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이 2월 25일 불기 2564년 경자년(庚子年) 동안거 해제를 맞이해 법어를 내리고 대중의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진제 스님은 결제 법어를 통해 “해제일인 지금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가지고 결제와 해제에 부관하게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며 “온 정신을 화두에 모아야만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고 일념삼매(一念三昧)하면 대오견성(大悟見性)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관계자에 따르면 불기2564년 경자년 동안거 결제일인 2020년 11월 29일부터 전국 93개 선원에서 총 1,951명이 안거 수행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도 결제 법어를 통해 “한겨울 90일을 두고 빠르다 하면 화두일념으로 백척간두에 우뚝 선 천하대장군 수행자이고, 느리다하면 끝없는 생사고해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이름뿐인 수행자”라며 “정점을 향해 활을 떠난 화살이 해제와 결제가 어디 따로 있겠느냐마는 그저 이름만이 분별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안거(安居)는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 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기간을 말한다. 다음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의 동안거 해제법어 전문.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법어 전문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太平治業無像(태평치업무상)이요
野老家風至淳(야노가풍지순)이라.
只管村歌社飮(지관촌가사음)하니
那知舜德堯仁(나지순덕요인)이리요.

태평세월에 업을 다스리는 데는 상이 없음이요, 들 늙은이들의 가풍은 지극히 순함이라. 다못 촌에서 노래하고 모여서 마시는지라, 이에 순임금의 덕과 요임금의 어짊을 어찌 아리요.

금일(今日)은 경자년(庚子年) 동안거 해제일이라.

결제대중이 삼동구순(三冬九旬) 동안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세상과 단절(斷絶)하면서 밤낮없이 용맹정진한 것은 가상(嘉尙)한 일이나, 대장부의 활개를 치고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음이라.

어째서 그러한가?

중생(衆生)들은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반연(攀緣)과 습기(習氣)의 업(業)으로 인해 혼침과 망상으로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라.

나고 죽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 한 번의 발심(發心)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한번 해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가지고 결제와 해제에 무관하게 전 생애를 걸어야 한다.

화두를 챙길 때는 살얼음 위를 걷듯이, 시퍼런 칼날 위를 걷듯이 온 정신을 화두에 모아야만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고 몰록 일념삼매에 들어 일기일경(一機一境)상에 홀연히 대오견성(大悟見性)하게 됨이라.

이는 새벽이 오면 반드시 날이 밝듯이 화두일념이 현전(現前)하여 지속되기만 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게 됨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들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챙기고 의심해야 함이로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선지식(善知識) 가운데 으뜸가는 위대한 선지식이고, 종문(宗門)의 귀감(龜鑑)이신 덕산(德山)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대중을 지도하고 계셨다.

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두었는데, 한 분은 암두(岩頭) 선사로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또 한 분은 훗날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신 설봉(雪峰) 선사였다. 이로 좇아 운문종(雲門宗)과 법안종(法眼宗)이 출현했다.

하루는 덕산 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발우(鉢盂)를 들고 공양실로 걸어가셨다. 공양주인 설봉 스님이 이 모습을 보고 여쭙기를,

“조실스님,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

그 광경을 설봉 스님이 사형(師兄) 되는 암두 스님에게 말하니, 암두 스님이 듣고는 대뜸 말하기를,

“덕산 노인이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자신의 스승이건만 단번에 이렇게 평가를 하니, 법을 논(論)함에 있어서는 스승과 제자를 따지지 않는 법이로다.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 뜻이 무엇이며, 암두 스님은 어째서 덕산 선사가 말후구 진리를 알지 못했다 했는지 알아야 함이로다.

암두 스님의 그 말이 총림에 분분하여 덕산 선사의 귀에 들어가니 암두 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

“네가 왜 내가 말후구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고?”

하시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다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은밀히 속삭였다.

그런 후로 뒷날 덕산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을 하시는데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하게 법문하셨다. 법문을 다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손을 잡고,

“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법은 천하도인이라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합니다.” 하니, 덕산 선사는 과연 3년 후에 열반(涅槃)에 드셨다.

암두 스님의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 대문(大文)을 아시겠습니까?

대체 무엇이라고 속삭였기에 덕산 선사께서 종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한 법문을 하신 것입니까?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이 공안은 백천(百千) 공안 가운데 가장 알기가 어려운 법문이라. 천하 선지식도 바로 보기가 어려워 이 법문에 대해서 평(評)을 한 이가 거의 없음이로다. 그래서 이 공안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 대오견성을 했다고 인정함이로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도저히 혼자서는 다 알았다고 할 수 없기에 반드시 먼저 깨달은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점검받고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 즉, 정법(正法)을 이은 선지식으로 부터 점검받은 바 없이 혼자서 ‘깨달았다’ 하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일 뿐이라고 못을 박아놓으신 것이로다.

이렇듯 대오견성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와 탁마(琢磨) 아래 철두철미한 신심과 태산을 무너뜨릴 기상(氣像)이 있어야 함이로다.

그러면 금일 모든 결제대중은 이 덕산탁발화 법문을 아시겠습니까?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하니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이로다.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그 위대한 임제 선사도 백염적(白拈賊)이 되지 못함이로다.

산승이 어째서 이와 같이 점검하였는지 대중은 잘 살필지어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불기 2565년 2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 법어 전문

(법상에 올라 良久한 뒤, 주장자로 법좌를 한번 치고)

山色水流諸佛現(산색수류제불현)
門外倕是悟無生(문외수시오무생)

산빛에 물 흘러 모든 부처 나타나니
문밖에 그 누가 생명 없음을 아는가

〔할(喝)을 한 번 하고〕

오늘이 해제라 하니 어떤 해제인가. 한겨울 90일을 두고 빠르다 하면 사견망상(邪見妄想)과 수면마(睡眠魔)를 취모리(吹毛利) 한 칼에 쳐버리고 화두일념으로 백척간두에 우뚝 선 천하대장군 수행자요, 느리다 하면 천지가 개었다 흐렸다 하다가 미륵하생(彌勒下生)에도 조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없는 생사고해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이름만 수행자라 할 것이다.

정점을 향해 활을 떠난 화살이 해제와 결제가 어디 따로 있으리오마는 그저 이름만이 분별할 뿐이다. 그렇기에 옛 인도의 싯달타 청년 왕자는 만고의 부유만덕 속에 생로병사의 현상을 한 번 보고 할애(割愛) 출가하니 6년 고행에서 유아독존의 부처를 이루었고 옛 중국의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은 육조(六祖)의 한마디 말에 8년을 추구하다 확연대오하여 육조의 법맥을 이었다. 이를 누가 모르며 삼세의 모든 부처와 역대 전등의 조사 가풍을 누가 모르겠는가.

대지에 뿌리를 뻗고 자라난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오직 그 나무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무심히 지나는 바람결과 그 바람을 따라가는 흰 구름이 스치는 바위는 요지부동이거니 짚신 한 짝 지팡이에 메고 총령 고개를 넘는 달마 대사를 알아차린 늙은 바위가 대중을 향해 노래 한 곡 부르겠다 한다.

木鷄鳴子夜(목계명자야)
芻狗吠天明(추구폐천명)
陰陽不到處(음양부도처)
一片好風光(일편호풍광)

나무 닭 한밤중에 울고
짚으로 만든 개 하늘 밝다 짖으니
그늘도 볕도 이를 수 없는 곳
한 조각 경치 더없이 좋네

나무아미타불

대중들이여. 이 노래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알아도 차 한 잔하고 몰라도 차 한 잔 하라.

조주(趙州) 스님이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 있는 곳에 머물지 말고 부처님 없는 곳에서 급히 달아나라. 삼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잘못을 일으켜 세우지 마라”고 하니, 어떤 수행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가지 않겠습니다” 이에 조주 선사가 “적양화(摘楊花)여, 적양화여!” 하였다. 적양화는 버들꽃을 땄다는 말이다. 수행자가 나가지 않겠다는 말에 조주 선사가 “버들꽃을 땄구나” 했는데 이 무슨 도리일까.

조주 선사가 열반한 백여 년 뒤에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가 이와 같이 송(頌)하였다.

有佛處不得住(유불처부득주)하니
生鐵秤錘蟲蛙(생철칭추충와)요
無佛處急走過(무불처급주과)하니
撞着嵩山破竈墮(당착숭산파조타)로다.
三千里外莫錯擧(삼천리외막착거)라 하니
兩箇石人(양개석인)이 相耳語(상이어)로다.
伊麽則不去也(이마즉불거야)라 하니
此語己行徧天下(차어기행편천하)로다.
摘楊花摘楊花(적양화 적양화)

부처님 있는 곳 머물지 말라 하니
무쇠 저울추에 벌레와 개구리가 살아나고
부처님 없는 곳 급히 달아나라 하니
숭산에서 파조타를 만나게 되는구나
삼천리 밖에 잘못 드러내지 말라 하니
돌사람 둘이 서로 귓속말하는구나.
가지 않겠다 한즉, 이 무엇이냐
이 말이 천하를 덮어버림이로다.
“버들꽃을 땄구나, 버들꽃을 땄구나”라 하였다.

이 운문문언 선사의 송(頌) 끝 부분에 숭산파조타(嵩山破竈墮)라는 구절이 있다. 숭산은 중국의 산 이름이고 파조타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노안(老安) 파조타(破竈墮) 화상을 말한다. ‘노안’은 선사의 법호이고 ‘파조타’는 조왕단(竈王壇)을 때려 부쉈다는 뜻이다. 숭산 부근의 숭악(嵩岳)에 사당이 하나 있었고 그 사당 안에 조왕단이 있었다. 이 조왕단에 공을 드리면 곧 영험이 나타나서 바라던 소원이 놀랄 만한 결과로 성취되곤 했다.

어느 날 노안 화상이 대중을 데리고 그 사당을 찾아갔다. 화상이 주장으로 조왕단을 세 번 때리고 크게 돌(咄)한 후에 말씀하셨다. “조왕단은 진흙과 기왓장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성스러움은 어디 있고 영은 어디서 생기는 것이기에 성령(聖靈)으로 삼느냐” 하면서 다시 주장자를 들어 세 번 치자 조왕단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그 자리에 푸른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쓴 노인이 나타나 노안 화상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노안 화상이 “너는 누구냐” 하니 그 푸른 옷 입은 형상이 “나는 본래 이 사당의 조왕대신으로 오랫동안 한마음으로 견성의 길을 가지 못한 업보를 받아오다가 오늘 큰 스님께서 무생법문(無生法問)을 들려주셔서 홀연히 깨달아 이곳을 벗어나 천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큰 스님께서 내려 주신 법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노안 화상이 “이는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을 가르쳤을 뿐 내가 말을 이른 것이 아니다”라고 이르자 조왕대신은 합장으로 세 번 절하고 사라졌다. 이와 같이 조왕대신을 성불의 길로 제도하였으므로 후세까지 파조타 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들은 이 얘기의 뜻을 알겠는가.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세 번 치고)

此道從来貫萬事(차도종래관만사)
靜觀無物不歸空(정관무물불귀공)
雖然失脚蹉毫未(수연실각차호미)
異見紛紜各不同(이견분운각부동)

이 도는 본래 모든 일에 통하여 꿰어 있다
고요히 관찰하면 물질이 없이 빈 곳으로 돌아가네
그러나 실각하여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견해가 달라 각각 어지럽고 같을 수가 없다네

나무 아미타불

(법상에서 내려오다.)

불기 2565. 2. 26.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지허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