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 인생 30년,
불교무용 공연·기획에 매진
“경전 무용화 작업하고 파”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스튜디오 SK’ 소극장에서 만난 이철진 대표. 불교무용 공연·기획에 매진한 이 대표는 앞으로 경전을 무용화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시인 조지훈(1920~1968)의 ‘승무’는대중에게 ‘승무’라는 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승무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여념 없는 이가 있다. 바로 이철진 구슬주머니 대표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줬지만, 특히 공연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예술계에 더 큰 타격을 입혔다. 현재는 거리두기 단계조정으로 좌석 간 1m 거리를 두고 공연을 하고 있지만, 수익은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공연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철진(54·법명 修性) 대표가 이끌고 있는 문화예술단체 구슬주머니는 ‘제7회 불교무용대전’ 개최를 앞두고 있다. 구슬주머니의 대표 페스티벌인 불교무용대전의 예선은 4월 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성균소극장에서, 결선은 5월 1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불교무용대전을 기획하다

“이웃종교에는 ‘선교무용’이라는 정확한 명칭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계에는 ‘불교무용학과’는 고사하고 ‘불교무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불교계와 대중에게 ‘불교무용’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2014년 불교무용대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고, 다음 해부터 불교무용대전을 시작하게 됐죠.”

이철진 대표는 불교무용대전을 통해 대중에게 ‘불교무용’을 알리고 싶었다. 이 대표는 스승으로 모시는 속초 보광사 회주 석문 스님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했고, 스님은 “꼭 해보라.”면서 힘을 실어줬다. 용기를 얻은 이 대표는 먼저 ‘불교무용’의 개념을 “불·법·승 삼보(三寶)를 소재로 하되, 불교를 폄훼하지 않는 모든 무용”이라고 정립했다. 이후 불교무용대전 공모를 시작했다.

이 대표의 바람대로 불교무용대전은 무용계에서 활동하는 불자들에게 공연 발표의 기회를 제공했고, 대중에게는 무용에 관한 관심을 높여줬다. 제1회 대회는 2015년 대학로 ‘스튜디오 SK’에서 개최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의 후원 아래, 1개의 단독작품과 9개의 불교무용을 무대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공연계에서는 “무용계와 불교계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관심에 힘입어 2016부터 2019년까지는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가 대회를 주최했다. 2018년에는 외국의 무용단이 참여하는 무용대전으로 규모를 키웠다. 당시 홍콩댄스 컴퍼니(HKDC)가 홍콩에서 자주 불리는 불교음악을 소재로 출품한 ‘위파사나(Vipasana)’가 큰 인기를 끌었다. 또 싱가포르의 대표적 개인무용단 중의 하나인 ODT(Odyssey Dance Theatre)가 참가해 불교무용의 세계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외국 무용단 참여는 2018년에서 멈췄다. 2019년부터는 서울시가 후원하면서 대회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연 기간을 기존 4주에서 2주로 줄이는 등 규모를 축소해 진행했다. 이 같은 상황과 조계종 내부 사정 등으로 인해 올해 대회는 구슬주머니가 주최하게 됐다.

불교무용대전에서는 불교무용을 비롯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춤을 만나볼 수 있다. 나비·법고·바라 등 전통적인 불교 작법뿐만 아니라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 등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춤을 즐길 수 있다.

이철진 대표가 ‘승무’를 추고 있다. 이 대표는 ‘승무’를 주제로 한 장기공연을 처음으로 기획했다. 2007년 성균소극장에서 ‘보름간의 승무 여행’을 진행한 이래 현재까지 매년 100회 이상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구슬주머니〉

출가 꿈꾸다가 무용 매력 빠져

이철진 대표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 대표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기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신심 돈독한 불자였는데, 길을 가거나 사찰에서 스님을 보면 꼭 멈춰 서서 합장 인사를 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받곤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할머니를 따라 부처님오신날과 사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울 삼각산 도선사를 다니곤 했다.

“할머니가 저한테 늘 하신 말씀이 있어요. 제가 태어나고 삼칠일이 되기 전 한 스님이 집에 찾아와 ‘이 아이는 훗날 산에 올라가 큰 도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름을 지어주셨대요. 그런데 가족들이 정작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죠. 그래서 할머니 말씀을 어릴 땐 믿지 않았는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제가 머리를 깎겠다고 소동을 피운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또 해주시더라고요. 아마 스님이 지어주신 이름대로 했더라면 저는 지금쯤 도인이 됐을 겁니다.”

이 대표의 부모님도 불자였지만 중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 대표는 “어떻게 보면 기독교 선교의 성공사례 같다.”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종교 문제로 부모님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닌 영향으로 불교를 종교로 정했다.

어렸을 때부터 출가를 꿈꿔왔던 이철진 대표는 시간이 지나자 진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철학자를 꿈꿨다. 그는 1985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합천 해인사에서 3~4개월 생활하며 진로를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풀리지않았고, 해인사에서 나온 뒤 2년 가량 방황의 시간을 거쳤다. 그러다 1987년 호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또다시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던 차에 친한 친구로부터 무용학원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대표는 무용학원을 수소문했고, 서울 동대문에 있는 한 전통무용학원을 친구에게 추천해줬다.

“친구와 함께 무용학원을 갔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친구는 그곳에 없고 제가 무용을 배우고 있더라고요. 친구는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둬버렸어요. 저는 음악에 내 몸을 싣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전통무용에 바로 빠져버렸죠. 무용을 배우니 진로가 다시 눈앞에 보이더라고요. 그 후 서울예술대학교 무용과 90학번으로 입학하게 됐죠.”

‘승무’ 주제 첫 장기공연 기획

이 대표는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후 지인의 소개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이애주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애주 선생 밑에서 7개월 정도 살풀이 전판을 배웠고, 그 후 승무 전판을 배웠다. 이 대표는 한성준·한영숙·이애주·이철진으로 이어지는 전승계보를 이었으며, 한영숙류 승무·살풀이춤·태평무 전판을 구사하는 유일한 남성춤꾼이다.

이철진 대표는 현재 서울 대학로에 ‘성균소극장’과 ‘스튜디오 SK’ 등 소극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로에 소극장이 150여 개 있지만 전통예술과 무용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 소극장은 이 두 곳뿐이다. 이 대표가 직접 극장을 운영하는 목적은 장기공연을 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한 관객개발에 있었다. 이 대표는 첫 공연 후 10년 가까이 364일 연습하고 중·대극장에서 하루 공연하는 패턴으로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비효율적인 시간이 아까웠고, 공연에 목말랐고, 대중과 자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소극장을 직접 운영하며 연극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해 ‘승무’를 주제로 한 장기공연을 기획했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 모두 “재미없는 승무를 누가 보겠느냐?”라며 말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이 대표는 2007년 성균소극장에서 ‘보름간의 승무 여행’을 라이브로 진행했다. 걱정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객석에 사람이 가득 찼다. 이 대표는 이 모습을 보며 ‘아! 이거 장기공연을 해도 되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 뒤로 2009년 ‘30일간의 승무 이야기’을 시작으로 2010·2016·2017년 ‘100일간의 승무 이야기’, 2011년 ‘천년 승무 이야기’, 2013년 ‘108일간의 승무 이야기’, 2014년 ‘이철진의 오직 승무’, 2015년 ‘화요 승무 이야기’, 2019년 ‘50일간의 승무 이야기’, 2020년 ‘이철진의 월요 승무 이야기’ 등 매년 ‘승무’를 주제로 1년에 100회 이상 꾸준히 공연했다.

2019년 개최된 제5회 불교무용대전에서 ‘최승희조선민족무용기본보존회’가 북한 전통무용 교본인 ‘조선민족무용기본’을 바탕으로 출품한 ‘무사의 원혼’ 공연.
‘춤 이상 그리고 서정’ 팀의 ‘나비야 청산가자’ 공연. 제5회 불교무용대전 출품작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품이다.

 

“공연하다 보면 관객이 많을 때도 있고, 한 명도 없을 때도 있어요. 공연가 입장에서 자기를 봐주는 관객이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에요. 관객이 적을 때는 불교에서 배운 ‘명상법’을 활용해 100석이 안되는 작은 무대이지만 1,000명이 꽉 차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련 삼아 공연을 하죠. 어느 날 관객 중 한 분이 저에게 ‘이 공연을 50번 넘게 봤는데, 저렴한 비용에 가성비가 좋네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같은 춤을 수천 번 넘게 쳤는데 질리지 않아요. 승무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이 대표는 “40분 승무 공연에 인생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느린 염불장단에 맞춰 시작해 타령장단으로 가면 몸놀림이 군더더기 없이 활달해지며, 청춘의 굳건한 기상이 펼쳐진다. 이어 자진타령에서 이런 기상을 그대로 몰고 가고, 굿거리에서 올라간 숨을 천천히 편안하게 펼치며 원숙미를 보여준다. 휘모리장단으로 넘어가면 인생의 황금기처럼 승무의 정점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마지막에 호흡을 정리하고 관객에게 인사할 때쯤에는 머릿속에 ‘한 세상 잘 살았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공연 때는 ‘다시 생을 시작하자.’라고 되뇌인단다.

수많은 공연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공연은 2010년에 진행한 ‘100일간의 승무 이야기’다. 당시 전통무용계에서는 장기공연 전례가 없었다. 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는데 뜻밖에도 많은 일반 관객이 공연을 봤고, 공연 후반부에는 객석을 가득 채웠다. 이 대표는 “그때의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라며 “전통무용이 공짜 표를 돌려서만 관객을 모으는 게 아니라, 열심히 그리고 진심을 다해 다가서면 관객을 유치할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도 힘들 때마다 돌이켜 보는 공연이다. 또 전통무용과 승무의 밝은 미래와 함께 경쟁력도 느꼈다.

이 대표는 승무 공연을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분석하지 말고 백지상태에서 감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연을 볼 때 사전조사를 통해 ‘저 사람이 어떤 실수를 하나’, ‘저 사람은 내가 알아본 것에 비해 춤을 못 추네’라는 등의 평가를 먼저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공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공연이 끝나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연에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 그냥 춤사위 하나하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철진 대표는 그간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2008년 런던대학교(SOAS)·2010년 시드니 대학교 방문교수, 2015년 코스타리카 국립대학 초빙교수, 2018년 명지대학교 객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또 한국을 비롯 영국·호주·미국·프랑스·벨기에·코스타리카·일본·홍콩·싱가포르 등에서 초청공연을 펼쳤다. 나아가 ‘국제 2인무 페스티벌’, ‘별의 별춤 페스티벌’, ‘전통춤 류파전’, ‘불교무용대전’, ‘맞장’ 등을 기획·제작하면서 기획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20년 12월 18일 ‘이철진의 월요 승무 이야기’ 마지막 공연 후 출연진과 함께. 가운데가 이 대표. 〈사진=구슬주머니〉

경전 ‘무용화’해 선봬고 싶어

이철진 대표는 불교무용이 대중화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에 ‘불교무용학과’를 개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양대·명지대 같은 기독계 계열 대학교에는 ‘선교무용학과’가 있지만, 불교종립학교인 동국대를 비롯해 ‘불교무용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한 곳도 없다. 이 대표는 불교무용을 대중화하고, 활성화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불교무용학과를 만들어 불교무용인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불교무용의 개념을 더 세세하고 다양하게 정립해야 하고, 스타를 배출할 수 있는 공연이 만들어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라는 뮤지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일주일 전부터 십자가형까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죠. 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 세기를 초월한 걸작이에요. 거의 모든 현대 예술가가 이 작품을 거쳐 갔죠. 불교계에도 이 같은 공연이 만들어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철진 대표는 〈능엄경〉·〈열반경〉과 같이 이야기가 있는 경전을 ‘무용화’ 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경전을 무용화해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불교무용 발전은 물론 포교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대표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저 부처님을 주야로 생각하라.’를 좌우명 삼아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지금도 불교무용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교계의 격려와 지원 속에 불교무용과 불교무용인이 더 많은 공연을 통해 대중과 만나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