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지킴이 외길 “문화재 국민인식 바뀌어야”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과 삼성출판박물관 관장으로 활동하며 ‘문화재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그를 구랍 15일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만나봤다. - 편집자

김종규 이사장이 삼성출판박물관에서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200명 후원회원 10년만에 80배 불려
천태종 중앙신도회장으로 활동하기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위치한 ‘옛 보성여관’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반란군 임만수 대장과 토벌대원들이 기거한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이다. 1935년 한옥과 일본식 가옥이 결합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건립돼 문화재적·건축사적 가치가 높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등록됐다. 그러나 오랜 세월 방치되면서 심하게 낡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곳의 보전(保全)에 앞장선 곳이 바로 공익법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다. 이 단체는 2008년 매입 후 2년간의 보수를 거쳐 숙박시설과 카페·소극장을 갖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칫 추억 속의 건물로 남을 뻔한 ‘옛 보성여관’이 지금까지 지역 명소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0명 회원 1만6,000명으로

“우리 선조들은 후손들에게 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고려 때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조선에 와서는 민족 문자인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이밖에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아쉽게도 외세의 침입 때 약탈을 당하거나 외국으로 반출됐고, 잘 보전하지 못해 훼손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자연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후손들도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잘 보호하고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81, 이하 국민신탁) 이사장을 구랍 15일, 서울 종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만났다. 그는 국민신탁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모아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매입해 국민 소유로 영구보존하는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를 본보기 삼아 설립한 민간단체라고 소개했다.

2006년 창립 당시 설립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2009년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세 차례 이사장을 연임(임기 3년)했다. 문화재지킴이 ‘10만 양병’을 주창해온 그의 노고 덕분에 200여 명에 불과했던 회원은 11년 동안 1만6,000명으로 늘어났다. 국민신탁은 이 회원들이 내는 월 회비(청소년 3,000원, 성인 5,000~1만원)로 문화유산을 매입하는 등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후원회원은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설립 취지를 설명한 후 곧바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면 이것부터 가입하라.”며 후원신청서를 내밀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데 동참하라는 권유이니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국민신탁 후원가입을 적극 권한다. 1만6,000명의 든든한 후원회원이 만들어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후원회원은 단순히 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다보면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동참과 이를 통한 사회변화에 동참하게 된다. 조금씩이나마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이런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후원회원들의 역할은 지대하다.

“사실 국보나 보물만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동구 밖 당산나무도 보존해야 할 유산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문화유산은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습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훼손된다면 후손들은 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동안 국민신탁은 후원을 통해 모은 자산으로 △이상 시인의 옛집 △경주 남산지킴이 윤경렬 선생 옛집을 매입했고, 기업으로부터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을 기증받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외 △울릉도 도동리 일본식 가옥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 등은 위탁재산으로 지정·관리하고 있습니다. 건물 매입비용은 높은 반면 기부와 후원금은 한정돼 있다 보니 사업에 제약이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국민신탁 홍보에 열을 올리며, 후원회원 증대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문화유산 보존은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정부에 기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 이사장은 “어떤 후원회원은 가입을 한 후 ‘애국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 애국을 하신 것이다. 애국은 특별한 게 아니다. 문화유산지킴이로 발걸음을 내딛은 것 자체가 애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말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보성여관 전경(등록문화재 제132호).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이상의 집(비지정 문화재).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이 국민신탁 창립을 주도하고, 지금까지 10여 년 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건 그가 이전부터 문화유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의 출판전문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 관장도 맡고 있는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 1965년 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으로 일할 당시부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돌아다니며 고서(古書)를 대거 사들였다. 피난 온 지식인들이 생계를 위해 내다판 희귀서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5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은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3, 〈월인석보(月印釋譜)〉 권22·23,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등 국보 1점과 보물 9점을 포함해 10만 여점에 이른다. 그는 개관 30주년을 맞은 삼성출판박물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비롯한 세계적 인쇄기술과 전통 출판문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즘 전자매체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창의력과 지적호기심은 독서로부터 길러집니다. 디지털정보시대에 맞는 정보습득도 중요하지만 디지털기기에만 의존해선 안 됩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역할이 다르듯 출판물도 종이책과 전자책의 역할과 분야는 나눠져야 합니다.”

그동안 삼성출판박물관은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유산 교육활동과 청소년 인문학강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왔다. 문화유산의 보전과 전수란 점에서 국민신탁과 박물관이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김종규 이사장은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문화계 대부’로 불린다. 그동안 문화예술계 현장을 뛰어다니며 한국박물관협회 회장·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서울세계박물관대회 공동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한 이력과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문화재지킴이를 자처하는 활약상이 이를 대변한다. 2016년부터 3년간 천태종 중앙신도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지금도 각종 문화계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김종규 이사장이 문화계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에게 삶 속에서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김 이사장은 이 질문에 중국 후한(後漢)시대 학자 최원(崔瑗, 78~143)의 좌우명 일부를 인용해 “시인신물념 수시신물망 무도인지단 무설기지장(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 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베푼 것은 생각하지 말고, 받은 것은 결코 잊지 말라. 다른 사람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자기 자랑은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겸손하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삶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문화예술계의 마당발로 통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김 이사장은 90세까지 활동을 한다는 가정 아래 인생을 3막으로 나눠 대답했다. 태어나서 30세까지 배우며 익힌 시기를 1막, 이후 60세까지 생업에 매진한 시기를 2막이라고 규정한 그는 인생 3막은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출판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도, 12년간 무보수로 국민신탁을 이끌고 있는 것도 자신의 삶 속에서 배우고 익힌 문화유산에 대한 노하우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함이란 의미이다.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잘 물려주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합니다. 엄격한 문화재보호법도 탄력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고건축물이 외풍이 심해 생활이 불편하고, 재래식 화장실이 수리가 불가피하다면 전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과정은 국가와 시민, 거주자 모두가 함께 상생할 때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입니다.”

인생 3막을 항해 중인 김종규 이사장. 그는 보다 많은 청소년들, 불자들, 시민들이 자신과 같은 ‘문화재지킴이’의 항로를 따라 항해하길 소망했다. 신축년 새해, 그의 바람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