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국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명 LH사태로 불리는 불법 부동산 투기는 국민들의 거센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는 국민의 삶과 달리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는 행태는 분명 잘못됐습니다. 부동산 투기에 가담한 직원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도덕을 간과한 채 본분(本分)을 저버린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본분’이란 저마다 직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처신을 말합니다.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이 지켜야 할 범주를 벗어난 행위를 하면 지탄과 비난이 뒤따릅니다. 더욱이 직분을 이용한 부정한 행위는 법적 도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본분 일탈 행위는 지도자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LH에서 시작된 투기논란은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관료를 거쳐 광역단체장으로까지 번졌습니다. 한 신문의 3월 18일자 보도에 의하면 모 광역단체장의 배우자는 기획부동산과 짜고 개발지역의 땅을 ‘쪼개기 매입’하는 등 투기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지도자급 위치에 있으면서도 제 본분을 잊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몰두한다면 국민들이 어찌 믿고 따르겠습니까?

그래서일까요? 우리나라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동산 투기’, ‘불법증여 및 탈세’, ‘이중국적’, ‘논문표절’, ‘병역 기피’ 등 각종 분야에서 사회 지도자들의 낯 뜨거운 도덕적 일탈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LH사태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 먼저 지도자급 인사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는 무엇보다 엄중한 도덕성을 갖춰야 합니다. 도덕성은 책임윤리와 직결됩니다. 물론 책임윤리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요구되지만 지도자급들에겐 더욱 크게 요구되는 사항이라 하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신뢰관계가 무너질 것이고,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국민들은 정부정책은 물론 사회의 어떠한 지침도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부당한 이익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들을 따를 국민이 없을뿐더러 이들이 지도자인 사회는 부패와 편법이 횡행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지도자의 덕목을 네 가지로 꼽았습니다. 그는 먼저 지혜를 내세웠습니다. 지혜는 불교에서도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 째 자질로 꼽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정의감입니다. 세 번 째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들었고, 마지막 네 번 째로 절제력을 제시했습니다. 이 절제력이 곧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여 국민의 신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늘 자기 직분을 다하는 삶을 유지할 때 우리 사회는 투명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일을 빨리 이끈다고 바름에 선 사람은 아니다. 옳고 그름 두 가지 모두 살피는 사람은 슬기롭다. 성급하지 않으며, 바르고 공정하게 사람들을 이끌고 바름을 지키면서 슬기로운 이가 바름에 선 사람이라 불린다.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슬기로운 사람은 아니다. 평온하고 미움이 없고, 무서움이 없는 사람을 슬기로운 사람이라 불린다.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바름에 선 사람은 아니다. 들은 것이 적더라도 듣고 손수 깨달아서 바름에 게을리 하지 않는 이, 그야말로 바름에 선 사람이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언제 어디서나 본분에 충실하다면 누구와 다툴 일도, 누구에게 비난을 살 일도 없습니다. 자기 본분을 지키고 항상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우리 불가에서도 역대 조사들께서는 후학을 제접(提接)할 때 절대로 본분사를 놓지 않도록 경책하셨습니다.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게 되면 수행 공동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일반 세속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경제·교육 등 제반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본분을 지키고 책임윤리를 다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맑은 정토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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