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 서울대병원…발인 2월 19일

故 백기완 소장이 2017년 5월 31일 ‘명진 스님 승적 박탈 철회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모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금강신문 자료사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월 15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항년 89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모란공원이다.

故 백기완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1946년 월남했다. 1964년 함석헌ㆍ계훈제ㆍ변영태 등 재야운동가와 함께 한일협정 반대 운동에 참가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재야 정치인인 장준하와 백범사상연구소 설립과 민족학교 운동도 전개했다.

이후 1974년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 등 민주화 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된 뒤 1979년 ‘YW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인 시(詩) ‘묏비나리’ 원작자이기도 하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두 차례에 걸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이후 본인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통일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의 노동자 추모 기도회 등에도 참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故 백기완 소장은 생전 “나에게 보낼 조화가 있으면 소외된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말했으며, 뜻에 따라 유족들은 청와대를 비롯한 조화 등을 모두 사양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