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

○… 올해 미수(米壽, 88세)가 되는 어머니는 2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골든타임에 늦지 않아 치료를 잘 받았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현재 ‘존엄 케어’ 시스템을 갖춘 요양병원에 2년째 머무르고 계신다. 이 요양병원에는 60대부터 90대까지의 어르신들이 병실마다 가득 차 있다. 대부분 뇌졸중·뇌경색·파킨슨 질환·치매 등을 겪고 있는 분들이다. 이 병원만 입원환자가 많은 게 아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요양병원은 물론 각종 요양시설마다 환자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2020년 9월말 기준 우리나라 장기요양기관은 2만5,000곳을 넘어섰다.

○… 쉰을 넘은 후부터 부쩍 ‘늙음’에 대한 상념이 많아졌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출연자를 볼 때도, 출퇴근을 하며 전철을 탄 승객을 보다가도 그런 생각을 한다. 가끔은 내 나이 서른 때 돌아가신 아버지도 회상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종전 직후 해군 하사관으로 전역했다가 곧바로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서른둘에 경위계급을 달았으니 고속승진을 한 셈인데, 이후 20년 동안 진급을 못해 쉰둘에 계급정년을 하셨다. 딱, 지금 내 나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지 모르겠다.

○… 2,600여 년 전 북인도에 살던 싯다르타 태자는 성의 동문 밖으로 나갔다가 ‘흰 머리에 굽은 등을 한 채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마주했다. 노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늙음’은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첫번째 경험이다.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동문 밖을 걷던 노인은 요즘 나이로 얼마나 됐을까? 알록달록 등산배낭을 매고 전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노인’들 정도 되지 않았을까?

○… 2015년, 유엔은 인류의 평균수명을 측정해 연령 분류의 새 표준규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0~17세 이하는 미성년자, 18~65세까지는 청년, 66~79세까지는 중년, 80~99세까지는 노년, 100세를 넘으면 장수노인이다. 이 규정을 기준으로 삼으면, 필자는 아직 청년일 뿐이고, 노모는 한창의 노년이다. 시대와 함께 ‘늙음’의 기준마저 급변하고 있는 셈이다. 늙음은 결코 과보가 아니다. 늙음은 기뻐할 일도, 그렇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그저 삶의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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