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많고, 교태 많지만
은혜 갚을 줄 아는 존재죠”

뾰족한 코와 입, 불안하게 떨리는 귀, 가녀린 몸통과 사지, 그리고 풍성한 꼬리를 지닌 내 몸 위로 향기로운 꽃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방금 하늘의 신들이 떠나가면서 내게 준 선물입니다.

나는 여우입니다. 나는 이제 곧 숨을 거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꽃에 뒤덮인 채 죽어버린 야생여우 한 마리만 보이겠지만 나는 하늘의 신이 내려 준 꽃비를 맞으며, 또 다른 보은의 삶을 살아갈 참입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물에 빠진 여우

며칠 전 일입니다. 들판을 다니는데 묘한 불안감이 나를 덮쳤습니다. 흘낏 뒤를 돌아보니 사자 한 마리가 나를 노리며 다가오고 있었지요. 나는 죽기 살기로 도망쳤는데 갑자기 내 몸이 아래로 뚝 떨어졌습니다. 우물에 빠진 것이지요.

우물은 너무나 깊어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을 그렇게 지내다 무작정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공덕을 짓지 못하고 죽는 것도 서러운데 더러운 이 몸뚱이로 남들이 마실 물마저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저를 굽어 살펴주십시오. 지난 잘못 그 죗값을 다 받고 세세생생 눈 밝은 스승을 만나 올바르게 수행해서 부처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우물 밖 저 먼 허공을 향해 ‘부처님’을 소리쳐 부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한에 찬 내 기도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하늘의 제석천이 수많은 신들을 거느리고 내려온 겁니다. 저들이 내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기에 서둘러 우물 밖으로 나가려 앞발 두 개를 내밀었지만 또다시 버둥거리다 우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여우의 몸이지만 보살의 원을 세운 비범한 존재이십니다. 스승을 기다리던 저희에게 제발 법문 한 자락을 들려주십시오.”

제석천은 이렇게 말하며 하늘의 옷을 우물 아래로 내려뜨려주었고, 나는 그 옷을 붙잡고 사흘 만에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하늘의 감로 밥을 주었고, 사흘을 넘게 굶주렸던 나는 그 밥으로 굶주림을 달래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석천과 여러 신들이 하늘의 보배 옷을 벗어서 쌓아올려 만든 법의 자리에 폴짝 뛰어 올라앉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태어나면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저 살기만 탐하고, 어떤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살아가면서 인과법에 어두워 다음 생에 과보 받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눈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남의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고 그릇된 이성관계를 맺고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영원히 살 줄 알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 줄 알고, 영원히 살고 싶어 하며, 자기의 삶도 끝나게 되리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지혜로운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청해 듣고, 사람들을 공손하게 섬기며, 약한 사람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자입니다. 생에 집착하지 않고, 목숨이 다하여 생을 마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지요. 왜냐하면 복덕을 쌓았기 때문에 다음 생이 두렵지 않은 까닭입니다.”

나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습니다.

“착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는 것과 같고, 악한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죄지은 자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우 한 마리가 천상의 신들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이 광경은 좀 생경하고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제석천이 내게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업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여우로 태어난 것입니까? 아니면 중생을 교화하려고 짐짓 여우의 몸을 취한 것입니까?”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이 여우의 몸은 전생에 죄를 지어서 받은 업보의 몸입니다. 중생을 교화하려고 여우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신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체 어떤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지 그 일을 들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래 전 내 전생의 일을 기억해내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지요.

왕이 된 수행자의 업보

지난 세상에 나는 어느 가난한 집 아들이었습니다. 열두 살이 되어 지혜로운 스승을 찾아 깊은 산에 들어갔지요. 그 분 밑에서 온갖 학문을 배웠고 재앙을 물리치는 법, 길흉을 점치는 법, 의술까지도 익혔습니다. 스승님은 5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제자인 나를 정성스레 가르치셨고, 그 덕분에 내 명성은 세상에 널리 퍼졌습니다.

가난한 나는 몸뚱이를 팔아서라도 스승님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사는 수행자는 걸식으로 살아가니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 귀중한 몸을 훼손해서 나를 섬기려 하느냐? 너의 지혜와 훌륭한 말솜씨로 세상에 나아가 법의 등불을 밝히거라. 교화하는 공덕이 내 은혜를 갚는 길이다.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거라.”

그런데 어느 날, 세속의 왕이 목숨을 마치자 사람들이 내게 찾아와 왕위에 오르기를 청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왕이 되어 행여 교만해지고 게을러져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다면 그 죄 값으로 지옥에 떨어지겠지요. 반면 왕위에 오르면 스승님과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습니다. 결국 나는 왕위에 올랐고, 산에 가서 스승님을 모셔와 최고의 공양을 올리며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궁중의 모든 사람들과 백성들에게 선업을 짓도록 권하며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이웃나라의 모략으로 나는 전쟁을 일으켜 무시무시한 살생의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승전의 대가로 얻은 수많은 여인들과 욕정에 빠져 나라를 파탄에 빠뜨렸습니다.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 목숨을 잃었고, 악업의 과보로 지옥에 떨어졌으며, 그렇게 지옥에서 아귀로 태어났다가, 아귀세계에서 축생의 세계로 태어나 여우의 몸을 받은 것입니다. 그 여우는 사흘 전 사자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 우물에 빠졌고, 이렇게 신들의 도움으로 우물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입니다.

전생이야기를 들려준 뒤 나는 제석천과 하늘의 신들에게 그들이 실천하고 닦아야 할 수행법을 일러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업을 착실하게 닦고, 마음을 잘 단속하여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간단합니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살로서 실천해야 할 수행을 닦으면 됩니다. 지혜와 방편을 키우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지혜를 키우기 위해서는 서른일곱 가지 보리분법을 닦아야 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방편을 키우는 데에는 육바라밀과 사무량심만한 것이 없습니다.

도솔천에 태어나다

이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자 제석천과 신들의 얼굴에는 환한 빛이 넘쳐흘렀습니다. 저들은 행복에 겨워 내게 다시 물었습니다.

“저희는 스승님께 음식을 올리고 싶습니다. 평소 어떤 음식을 드시는지요.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내 음식은 다른 이에게 말할 것이 못됩니다. 여우가 먹는 것이라고는 사자와 호랑이, 이리의 똥오줌이나 죽은 사람의 해골이며 시신입니다.”

자신들에게 법문을 들려준 법사에게 차마 그런 밥을 내어줄 수가 없어 신들은 안타까워하며 거듭 물었습니다.

“하지만 법보시를 해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저희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말했습니다.

“지금 그대들이 하늘의 궁전으로 돌아가거든 그곳의 모든 존재에게 내가 들려준 가르침을 그대로 전해주십시오. 한 사람이라도 그 말을 믿고 따라서 수행한다면 그게 바로 내게 보답하는 것이요, 일체 부처님의 은혜에도 보답하는 길입니다.”

제석천이 내게 합장하고서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여우의 몸을 언제 버리십니까? 천상에 태어나신다면 저희가 다시 친견하고 법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7일이 지나면 나는 죽을 것입니다. 여우의 몸을 버리고 도솔천에 태어나 그곳의 모든 이에게 가르침을 펼쳐 모두 함께 부처가 되도록 발원할 것입니다.”

제석천과 그를 따르는 신들은 천천히 하늘 위로 올라갔습니다. 저들은 하늘의 꽃과 향을 내게 흩뿌리며 지극한 존경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내 몸 위로 향기로운 하늘의 꽃이 쏟아졌고, 하늘의 신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지금, 나는 홀로 남았습니다. 나는 신들이 우물에서 건져내준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어디든 괜찮습니다. 조용히 시선을 모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선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착하게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선(善)을 생각하느라 먹이를 구하러 다닐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을 생각하느라 마음에 선함이 가득 차올랐고, 그렇게 7일이 흘렀습니다. 나는 이제 이 덧없는 여우의 몸을 버리고 천상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신들을 교화하고 모두 함께 부처가 되자고 다시 한 번 발심할 것입니다.(〈불설미증유인연경〉 중에서)

전생에 내 스승님께서 일러주신 보은의 길을 천상의 신들에게 그대로 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은혜 베풂과 갚음이 이어지고, 그 길에서 세상은 조금 더 선량해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것이요, 둘째는 큰 은혜는 말할 것도 없고, 조그만 은혜라도 잊지 않는 것입니다.(〈증일아함경〉 중에서)

사람들은 우리 여우를 그리 좋게 보지 않습니다. 교태를 부리고 멀쩡한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자꾸 의심하며 머뭇거리는 것도 여우에 비유합니다. 여우[狐]처럼 의심[疑]한다고 해서 ‘호의(狐疑)’라는 한자어도 있더군요. 하지만 오해입니다. 우리는 약한 동물입니다. 맹수에게 잡혀 먹기 쉬워 늘 긴장하고 살다보니, 작은 소리에도 놀라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 준 이에게는, 그것이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반드시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은혜를 입은 줄 알고, 은혜를 갚으려고 마음먹는 우리 여우야말로 참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요?

이미령 ―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북칼럼니스트이며, 경전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시시한 인생은 없다〉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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