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자아에서 벗어난
‘참다운 자기실현’은
불교의 ‘정각’과 일치

융은 1875년 여름 스위스 산간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내면의 통찰력이 뛰어났던
그는 꿈과 초자연적 환상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
열한 살 때 신경증적 발작을 겪어 좌절과 불안에
사로잡혔지만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힘을 굳게 믿으며
그 병을 스스로 이겨냈다.
이런 경험은 훗날 융의 심리학이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신성한 힘을 다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병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지인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절망에 빠졌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 살날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의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지. ‘아! 부처님 만일 저에게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앞으로 저는 제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항상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바에 맞춰서 살려고 노력했었고 그렇게 산 것이 그 순간 후회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강을 회복한 지금은 마음대로 사느냐고 물었더니, “이제는 마음대로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융은 1935년 취리히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자아는 마음의 세계에서 왕이 아니라 다만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에 의해 다스려지는, 마치 미개척지의 거주자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아와 마음에 대한 메시지

‘마음(정신, Psyche)’대로 산다는 것은 뭘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원하는 대로 하고 살면 뭔가 훨씬 더 큰 만족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고나면 ‘이게 과연 내가 원했던 것이었나?’라는 반문이 뒤따른다. 마음대로 했을 뿐인데, 지나보면 내 마음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 까닭은 왜일까?

이와 같은 이율배반의 상황에 대해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는 채 살고 있다. 마음은 질서정연한 체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콤플렉스가 상황에 따라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 내달리는 곳이다. 이성적인 자아가 마음을 전부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마음을 다스리려는 태도보다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에 순응하고 따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중에 일부분을 우리 마음의 전부인 냥 착각해서 그것을 고집하며 살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원하는 것이 평소의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를 때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융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의 부분은 주로 이성적으로 활동하는 자아의 영역이다. 우리는 그 밖에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마음(융은 ‘정신, Psyche’이라고 불렀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심지어 우주의 크기와 같다고 한다. 그러한 마음의 세계에 대한 탐험을 우리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아’가 우리라고 믿고 있으며, 자아와 관련된 것만 소중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융은 1935년 취리히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자아는 마음의 세계에서 왕이 아니라 다만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에 의해 다스려지는, 마치 미개척지의 거주자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엄청난 힘은 융 심리학으로 볼 때 무의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는 또 “자아는 결코 ‘이 엄청난 힘’의 존재에 의해 정신 그 자체의 작은 모퉁이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은 것이 아니다. 또한 자아가 이런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자아가 그 힘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그 힘과 타협하려고 할 때보다 실제로 훨씬 더 약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융이 불교에 매료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교가 ‘스스로 등불이 되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1909년 취리히 외과대학 앞에서.

집단무의식을 발견하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융은 ‘집단무의식’이라는 더 깊은 정신의 영역을 발견하면서 무의식의 개념을 한걸음 더 확장했다. 그는 환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환상과 꿈을 분석하면서 모든 사람에게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집단무의식은 인류 역사를 통해 발달해 온 정신의 영역으로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마음의 한 부분이다. 융은 “사람들은 백지 상태(Tabula rasa)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정신적 소인(素因)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강조했다.

“유일한 경험이라고 믿고 있는 의식의 영역 이외에도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속성을 가진 심리체계가 있다. 이 체계는 이전부터 존재하는 형태의 원형으로 간접적으로만 의식될 수 있으며, 특정한 상황에서 마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집단무의식은 본능과도 유사하고 인간 성격의 기본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융은 프로이트와 함께 무의식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이성과 자아의 힘으로 비합리적이고 본능적인 무의식의 영역을 다루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는 반대했다.

그는 “순전히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상태에 있던 인류의 정신이 성취한 인간의 이성은 커다란 발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성에만 의지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이성이 정신의 지속적인 발전에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성은 항상 자신에게 이율배반적인 것을 회피함으로써 이쪽과 저쪽 중에 어느 한쪽 입장만을 취하게 하고, 한 번 선택했던 가치관을 사력을 다해 꽉 쥐고 있으려고 한다. 이성은 단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 즉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의 과도기적 상태에 대한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고 그는 규정했다.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때 이러한 과도기적 상태를 벗어나 더욱 발전할 수 있을까? 융은 이쪽과 저쪽 중 어느 한쪽 입장만을 취하려는 것이 이성과 자아를 중심으로 발전하려는 서양인의 기본적 태도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로는 마음 전체를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융은 오히려 정신을 탐구하는 진정한 태도를 동양의 정신적 전통, 특히 불교에서 찾았다.

불교는 이쪽 또는 저쪽의 입장만 고집하는 극단으로 치우친 태도를 지양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고정불변하는 주인이 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융은 불교의 가르침이 무의식과의 교류를 통해 의식의 일방성을 극복하려는 자기실현과 같은 목표를 가진다고 보았다.

자기의 진면목을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융의 분석심리학과 불교 양측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러한 ‘더 큰 자기’를 융은 ‘자기 원형’, 불교에서는 ‘불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융의 ‘자기 원형’과 불성

융은 불교를 깊이 연구했고, 불교에 대한 그의 심리학적 해석은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과 심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융은 당시 저명한 불교학자들과 교류했는데, 그들의 저서는 융의 논평·해석과 함께 출판됐다. 융은 서양사회에 불교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스즈키 다이세쓰(D.T. Suzuki, 1870~1966)와 1933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보인다. 스즈키가 선불교에 관한 책을 펴냈을 때, 융은 30페이지가 넘는 서문을 썼다. 이 글은 선불교에 대한 융의 심도 있는 이해를 보여주는데, 선불교를 분석심리학의 시각으로 해석해 서양 심리학자들이 불교를 보다 잘 알 수 있도록 도왔다.

융은 인도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는 불교 성지를 방문하고 나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시 독일의 불교 지도자이자 작가였던 크라우스코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도 여행에서 불교의 성지를 방문하고 나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책에서 배웠던 불교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만일 내가 인도 사람이었다면, 나는 불교도가 되었을 겁니다.”

융이 불교에 매료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교가 ‘스스로 등불이 되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스로 구하는 진정한 주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가 아니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융이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서양 사회에 말하고자 했던 바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삶과 죽음의 문제로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존재의 신비를 뚫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큰 오류이다. ‘스스로 홀로 서있는 전능한 자아’라는 잘못된 믿음이 주는 교만이다. 인간이 처한 조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 같은 자아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욕망을 근절해야 정신의 독자성, 즉 자아를 초월하는 신성한 마음의 힘이 나타난다. 마음의 깊은 곳에는 강렬하고 자유로운 어떤 것이 존재하며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성(佛性)이자 법신(法身)이라 부른다. 모든 삶이 이로부터 흘러나오며 서로 다른 모든 현상이 다시금 이 속에 융합된다.”

우리는 마음의 작은 일부인 자아에 갇혀 드러나지 않은 마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도 대부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 힘들어 한다. 그 이유는, 지금 나라고 믿고 있는 작은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더 큰 자기’를 알기 위한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융은 이러한 여행을 바로 ‘무의식의 실현이라는 내적 탐구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기를 향한 탐색의 여정은 마치 불교의 수행자가 스스로 마음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자기의 진면목을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융의 분석심리학과 불교 양측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러한 ‘더 큰 자기(참다운 자기)’를 융은 ‘자기 원형(Self archetype)’, 불교에서는 ‘불성(Buddha nature)’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붓다는 자기 원형(Self archetype)을 실현하였다.’고 주장하는 융이 ‘자기 원형의 실현’과 ‘정각을 이룸(Buddhahood)’을 유사한 정신적 경지로 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융이 현 시대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간결하다.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작은 자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자아는 다만 거대한 마음의 영역 중 일부에서 안간힘을 써가며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일을 억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수많은 일 하나하나에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설렘은 설렘으로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비로소 융이 말한 ‘자기 원형’, 불교의 ‘불성’이 열리는 것이다.

문진건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조교수.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2012~2014),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2015~2019)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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