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교계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차분하면서도 다채로운 봉축행사를 펼쳤다. 천태종을 비롯한 주요종단은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문화행사뿐 아니라 부처님이 오신 참뜻을 살려 나누고 베푸는 복지행사를 전국에 걸쳐 실시했다. 새가 우짖고 꽃이 활짝 핀 화창한 봄날,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처럼 중생들도 영원히 평화와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발원하셨다. 만일 부처님이 카필라왕국 태자의 삶에 안주하고 만족하며 살았더라면 부처의 탄생도, 불교의 출현도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세속의 권력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다 버리고 외롭고 험난한 길로 나섰던 이유는 중생을 향해 품게 된 비원(悲願)때문이다. 그 비원은 중생에 대한 연민(憐憫)이었다. 중생들은 누구나 병과 늙음과 죽음,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슬픔과 번민을 억누르지 못했다. ‘중생들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얻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고민 앞에서는 왕위를 계승하는 것도, 온갖 부귀영화도 부질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부왕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단행했고, 고행정진 끝에 마침내 부처님이 되셨다.

그러나 부처님의 비원과 연민은 끝나지 않았다. 중생들의 분별없는 탐욕과 어리석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도 부처님의 발걸음이 무겁다. 지난해 연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로 인해 경제적 고통은 물론 일상의 삶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인류의 고통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분쟁의 핵심지역인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폭격전을 전개하면서 수많은 민간살상이 발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나흘째 공방을 주고받던 이스라엘이 결국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양자 간 무력분쟁은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이스라엘은 모든 휴전 제안을 묵살하고 공격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종의 편을 가르는 혐오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혐오범죄는 특히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상대로 집중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역에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한 여성 6명 등 8명을 살해한 총격범이 기소됐다. 이후로도 다양한 형태의 혐오범죄가 미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주지사마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부처님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시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신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아래 내가 가장 높다. 세계가 고통 받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를 외쳤다. 이는 절대평등과 평화를 내세운 메시지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행복과 자유를 교리적인 측면에선 무명의 타파라고 가르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평등과 평화를 기본적인 요인으로 꼽으셨다. 또 사회적 측면에서 평등이 신분과 지위를 가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평화는 마음의 평정을 뜻한다. 인간 사회에서 차별이 존재하는 한 증오와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평화를 지향하지 않고 분쟁심을 키우는 사회는 전쟁을 부르고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다. 분란과 갈등은 인류사회에 깊은 상처만 양산할 뿐이다.

불교는 평화의 종교다. 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평화는 불교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종 질병과 전쟁, 혐오범죄 등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선 불교계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불교계의 국제적 활동이 보다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부처님이 오신 참뜻을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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