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축복의 게송’ 여덟 번째 이야기에는 브라흐만교 최고의 신인 브라흐마신이 부처님께 교화되는 내용이 나온다. 사진은 인도의 한 힌두사원에 있는 브라흐마신 부조. 중앙이 브라흐마, 왼쪽은 시바파르바티(Shiva-Parvati), 그 외 다른 신들을 묘사하고 있다.

세 가지 전도망상 자각시켜
그릇된 신앙관 바로 잡아줘

마지막 이야기는 ‘승리와 축복의 게송(Jayamaṅgala Gāthā)’ 중 여덟 번째 이야기로 부처님께서 바카 브라흐마신(Baka Brahma)의 망상을 바로 잡아주는 내용이다.

부처님 당시 브라흐만교에서는 브라흐마신을 우주의 창조자이자 최고신으로 신앙하고 있었다. 브라흐만교 추종자들은 브라흐마신을 숭배하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며 행복을 빌었고, 죽어서는 브라흐마신의 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브라흐마신은 오늘날 유일신교의 하나님과 유사했다. 부처님은 이런 그릇된 신앙관과 신앙행위를 바로 잡아주기 위해 ‘바카(Baka)’라는 브라흐마신을 찾아가 그가 전도망상(顚倒妄想)을 자각해 잘못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도록 교화하고 있다.

바카 브라흐마신은 세 가지를 착각하고 있었다. 첫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세계에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 자신이 중생들을 창조한 ‘모든 중생의 아버지’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셋째, 자신은 영원한 존재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도 변함없이 영원히 상주(常住)한다고 믿었다.

먼저 첫 번째 망상이 어떻게 바로잡히는지 살펴보자. 바카 브라흐마신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범천(梵天)에 올 수 있는 수행자나 성직자는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브라흐마 바카는 범천이 최고이며, 완벽하여 범천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고 믿었다. 이곳은 최고의 세계이니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오고 싶어는 하지만 오지 못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또 범천보다 더 훌륭한 곳은 존재하지 않으며, 범천을 다스리는 자신이 최고의 존재라고 여겼다.

부처님께서는 바카의 망상을 아시고, 곧 삼매에 들어 범천의 궁전에 나타나셨다. 범천의 정상(頂上)에 머물러 허공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으셨다. 그때 존자 아야구린(阿若俱隣)은 천안(天眼)으로, 세존께서 범천 정상에 계신 것을 보았다. 그는 곧 삼매에 들어 범천세계에 나타났다. 그 또한 부처님을 향해 허공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부처님의 자리보다는 아래였고, 바카의 자리보다는 위인 위치였다. 그 때 존자 마하가섭도 세존께서 범천 정상에 계신 것을 보고 범천에 나타났다. 그도 부처님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또한 부처님의 자리보다 아래이고, 바카의 자리보다 위인 위치였다. 그때 존자 사리불도 범천에 가서 부처님을 향해 허공에 가부좌하고 앉았다. 존자 마하목건련도 범천에 나타나 부처님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결국 부처님과 제자들이 모두 바카의 머리 위에 가부좌를 하게 되었다.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망상하던 바카의 자만은 부처님과 제자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두 번째 바카의 망상은 자신이 창조자라고 믿는 것이었다. 이런 착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우주도 생성되고 소멸한다. 세계가 생성될 때에 범천의 세계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범천이 생성될 때 다른 세계에 머물던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 새로이 만들어진 범천에 처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곳 범천에서 혼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바카는 외로워서 중생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바카가 ‘다른 중생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때 마침 다른 중생이 이곳 범천에 태어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바카의 망상을 아시고, 삼매에 들어 범천의 궁전에 나타났다. 허공에 가부좌를 한 부처님께서 바카 브라흐마신과 그의 추종자들이 전도망상(顚倒妄想)을 자각해 잘못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도록 교화하고 있다.

범천에 제일 먼저 태어났던 바카는 “나는 위대한 브라흐마,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이 중생들은 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나의 바람 때문에 이 중생들이 범천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범천에 태어난 중생들도 바카에 자신들이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바카는 우리보다 먼저 태어났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자신이 모든 중생을 만든 창조자로 착각하고 있던 바카의 망상을 바로 잡아 주었다. 바카 그 자신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윤회할 수밖에 없는 중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범천의 세계에 가장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바카 자신보다 늦게 태어난 중생을 그가 창조했다고 착각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세 번째 망상은 자신이 영원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었다. 바카는 자신의 수명은 무한(無限)하여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었다. 전생에 바카는 공덕을 쌓아 이곳 범천에 태어나 자유자재하며 출생과 노화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카는 범천에서 무척 오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영원한 존재라는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바카는 계속 생사를 반복하며 윤회해왔다. 색계(色界) 사선천(四禪天)에 해당되는 광과천(廣果天)에서 태어나 500겁의 수명을 누렸다. 그 이후 생사를 반복하면서 계속 아래 세계로 내려갔다. 마침내 수명이 1겁에 해당되는 색계 초선천에 이르렀다. 바카는 색계 초선천(初禪天)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신의 과거 전생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다.

부처님은 바카에게 “바카여, 그대는 이곳 범천에 태어난 그대의 수명이 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짧을 뿐 결코 길지 않다. 나는 그대의 수명을 꿰뚫어 아는데. 그것은 십만 니랍부다(Nirabbuda)의 기간이다.”라며 그가 전생의 선업에 의해 장수를 누리고 있지만 공덕의 효과가 완료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고 바로 알려주었다. 즉, 범천에서의 수명은 니랍부다에 지나지 않는다고 깨우쳐주신 것이다. 니랍부다는 인간의 수명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긴 수명이지만 다른 천신의 수명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바카는 영원히 산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살아 자신의 전생을 잊어버린 바카에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그의 과거 이야기를 요약해 들려주셨다.

“첫째, 더위에 시달리고 목말라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었다. 일찍이 과거 구원겁(久遠劫) 때 크고 넓은 사막에서 조난 중인 상인들의 무리를 보고 바카는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해 강물을 건조한 사막으로 끌어들여 상인들을 구제했다. 그들이 배고프고 양식이 없을 때 그들을 구원했고, 자비스런 마음도 끊임없이 이어져 몇 겁을 지나도록 잃지 않았다.

둘째, 강 언덕에서 붙잡혀 끌려가던 포로들을 바카는 모두 풀어주었다. 그는 국경 근처 마을의 에니(Enī) 강둑에 머무르는 동안 도적의 공격을 받는 마을을 발견했다. 그는 왕실 군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도적들을 물리치고 마을 사람들을 구제했다.

셋째, 갠지스 강에서 인간의 살을 먹고 싶어 하는 포악한 용이 배를 사로잡았을 때 용감하게 공략하여 풀어주었다. 분노한 나가(Naga)는 배에서 공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지만, 바카는 가루다(Garuda)로 변신해 나가를 겁주어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제했다.

넷째, 전생에 바카는 부처님의 제자였는데 당시 부처님을 현명하고 헌신적이라고 칭찬했다. 바카는 귀족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세속을 포기하고 출가했다. 케사바(Kesava)라는 이름의 수행자였고, 보살은 당시 캅파(Kappa)라는 이름으로 케사바의 제자였다. 케사바는 제자 캅파를 칭찬했다.”

바카는 부처님으로부터 자신의 과거 전생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영원하지 않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과거에 지은 선업에 의해 장수(長壽)의 과보를 누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돼 자신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망상에서 깨어났다. 바카는 자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상주(常主)하지 않으며, 자신이 거주하던 천상도 생사를 벗어난 영원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카의 망상의 뿌리는 자신이 상주한다는 착각에서 시작되었다. 바카는 너무나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신의 전생을 잊어버렸고, 늙음과 죽음이 없는 영생을 확신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바카의 전도된 생각을 이런 과정을 통해 일깨워 주었다.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뒤바뀐 생각을 지적해 준 것이다. 바카처럼 인간도 건강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면서 죽음의 종막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하고 있다. 항상하는 존재가 아니라 윤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망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열반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불교문화대학장과 불교문화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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