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

대학생활의 묘미는 기숙사 생활이며, 기숙사 생활에서 룸메이트는 꽤 중요하다. 이 때문에 새 학기에는 늘 좋은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길 기대했다. 2학년 2학기에 룸메이트로 A가 배정됐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주변사람에게 A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는데, “걔 엄청 이기적인 애라 같이 방 쓰면 힘들 거야.”라는 말을 듣고 걱정만 쌓였다.

그러나 막상 같이 생활해 본 A는 말수가 적은 성실하고 얌전한 친구였다. 특이하게도 수정과를 좋아해서 자주 마셨는데, 방에서도 은은한 계피향이 났다. 나는 평소 수정과를 좋아하지 않았고, 방에서 나는 계피향은 그저 고약한 냄새일 뿐이었다. 그러다 ‘계피향이 싫다.’는 핑계로 방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됐고, 계피향은 내가 A를 피하는 정당한 이유가 됐다.

학기가 반 정도 흘렀을 때, A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이때도 A는 수정과를 마셨고, 내게도 한 잔을 건넸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A는 그저 낯을 많이 가리고 소극적인 친구였다는 걸 알게 됐다. A는 내게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한 게 있다면 이야기해줘. 같이 사는 데 서로 맞춰야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A가 왜 불편했는지 고민하며 그 동안의 생활을 돌이켜 봤다. 그런데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손에 든 수정과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A를 만나기 전에 그에 관한 평을 접했고, 이후 지레 겁을 먹어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음에 벽을 세웠었다. 다가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불편하다는 핑계 찾기만 해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그게 아니라…….”며 얼버무리는 나의 변명으로 끝이 났다.

불교에는 ‘타생지연(他生之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사람과 길에서 소매가 스치는 것과 같이 사소한 인연도, 전생의 깊은 인연에서 기인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당시 ‘다가오는 인연을 소중히 하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쉽게 편견에 빠졌고, 헤어 나오지 못했다. A와의 대화는 편견에 휘둘려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인연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있지만 누구도 겪어보기 전까지 이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대방을 따듯한 시선과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고작 ‘편견’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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