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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업으로 인한 붓다의 수난2_ 두통을 앓은 원인물고기 죽음 보고 즐거워한 과보를 받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의 두통(頭痛) 발생은 석가족의 멸망과 동시에 일어난다. 정각 후에도 부처님께 다양한 질병이 일어났지만, 두통이 언급된 것은 아마도 부처님의 세수가 79세일 때 코살라(Kosala)국왕에 의해 석가족이 멸족당할 때이다.

석가족의 멸망

파세나디(Pasenadi)는 코살라국왕으로 즉위하고, 곧이어 석가족의 공주와 결혼하고자 했다. 파세나디왕은 신하를 석가족에게 보내 왕족 여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석가족들은 왕의 요청을 불쾌하게 여겼다. 석가족은 자신의 부족에 대해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파세나디왕의 가문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강력한 코살라국 파세나디왕의 요청을 거부하면 커다란 환난을 당할 것이 두려워 한 가지 해결 방안을 만들어냈다.

석가족은 왕족 마하나마(Mahanama)와 하녀 사이에 태어난 딸 바사바캇티야(Vasabhakhattiya)를 왕녀로 속여 파세나디왕에게 보냈다. 하녀에게서 난 처녀를 왕비로 시집 보낸 것이다. 파세나디왕은 그 처녀를 맞아 기뻐하며 곧 왕비로 삼았다. 왕비는 비두다바(Vidudabhava, 毘盧擇伽)라는 아들을 낳았다.

비두다바가 여덟 살이 되자 파세나디왕은 아들이 활쏘기를 배울 수 있도록 석가족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로 보냈다. 석가족은 활솜씨가 뛰어난 부족이었다. 마침 카필라바스투 성에서는 새로 아름다운 강당을 지어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시고 화려하게 낙성식을 봉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비두다바 왕자가 강당의 단상에 올랐다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석가족 사람들이 화를 내며 노비의 소생이라 버릇이 없다며 꾸짖으며 내쫓았다.

“이 종년의 자식아! 이 자리가 누구를 위한 자리인데, 감히 이 종년 자식이 강당 안에 들어와 그 자리에 앉다니.”

그리고 비두다바 왕자가 앉았던 의자를 우유와 물로 씻어냈다. 자신이 석가족 노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비두다바는 모욕과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훗날 반드시 우유 대신 피로 석가족을 씻어내겠다는 복수심을 품었다. 그리고 동행했던 호고(好苦)라는 신하에게 오늘의 모욕적인 일을 반드시 매일 상기시키라고 일러두었다. 그로부터 호고는 본국으로 돌아와서도 하루 세 번씩 “석씨들에게 모욕당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상기시켰다.

파세나디왕은 석가족이 공주가 아닌 하녀를 자신의 왕비로 보낸 사실을 알고, 석가족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파세나디왕은 그때까지 바사바캇티야가 누렸던 왕비의 지위를 빼앗고, 비두다바의 태자 지위도 박탈한 후 비천하게 대하도록 했다. 얼마 후 부처님은 파세나디왕을 방문해 석가족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지만 왕비와 비두다바 모두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충고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들의 지위를 예전처럼 복원시켰다.

파세나디왕이 죽고 비두다바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석가족에게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석가족 정벌에 나섰다. 부처님께서는 비두다바왕이 석가족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코살라국 병사들이 오는 길목에 있는 한 고목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삽화=필몽〉

이 모습을 본 비두다바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을 놓아두고 어찌하여 앙상한 고목 밑에 계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친족의 그늘이 다른 것보다 낫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비두다바왕은 군사를 물렸다. 그러나 호고가 날마다 ‘어릴 때 당한 모욕을 잊지 말라’는 말을 하자 비두다바는 2차·3차로 진격을 했고, 그때마다 부처님께서는 앙상한 나무 밑에 앉아 코살라국 군사들의 길을 막았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비두다바왕의 진군을 세 차례 막았으나 네 번째에는 석가족의 업보가 무르익은 것을 알고 막지 않았다.

네 번째 출병 때는 부처님께서 자신의 진군을 막지 않자 비두다바왕은 막강한 코살라국의 군대를 몰고 카필라바스투로 나아갔다. 왕은 군사를 이끌고 성안에 들어가 석가족 사람들을 잡아 목만 내어 놓고 땅에 생매장을 한 다음, 그 위로 코끼리를 다니게 해 밟아죽이도록 했다. 수많은 석가족이 살해되어 흐르는 피는 강물을 이루었다. 석가족 미녀 500명이 왕의 수청을 거부하자 왕은 화를 내어 500명의 여자를 모두 잡아다 손발을 자르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버렸다. 이렇게 석가족이 살육당하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심한 두통을 겪게 되었는데, 그 고통은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심했다.

부처님의 두통 원인

전생에 부처님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아이였을 때 물고기가 잡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이러한 악업에 기인해 삼악도에 떨어져 수많은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업이 모두 소멸되지 않아 이번 생애에 석가족 왕자로 태어나 정각을 이룬 뒤 말년에 두통을 겪게 된 것이다. 즉, 어촌에 태어나 물고기가 죽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던 것이 악업이 되어 두통이라는 과보(果報)를 받게 되었다.

전생에 지은 어떤 악업이 두통을 발생시켰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전생에 무슨 업을 지으셨기에 정각을 이루신 뒤에도 다른 종족이 석가족을 죽였을 때 세존께서는 두통을 앓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가 옛날에 스스로 그러한 업을 지었기에 다시 스스로 그 과보를 받은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석가족의 멸망과 부처님의 두통 원인에 대해 말씀하셨다.

“옛날 이 왕사성 인근에 한 어촌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고, 금 한 되로 쌀 한 되를 바꾸었다. 그 어촌에는 큰 못이 있었고, 거기는 물고기가 많았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그 못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때 그 못에는 커다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하나는 이름이 ‘구소(拘璅)’이고, 또 하나는 이름은 ‘양설(兩舌)’이었다.

두 물고기는 서로에게 ‘우리는 전에 이 사람들에게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또 우리는 물에 사는 생물로서 땅에 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몰려와서 우리를 잡아먹는다. 우리가 언젠가 내세(來世)에 사람이 되면 이 원한(怨恨)을 갚자.’고 말했다.

그 때 어촌에는 어떤 어린아이가 있었다. 나이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그는 고기를 잡지도 않고 또 생명을 죽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고기들이 언덕 위에서 모두 죽는 것을 보고 매우 재미있어 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 왕사성의 어촌 사람들은 지금의 석가족이고, 과거의 구소 물고기는 지금의 비두다바왕, 과거의 양설 물고기는 현재의 호고이며, 과거에 언덕에서 죽는 물고기를 보고 웃던 어린아이는 바로 부처님 당신이라고 말했다.

“물고기 잡은 사람의 어린아이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내가 바로 그이니라. 옛날에 물고기를 죽일 때에 나의 마음이 유쾌하고 즐거웠다. 이런 업으로 말미암아 무량 백천 세(歲)를 지내는 동안에 두통을 앓았다. 남은 업보로 말미암아 정각을 이룬 뒤에도 석가족이 죽임을 당할 때 내 머리가 아팠던 것이니라.”

결국 과거생에 석가족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무수한 겁을 걸쳐 지옥에 떨어졌고, 멸족으로 그 갚음을 받은 것이다. 부처님도 과거생에 앉아서 물고기의 죽음을 바라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돌로 치는 것 같이 아프고, 또 머리 위에 수미산을 인 것처럼 두통을 겪은 것이다.

〈삽화=필몽〉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다른 사람이 지은 악업의 과보는 부처님조차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석가족의 멸망은 부처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세 번째까지 비두다바왕의 진군을 막았으나 네 번째는 석가족이 전생에 지은 살생의 악업이 숙성한 것을 알고 더 이상 막지 않았다. 목건련 등이 석가족을 구하기 위해 신통력으로 비두다바왕의 진군을 막으려 했으나 부처님께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만류했다. 업의 과보는 신통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점은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는 부처님조차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전생에 물고기가 잡혀 죽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 죄업으로, 현세에 정각을 이루어 세존이 됐으면서도 석가족이 멸망할 때 두통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일반 범부 중생이 어찌 그 죄악의 과보를 면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살생 따위의 죄업을 쌓아서는 안 된다. 몸소 살생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살생하는 것을 방조하거나 즐기는 것도 커다란 악업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양규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장·불교문화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글 안양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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