 되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3D 스캔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복원한 백제금동대향로.

디지털 금동대향로의 활용

사실 어떤 유물을 디지털 복원할 때 ‘바로 이것이 원형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든 디지털 복원작업은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란 가능성을 담보한다. 왜냐하면 오리지널은 제작된 그 순간부터 변화와 변질이 시작되기 때문에 누가 어떤 방법으로 복원을 하더라도 원형과 동일한 오리지널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백제금동대향로 복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국립부여박물관은 2013년 9월 27일부터 11월 24일까지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20주년 기념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전시에 앞서 백제금동대향로의 디지털 전시를 위해 1,300년 전 원형에 가까운 백제금동대향로의 모습을 재현하기로 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울트라초고화질(Ultra Super HD) 3D 콘텐츠로 금동대향로를 제작했다.

2013년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특별전 당시 ‘백제금동대향로’ 4K-UHD콘텐츠 전시 장면.

기술적인 설명을 보태자면, 소위 풀(Full) HD는 해상도가 ‘1920x1080’인데 4K는 가로 해상도가 ‘4,000’으로, 풀 HD보다 2배 이상 해상도가 높은 걸 의미한다.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선 4K 화질을 구현했지만 문화재를 대상으로 4K 콘텐츠를 만든 것은 2013년 이전까지는 없었다. 4K는 백제금동대향로의 오밀조밀함과 섬세함을 고화질 영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안성맞춤인 기술이었다. 그 결과 관객들은 4K급 고화질 영상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었다.

최근 디지털 트랜드는 ‘메타버스’와 ‘인공지능’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2018년 충남 부여군에 ‘사비도성 가상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 가면 백제금동대향로 인공지능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인공지능 홀로그램 도슨트(Docent, 전시안내인) ‘금동이’다. 금동이는 수백 건에 이르는 백제금동대향로 관련 빅데이터를 활용해 관람객들의 관련 질문에 대해 답변하고, 관련 영상을 통해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백제 최초의 인공지능 콘텐츠인 ‘금동이’ 인공지능 홀로그램 도슨트.

예를 들어 인공지능 도슨트 금동이에게 “백제금동대향로는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나요?”라고 물으면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사비백제시대에 만들어졌는데요, 더 정확히는 백제의 세 번째 수도였던 사비성에서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라고 대답을 해준다.

2013년 11월 4일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인 미국 뉴욕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한국의 황금 왕국, 신라’ 특별전을 개막했다. 반가사유상을 포함해 신라의 국보급 유물 130여 점을 미국으로 옮겨와 약 100일 동안 전시를 진행했다. 당시 한 번도 경주 석굴암에 가본 적이 없는 수많은 뉴욕 시민들은 디지털로 복원한 석굴암 3D 영상을 관람한 후 한국 불교문화의 우수성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전시회에는 신라의 대표적 유물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전시됐다. 만약, 백제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뉴욕에서 열렸다면 금동대향로가 전시될 수 있었을까?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해외반출 전시가 안 되는 유일한 백제의 유물이었다. 앞으로도 그 유물적 가치 때문에 백제금동대향로의 해외 전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로 디지털 전시가 해결해줄 수 있다. 석굴암을 뉴욕 시민들에게 소개했듯이, 유물을 반출하지 않고도, 디지털 복원된 작품을 통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2013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했던 디지털 복원 ‘석굴암 3D’ 모습. 100여 일간 총 21만 명의 뉴욕 시민이 관람, 신라 석굴암의 위대함을 체험했다. 〈사진=김지교 문화유산기술연구소 대표〉

따라서 미래를 대비해 국제수준에 맞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해 놓아야 한다. 아울러 단조롭고 설명 위주의 홍보물이 아닌, 흥미를 끌 수 있는 참신하고 획기적인 영상물을 염두에 둔 스토리도 필수적이다. 이런 작업은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내·외국인들에게 금동대향로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이자 수단이 될 수 있다.

요즘 BTS(방탄소년단)의 미국 음악시장 석권이나 한국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등 한류(韓流, 한국 대중문화 열풍)가 전 세계에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한류는 케이 팝(K-Pop)이나 영화 부문을 넘어 보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 ‘백제금동대향로’를 포함한 한국의 우수한 문화재의 디지털 복원은 세계에 한국 불교문화의 저력을 알리는 ‘문화재 한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박진호 ― 문화재 디지털복원전문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상명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라벌 왕경·백제 무령왕릉·고구려 고분벽화·바미안 석불·앙코르와트를 디지털 복원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디지털 석굴암을 전시하는 등 20여 년 간 70개의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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