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를 맞아 신년운수를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예년에 비해 훨씬 늘었다고 합니다.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젊은 세대도 예외가 아닌가 봅니다. 젊은층 사이에서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온라인 점집’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취업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으로 신년운세를 본다고 합니다. 힘든 취업난 상황에서 신년운세를 통해 심적 위안을 얻기 위한 방안이라고 하니 과연 그것이 위로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점괘가 나오든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귀가 솔깃한 말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꼬드기면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옛 역대조사들은 진리를 구함에 있어 절대로 언설(言說)에 현혹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완릉록(宛陵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상공 배휴(裵休)가 황벽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산중의 400~500 대중 가운데서 몇 명이나 스님의 법을 얻었습니까?”

황벽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법을 얻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도는 마음을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 어찌 언설에 있겠느냐? 언설이란 다만 어린아이를 교화할 뿐이다.”

황벽 스님의 말씀은 진리를 구함에 있어 언설에 현혹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경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설은 사람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믿게 되면 그 사람의 언설에 넘어가고 그 사람의 언설에 넘어가게 되면 정작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언설에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운와기담(雲臥紀談)〉에 나오는 비구니 혜광(慧光) 스님은 언설을 탐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북송 제8대 황제 휘종(徽宗, 재위 1100~1125) 때 궁중에서 황제가 장로 선사들에게 법의(法衣)를 시주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혜광 노비구니도 그 자리에서 차례대로 설법을 하게 되었는데 맨 마지막에 배정되었습니다. 모든 장로들의 설법이 끝나고, 법좌에 오른 혜광 노비구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선과 도를 논하는 것으로 치자면 많은 대선사들이 이미 다 해버렸는데 여기에다 이 산승에게 다시 무슨 말을 더 하라는 것인가? 옛 분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수많은 말과 갖가지 해석은 오직 그대들을 길이길이 혼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혜광 노비구니는 법의로 머리를 뒤집어쓰고 한참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머리에 법의를 덮어쓰니 만사가 끝장이다. 이제 산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노라.”

이날 설법을 들은 승려와 속인이 무려 만 여명에 이르렀는데 감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훗날 혜광 노비구니의 탑명에 ‘박식하고 논변에 능하다.’는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도를 가르치는 수단이 비단 언설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황벽 스님과 배휴와의 다음과 같은 대담도 언설에 관한 진리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휴가 묻습니다.

“스님께서는 제가 한 말씀이라도 드리기만 하면 어찌해서 바로 말에 떨어진다고 하십니까?”

이에 황벽 스님이 답했습니다.

“그대 스스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거늘 무슨 잘못에 떨어짐이 있겠느냐?”

‘말에 떨어진다[話墮]’는 용어가 선어록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제불조사가 말씀하는 그 뜻을 간파하지 못하고 말 그 자체에 끌려 다니는 수행자들을 경책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말과 생각 너머의 공간이 바로 자신의 불성, 법신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말로서 말만 따라다니며 그 뜻을 알려고 하면 스스로 진리의 문을 닫아버리는 꼴이 되고 맙니다.

앞에서 ‘언설이란 어린아이를 교화할 뿐이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치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언설이 방편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방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방편에 집착해 정작 봐야 할 달, 즉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신년운세는 그저 재미삼아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운세에 집착해 거기에 자신을 가둬버리면 정작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거든 그 길을 향해 쉼 없이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원력을 세워 정진할 때 성취되는 법입니다. 신축년 새해, 여러분에게 드리는 덕담은 바로 언설보다 실천이 여러분의 꿈을 이루어주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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