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람의 감정이나 느낌,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음성 또는 문자를 말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우수한 문화를 창출하고 문명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언제부터 언어를 사용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언어가 발달되면서 문명도 함께 고도화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 사용의 부작용과 후유증도 만만치 않습니다. 품격있는 언어대신 사람을 기망하고 모욕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현실입니다. 비하와 모욕, 명예훼손 등으로 인한 송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러한 때 중국 송대(宋代) 초기 분양 선사(汾陽 禪師)가 말한 십지동진(十智同眞)의 가르침이 큰 울림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분양 선사는 십지동진을 갖추지 못하면 “그른 것과 바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검은 것과 흰 것을 가리지 못하여 사람들의 안목이 되어 옳고 그름을 결단해 줄 수가 없다.”면서 “이는 새가 허공을 날아가려고 하는데 날개가 부러진 것과 같고, 과녁을 향해 화살을 당기려 하는데 줄이 끊어진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십지동진은 분양 선사가 독창적으로 시설(施說)한 법으로 〈선림승보전〉에 나옵니다.

십지동진의 첫째는 동일질(同一質)입니다. 바탕이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정이 바탕이 되지 않는 사랑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는 말처럼 부처님의 제자로서 바탕이 같아야지 스승이 다르다면 가르침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외 밭에서 참외가 나고 딸기 밭에서 딸기가 나는 법입니다. 이런 것처럼 선불장(選佛場)에서 부처가 나오지 유학서당(儒學書堂)에서 부처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둘째는 큰일을 함께 하는 동대사(同大事)입니다. 대사란 출격대장부의 일로서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모두 함께 참여하는 총동참(總同參)입니다. 운력이나 참선할 때 게으름을 피우거나 빠지는 인원이 있으면 조직의 사기와 단결력이 저해됩니다. 구성원들이 어떤 일을 하든 한마음으로 단결한다면 능률과 성과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넷째는 참뜻을 함께 하는 동진지(同眞志)입니다. 참뜻을 함께 하는 이들에겐 오로지 굳은 신념과 결기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동진지는 도반으로서의 관계에서 구축하는 신뢰이며 신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두루 함께 하는 동편보(同遍普)입니다. 추구하는 진리는 편협하지 않고 밝은 해는 두루두루 빛을 비춥니다. 그 빛을 받지 못하는 것은 개개의 지형적 조건 때문입니다.

여섯째는 함께 갖추고 있는 동구족(同具足)입니다. 늘 선업(善業)을 쌓고 공부에 정진하므로 수행자는 복과 지혜를 갖추게 됩니다. 다시 말해 복과 지혜를 구족하는 이가 불자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일곱째는 얻고 잃음을 함께 하는 동득실(同得失)입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느냐면 지혜와 복덕을 얻고 탐진치를 잃는 것을 뜻합니다. 불자의 기본수행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덟째는 살고 죽음을 함께 하는 동생살(同生殺)입니다. 동생살의 경지를 같이하는 사람에겐 모함과 배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생과 배려가 우선시될 뿐입니다.

아홉째는 설법을 함께 하는 동음후(同音吼)입니다. 사자후란 부처님의 설법을 말하는 것으로 최소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이 계보를 따라야 합니다. 사자의 목소리여야지 여우나 토끼의 목소리가 되어선 설법자로서의 자격에 못 미칠 뿐 아니라 불자의 자격에도 어긋납니다.

열째는 함께 깨달아 들어가는 동득입(同得入)입니다. 이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광덕과 엄장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도반의 관계를 말합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으로 함께 깨달음을 얻은 교진여 등 다섯비구가 바로 동득입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지동진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소탐대실의 승부에 집착해 어리석음에 떨어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모여서 지혜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너와 나를 분별하거나 서로가 대립하는 관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십지동진을 갖춘다면 상대를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미래가 암울할 때도 십지동진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헤아려 지금에 충실한다면 지혜로운 이의 삶을 사는 것이며 반대로 혼란과 불안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에만 탐착한다면 어리석음의 과보에 빠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선 십지동진을 평소 갖추어 놓고 살 일입니다. 십지동진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불자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분발을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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