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양상 큰 변화
적절한 대응, 자기 성찰로
시대 이끄는 불교 되자

지난 한해는 정말로 바닥을 쳤다. 코로나 사태로 1년 내내 몸살을 했고, 그것이 연말이 되어서는 좀 더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는 바람에 온 국민의 마음까지도 위축이 돼 버린 모양새였다. 그렇게 한해를 보내고 나니 또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지친 마음은 “올해는 이렇게 이렇게 잘 해야겠다!”라는 식으로 적극적 희망을 피력하기 보다 “올해는 좀 나아야 할 텐데…….”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바닥을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만 아팠던 것이 아니었고 세계가 함께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을 대처하는 방식과 태도는 상대적이다. 그런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 사태뿐만 아니라 선거를 둘러싼 잡음까지 일어 국격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진 미국을 보라! 우리가 1등 문화국가이며, 선진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큰 수확이다. 그 자부심이 든든하게 우리를 받쳐갈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 대한 세계의 인식이 달라졌고, 달라진 인식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국제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픔을 겪는 과정이란 우리가 본디 취약성을 지니고 있었던 부분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우리 사회의 취약했던 부분들이 코로나 사태의 아픔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 지났다고 그것을 잊지 말고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그것의 해결을 촉구하고, 그 이행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백년대계가 탄탄해 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 우리 국민이 아픔을 헤쳐가는 가운데 우리 불교 또한 지혜롭게 그 사태를 대처해 왔다. 그것 또한 국제관계처럼 상대적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인격적 감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종교이다. 그러니 모든 종교가 다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그것 또한 상대적이다. 다른 종교가 받은 타격이나 이미지 실추에 비하면 불교는 참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부처님오신날’을 맞으면서 의연하게 ‘서원의 등’ 달기 운동을 통해 코로나의 아픔을 우리의 공업으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정부의 방역수칙에 철저히 호응하면서 영상포교 방식을 새롭게 개발하기도 하는 발전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는 삶의 양상 변화에 불교는 오히려 적절한 대응책을 지닌 종교라 할 수 있다. 대중 속에 휩쓸려가던 삶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새롭게 정립하는 수행의 방편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인드라망의 ‘무한중중연기’라는 통찰로 파편화, 고립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분하게 자기를 찾아가는 방편을 제공하는 종교로 선다면 불교가 이 시대를 이끄는 참 종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을 통해 성취한 저력, 그것이 우리나라와 우리 불교의 올해를 이끌어가도록 힘찬 걸음을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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