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지상설법
<지상설법> 그 누구도 해함을 받아선 안된다
  • 천태종 문덕 총무원장
  • 승인 2021.02.25 09:39
  • 댓글 0

신축년을 맞아 우리나라 국민들이 바라는 새해 소망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퇴치를 통한 일상생활의 회복이 꼽혔다고 합니다. 이어서 국민들의 화합과 화해를 바라는 평화가 가장 큰 소망으로 나타났다고 언론매체가 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평화를 통한 행복한 일상생활을 국민들은 강렬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벽두부터 외신을 타고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평화적인 시위를 군부가 물리력을 동원해 제압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폭력은 불법한 방법으로 행사되는 온갖 물리적 강제력을 말합니다. 이러한 폭력은 상대로 하여금 혐오감과 모욕감을 안긴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특히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불교에서 폭력은 불성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해 엄중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잡아함경〉 권4에서는 ‘누가 천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선 “위선을 행하며 그릇된 소견을 가진 자,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압제하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자, 바른 것을 은폐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자, 이 모든 사람이 바로 천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압제하는 자’는 그 죄업이 더 중대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핍박과 압제로서 불성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이를 괴롭히는 행위는 중대한 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업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게 불교의 입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해(害)함을 받아선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오계(五戒)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불살생(不殺生)은 단순히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뜻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불살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해(不害)’로도 번역됩니다. ‘남을 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본래의 어원은 ‘해하다’·‘죽이다’는 범어 ‘힘사(himsa)’에 부정 접두사 ‘a’를 붙여 ‘아힘사(ahimsa)’가 되고, 이는 ‘불살생’·‘불상해’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불살생의 적극적인 뜻은 누구에게나 해함을 받도록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한 후 “기이하고 기이하다. 온 세상의 모든 중생이 모두 다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가지고 있도다. 다만 망상의 집착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어떠한 위협이나 해코지를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불성을 해하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크게 깨달아 실천에 옮긴이가 저 유명한 아쇼카 대왕입니다. 그는 영토확장을 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습니다. 아쇼카 대왕은 이후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법을 전파해 평화를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나라 곳곳에 돌기둥[石柱]을 세워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과 살생금지 등의 칙령을 새겨 국민들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살육의 왕에서 평화의 전법사로 거듭난 아쇼카 대왕의 이같은 치적은 훗날 세계평화를 말할 때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아쇼카 대왕이 실천으로 행하였듯이 평화를 아주 중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폭력행위에 침묵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더욱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력을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불자들로선 응당 그 같은 괴로움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어야 마땅합니다. 경전에서도 강조했듯이 폭력은 ‘미완의 여래’를 괴롭히는 아주 천한 행위로 이를 막아야 할 책무가 불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모든 폭력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 근본 요인은 욕구불만이나 열등감에 있습니다. 이 자기 콤플렉스가 폭력적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분석입니다. 불교에서는 무명(無明)이 폭력을 부른다고 보기도 합니다. 갇힌 사고와 자기밖에 모르는 시각에서 실상을 왜곡하여 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의 가치와 존엄을 무시하게 되고 이것이 폭력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은 또 상습이 됩니다. 처음엔 상대에게 위협을 안겨주는 언어적 폭력으로 시작된 것이 나중엔 무조건적 적개심으로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과다한 폭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에 대한 소중한 인식과 폭력의 그릇됨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폭력이 용서받지 못하는 사회가 될 때 진정으로 너와 내가 함께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태종 문덕 총무원장  ggbn@ggbn.co.kr

스마트폰 어플로 만나요, '천수천안 금강신문'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태종 문덕 총무원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