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벽수행에서 착안한
‘빈 의자 기법’ 개발해
본래면목 회복 이끌어

‘빈 의자 기법’은 
현실에서 특정 대상과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내담자에게
치료실에서 상상을 통해
그 사람과 마주 앉아 대면해보도록
권유하는 기법이다.
내담자는 마주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빈 의자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고,
실제 대면이라면 하기 어려웠을 대화를 나눈다.
이 기법은 프리츠 펄스가
선(禪)불교의 면벽수행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당신의 앞에 놓여 있는 빈 의자를 한참 바라봅니다. 이제 당신이 실제로 만나기 어려워하는 그 사람이 앞에 있는 그 의자에 앉는다고 상상하세요. 그분이 아버지인가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이제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해보세요. 네, 잘하셨어요. 이제 아버지가 앉았던 빈 의자에 당신이 앉아보세요.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서 당신이 당신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아들의 질문에 대답해봅니다. 아뇨, 아뇨, 당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 말씀하세요. 당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상상 속 대화 ‘빈 의자 기법’

이것은 ‘빈 의자 기법’이라는 심리치료법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내면 탐색을 유도하는 장면이다. ‘빈 의자 기법’은 게슈탈트(Gestalt) 치료의 창시자인 프리츠 펄스(Fritz Perls, 1893~1970)가 개발한 치료법인데, 현실에서 특정 대상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내담자에게 치료실에서 상상을 통해 그 사람과 대면(對面)해보도록 권유하는 기법이다.

대개 내담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보는 데 미숙하다. 이를 돕기 위해 게슈탈트 치료사는 의자 두 개를 마주보게 놓고, 그 중 하나에 내담자를 앉게 한 다음, 맞은편에 놓인 텅 비어 있는 의자를 바라보라고 권한다. 내담자는 평소에 마주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빈 의자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고, 실제 대면이라면 하기 어려웠을 내용의 대화를 시작한다. 이 기법은 프리츠 펄스가 선(禪)불교의 면벽수행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펄스는 빈 의자를 바라보는 행위가 ‘우리 마음의 한쪽 구석에 선명하지 않게 머물러 있는 생각과 감정을 명료하게 떠오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마음의 구석에 머물러 있는 여러 가지 상념과 감정은 삶에서 생기를 잃게 만드는 방해물이다. 펄스의 말을 빌리자면, “선명한 게슈탈트를 방해하는 것”이다.

유대계 가정에서 성장했던 펄스는 〈탈무드〉를 인용해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말했다. 여기서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은 ‘나는 이렇게 되어야 하고,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내면에 본래 갖추어져 있던 건강한 힘이 솟아나와 당면한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유능한 정신분석가였지만, 정신분석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프리츠 펄스가 개발한 게슈탈트 치료기법의 치유 원리이다. ‘본래면목’을 회복하도록 하는 선불교의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방랑 보헤미안 ‘펄스의 생애’

‘프리츠’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프리드리히 살로몬 펄스는 1893년 독일 베를린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꽤나 엄격하고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났다. 프리츠는 제1차 세계대전 말부터 유행하던 다다이즘(Dadaism, 반이성·반도덕·반예술을 표방한 예술사조로 전통을 철저히 부정했다)과 예술가의 내면에 있는 감정·생각·주장 등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밖으로 표출하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주의에 심취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스스로를 ‘방랑하는 보헤미안’이라고 생각했던 프리츠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군대에 지원하여 참전하게 되는데, 최전선 참호에서 엄청나게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아마도 당시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펄스는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집안의 기대와는 달리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특히 청소년기부터 끌렸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에 심취했다. 펄스는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에게 정신분석을 배우며 전문적인 분석가가 되었다. 결혼 후 히틀러 정권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게 된다. 아내와 두 아이가 함께 정착할 좋은 곳을 찾기 위해 무척 애썼는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네덜란드로 이민했다가 곧 남아프리카로 옮겼고, 그곳에 정신분석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까지 세웠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펄스의 가족은 미국 뉴욕에 최종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저명한 여류 정신분석가인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1885~1952), 자신의 수퍼바이저였던 빌헬름 라이히와 함께 일했다.

1951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인 〈게슈탈트 치료 : 인간 성격의 흥분과 성장〉이란 책을 출간했고, 곧이어 게슈탈트 치료연구소를 세웠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는 1960년대부터 서부 캘리포니아로 활동무대를 넓혀 칠순의 나이에 미국 문화적 변화의 중심지이자 잠재력 운동과 인본주의 대안교육의 중심지인 에살렌 연구소(Easleen Institute)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워크숍과 치료법 연구를 병행하며 게슈탈트 치료의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1969년 펄스는 에살렌 연구소를 떠나 캐나다 밴쿠버 섬에 ‘게슈탈트 커뮤니티’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듬해 심장수술을 받은 후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캐나다 태생의 정신과의사이자 교류분석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릭 번(Eric Berne, 좌측)과 함께.

선불교와 게슈탈트 치료

게슈탈트 치료는 게슈탈트 심리학과 연관이 깊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 이론에 매여 있지는 않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의 지각에 관한 실험적 연구에 기반을 둔 심리학이지만, 게슈탈트 치료는 현상학·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사조의 원리와 정신분석의 이론을 토대로 삼고 펄스의 임상적 경험에서 나온 치료이론을 통합한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사상이 가미되는 데 그것이 바로 ‘선불교’이다. 펄스는 선불교의 철학과 기법을 가미함으로써 심리치료 중에서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를 강조하는 독특한 게슈탈트 치료를 완성하게 된다.

펄스는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게슈탈트 치료를 연구하던 폴 웨이즈를 통해 불교를 알게 되었다. 선수행자였던 웨이즈가 전해준 선불교에 펄스는 완전히 매료되었고, 매일 명상을 했다. 펄스에게 선은 ‘형식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과 ‘뭔가를 이루려는 목적’을 거부하는 파격적인 수행법이었다. 펄스는 선의 정신과 동일한 맥락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해서는 안 되고’ 식의 사고방식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은 우리 본래의 모습과 접촉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역설을 주장한다.

“깨닫기 위해 수행하지 마라.”

선불교의 역설은 ‘우리가 변화하려고 애쓰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는 펄스의 역설적 개념과 딱 들어맞는다. 펄스는 선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게슈탈트 치료에서 강조하는 ‘알아차리기 훈련’이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서양인에게 선과 유사한 자기변용의 길을 열어준다고 확신했다. 그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변화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믿지만, 오히려 그것은 변화를 방해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특히 선이 강조하는 “지금 바로 여기에”라는 현재지향성은 현재를 중요시하는 펄스의 게슈탈트 치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슈탈트 치료의 주요한 기법 중 하나인 ‘빈 의자’는 선 수행자가 마주보고 있는 텅 빈 벽면과 동일하다. 게슈탈트 치료의 다양한 치료 기법은 단순히 ‘지금-여기(Here&Now)’의 과정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자각을 유도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선에 대한 펄스의 지대한 관심은 그가 일본 도쿄를 방문해 선을 공부하게 이끌었다. 일본의 선사가 펄스에게 물었다.

“바람의 색깔이 무엇인가?”

이 화두에 대해 펄스는 답변 대신 행동을 보여줬다. 그는 선사에게 다가가 선사의 얼굴에 대고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그리고 펄스는 자신의 답변이 게슈탈트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바람의 색깔은 당신이 느끼는 것입니다.”

선불교와 게슈탈트를 통해 펄스가 강조하는 바는 “만들어진 생각을 버리고 느낌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여기’에서 자기 자각을 의미한다.

1964년 미국 에살렌 연구소에서 동료들과.

‘지금 여기’ 감각에만 집중

칼 구스타브 융과 마찬가지로 펄스는 동양의 직관적인 사상과 문화가 인류의 정신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불교는 ‘관조(觀照)적인 종교’이다. 관조할 때의 마음자세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갖추고 있는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를 바라본다. 여기서 지혜가 일어나고, 관념과 이성의 세계가 이루지 못하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펄스는 전체로서의 대상이 주는 힘을 강조했다.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이다. 요소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전체의 역동성은 관조로 이해될 수 있다. 전체를 이해하면 부분으로 대립하던 것들이 더 이상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대립의 관계로 보이던 그 요소들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의 발전을 위한 역동성이다.

심리치료사로서 펄스는 내담자에게 이런 점을 강조했다. 심리적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내담자는 자신의 생각과 관념적인 믿음이 낳은 생각들의 대립으로 심리적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부분의 대립을 통해 꺾어야 하고 없애야할 것만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생각을 버리고 당신의 감각에 귀를 기울여라.(Lose your mind and come to your senses)”

이 말은 ‘무언가로 가장하면서 살려는 마음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일어나는 참다운 체험으로 돌아오라.’는 뜻이다. 즉각적인 경험은 별 게 아니다.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바라보면 된다. 펄스는 ‘마음을 내려놓겠다.’는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알았다. 펄스는 ‘지금 여기’ 감각에 주의를 기울일 뿐, 더 이상 어떤 마음도 먹지 말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발바닥은 무얼 느끼는가? 지금 여기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게 되고, 생각이 멈추며 ‘내면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문진건 ―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조교수.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2012~2014),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2015~2019)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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