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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우리집은 ‘부처님하우스’
  • 이강식·정현선 기자
  • 승인 2020.11.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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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불단 조성하면
‘신행의 일상화’로
신심 굳건해져요!”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 집밖으로 나갈 땐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 하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갈 수 없으며, 가족·친구와 모임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일정 인원 이상은 실내 또는 실외 집회도 금지되면서 종교인들의 신행활동에도 비상이 걸렸다.

교회 발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非對面)을 위해 온라인으로 법회나 예배를 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신도의 평균 연령이 많은 불교계의 입장에서 온라인 법회의 활용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신행활동의 불가피한 단절 또는 중단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그 대안으로 집안에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장엄한 불단(佛壇)을 조성한 후 불상을 안치하고 매일 기도와 수행을 하는 걸 어떨까? 전문가의 조언과 함께 실제 그런 신행활동을 하고 있는 3인의 불자를 소개한다.

불상 모시는 건 불교 귀의 징표

집안에 불상을 안치한 불단을 조성하는 일은 웬만큼 신심 돈독한 불자도 실행에 옮기기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단 집안에 맞춤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가족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연히 조석으로 기도와 수행을 하겠다는 단단한 각오의 발원이 선행돼야 한다. 그 대신 신앙심은 확연히 깊어진다. 집안에 불단을 모셔본 불자들은 “신행이 일상화되다보니 사찰을 찾는 빈도가 더 높아졌고, 불교 활동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불교의례 전문가인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어릴 때 ‘집에 부처님을 잘못 모시면 큰일 난다.’는 등의 말을 많이 들었는데, 봉안의례 절차를 거치면 괜찮다.”면서 “집안에 불상을 모시면 신도들이 사찰에 찾아오지 않을까봐 우려하는 스님도 계신데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자신의 집에 불상을 모시는 건 불교에 귀의했다는 징표다. 또 집안 불단은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개인이 신앙의 대상을 망각하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점안·이운의식에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관리에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불단에는 불상만 모실 수 있는 건 아니다. 탑이나 불사리의 형상 또는 사진, 불화 등 부처님의 상징물이라면 무엇이든 봉안해 예경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불상 옆에 존경하는 스님의 진영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정을 모셔놓아도 무방하다. 중요한 건 성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의례 즉 ‘점안의식(點眼儀式)’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점안의식을 행하지 않은 성보는 예술작품일 뿐, 예경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점안의식은 집에 스님을 초청해 거행할 수도 있고, 사찰에서 행하는 점안법회에 참여해 점안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점안의식은 거행 시간이 긴데, 약식(30분 가량)으로 점안의식을 하기도 한다. 이성운 교수는 “점안의식은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 불자들이 집에 불상 모시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다.”면서 “종단 또는 사찰에서 점안의식을 마친 불상을 불자 가정에 보급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석 문안 생활화, 신행생활 활력

사찰에서 점안의식을 했다면 이운의식을 거쳐야 한다. 이운의식도 약식(10여분 소요)으로 할 수 있다. 스님과 함께 집까지 이운하는 게 가장 좋지만, 경제적 부담이 된다면 절차를 안내 받아 개인이 직접해도 무방하다. 이성운 교수는 “점안의식 후 ‘○○○ 불자 집으로 부처님을 모시고자 합니다.’라고 한 뒤 절을 하고 튼튼한 함에 싸서 예를 갖추고 집 앞으로 이동한 후 ‘○○○ 불자 집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겠습니다.’는 식으로 이운을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운의식은 이사를 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불상을 모셨다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려야 한다. 재가자들은 일정한 시간에 예경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서 세수를 한 후 인사를 하면 된다. 이 때는 삼정례를 올리면서 모신 불보살님에 따라 ‘나무석가모니불’(세 번), ‘나무관세음보살’(세 번)을 염송한 뒤 “부처님 가르침대로 성실히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하고 다짐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경전 독송을 해도 좋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면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오늘 하루도 성실히 살고 돌아왔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삼정례를 올리면 된다. 또 매일 기도하면서 일정액의 기도금을 모아 사찰에 시주하는 것도 개인의 신행생활에 활력을 주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간혹, 집안에 부처님을 모셔놓을 경우 불경스런(법당에서 행해서는 안 되는 행위)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불자들이 있다. 이성운 교수는 “이런 경우, 여닫이문이 있는 감실형의 불단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집에서 수행을 해 신심이 깊어지면 사찰을 더 자주 찾게 되고, 결국에는 불교의 확산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경기도 파주 정경애 불자

정경애 씨가 불단에 문안을 겸해 예경을 하는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원인불명 질환 앓던 시기
스님 권유로 부처님 모셨어요”

향기는 꽃에서만 나는 게 아니다. 내면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불자에게서도 향기가 난다. 경기도 파주에서 기도와 수행을 생활화하고 있는 정경애(81, 법명-녹원화) 씨도 그런 불자 중 한 명이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향내음이 일행을 반긴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현관과 가까운 방문 사이로 작은 불상이 보인다. 정경애 씨 집의 불단은 방 왼쪽 낮은 자개장 위에 모셔져 있다. 자개장 위에 손바닥 크기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촛대와 향로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불상 뒤에는 수월관음도 액자가 벽에 걸려 불단을 장엄했다. 방 안에 앉아 있노라니 작고 따듯한 법당에 앉아있는 것 같이 편안했다.

그녀가 집에 불단을 모신 시기는 20년 전 서울 정릉에서 파주로 이사를 오면서다. 당시 몸이 아파서 자주 절에 갈 수 없다보니 ‘불상을 가까이에 모시고 매일 예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레 불단을 조성하게 됐다. 집에 불상을 모실 때 별도의 이운의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잘 모셔야겠다는 마음으로 부부가 함께 기도하면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정 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몸을 단정히 하고 기도복으로 갈아입는다. 이전에는 새벽 6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기도를 올렸는데, 지금은 눈을 뜨면 아침 인사하듯이 문안을 겸해 예경을 표한다. 이어 불단 옆에 위치한 창문을 활짝 연 후 초와 향을 올리고, 예불문을 시작으로 〈천수경〉, 〈반야심경〉을 독송한 후 국태민안 발원 기도를 한다.

예불을 마치면 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읽는다. 요즘에는 〈금강경〉 1만독을 목표로, 느리지만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독경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하루 동안 간직할 경전 한 구절을 마음에 새기는데, 매일 반복하다보면 마음속에 신심이 우러나 부처님을 닮아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할 때 무작정 아들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반면 지금은 부처님을 향한 예경을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으로 삼고 있어요.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면서 마음의 중심을 나에게 두고 간절히 기도하면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불단을 만들지 않았다면 기도를 덜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불을 마친 후에는 1만독을 목표로 〈금강경〉을 읽는다. 느리지만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독경하고 있다.

24년 전인 1996년 정릉 경국사에 원각 스님께서 주석하고 있었다. 당시 매일 사시에 경국사를 찾아가 기도를 올렸는데 하루는 스님이 “왜 절을 하지 않고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손발이 아파서 절을 하지 못했던 것인데,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스님을 찾아뵙고 “관절염이 심해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스님은 다음날부터 백일동안 예불이 시작될 때부터 108배를 해보라고 권했다. 건강했다면 20~30분 만에 끝냈을 108배를 세 시간이 걸려서야 마칠 수 있었는데, 양쪽 팔꿈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절을 마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고통을 견뎌내며 한 달 간 108배를 했다. 현재 집안에 모신 불상은 원각 스님이 2000년에 주신 철불이다.

2000년 정릉 경국사 원각 스님이 주신 철불.

관절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질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12년 전에는 주기적으로 사지가 이완 마비되기까지 했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밥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손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귀로 소리는 들려왔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찾을 수 없어서 하루에 여섯 번씩 매번 열일곱 가지 알약을 삼켜야했다. 6개월 동안 온갖 검사와 치료를 지속했다. 결국 일시적인 근력약화와 피로를 특징으로 하는 ‘중증 근육무력증’이란 병명이 밝혀졌고,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하루 한 알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

“건강하던 몸이 꼼짝할 수 없게 되자 마음의 병도 함께 왔어요. 그때 스님이 108배를 권해주지 않았더라면 자포자기했을지도 몰라요. 스님은 관절에 좋다는 엄나무를 구해주시면서 매일 끓여먹으라고 당부하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손에 힘이 생겨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고통 받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정경애 씨. 주변 이웃의 어려움을 돌봐야한다는 마음으로 국태민안 발원 기도를 올린다.

생활공간 속에 자리 잡은 불단은 남편에게도 부처님 법을 전해주었다. 남편 하대의(83) 씨는 정 씨와 시간을 맞춰 예불을 올리진 않지만, 하루 한 번 씩 빼놓지 않고 불단에 절을 한다. 부부는 이렇게 부처님이 집에 계신다는 생각에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됐고, 불교에 더욱 정진하게 됐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정각사 〈금강경〉독송기도에 참석하고 있다. 도반들과 〈금강경〉을 공부하며 탐진치(貪瞋癡) 삼독을 소멸하는 발원을 하고 있다.

“저에게 불단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곳이기도 해요. 살다보면 억울한 일도 겪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부처님 앞에 앉아 마음을 털어놓으면,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어요. 남편과 둘이 살다보니 대화가 답답하거나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고 느껴질 때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져요. 몸이 아프기 전에는 오만하고 기고만장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며 좀 더 성숙해졌어요. 기도 말미에 국태민안을 발원하게 된 이유입니다.”

작은 방에 자리잡은 정경애 씨의 불단.

정경애 씨는 전남 담양에서 10년 간 중·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52세 때 서울로 올라와 2년 전까지 청소년 상담교사와 예비 부모교육, 복지관 어린이 다도·예절교육, 독서지도 등의 봉사활동을 해왔다.

팔순의 나이, 부처님의 가피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정경애 씨는 “남은 인생동안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에게 예절교육과 독서지도를 하는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안 불단에 모신 부처님의 따스한 자비로움이 그녀를 통해 세상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것 같다. 

● 서울 북촌 김정순 한지등공예가

김정순 씨가 제작한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탑등’. 아침에 눈을 뜨면 불단에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린 후 부처님께 문안인사를 드린다.

직접 제작한 한지 ‘적멸보궁등’
불단에 모시고 조석으로 향 살라

서울 가회동 한옥마을의 한 골목 안에 ‘종이나무’라는 간판이 걸린 30여 평 규모의 아담한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창작 한지등(燈)을 제작하는 김정순(61, 법명-나무불) 씨의 집으로, 김 작가의 거주·작업·전시 공간을 겸하고 있다. 이곳에 그녀만의 ‘작은 법당’이 있다. 거실 겸 전시 공간 한편에 자리한 불단에는 불·보살상이 모셔져 있지도, 불화가 봉안돼 있지도 않다. 그 대신 김 작가는 2019년부터 8개월 간 공을 들여 직접 제작한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탑등’(일명 적멸보궁등)을 ‘부처님’ 대신 모시고 작은 불단을 꾸몄다.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탑은 신라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과 동일한 대상으로 인식되어, 지금까지도 예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녀의 침실에는 미니 불단이 하나 더 갖춰 있다. 최근 인근 가회동에 임대했던 매장을 정리한 후 지금의 집을 수리해 들어왔을 때, 평소 친분이 있던 스님이 집들이 선물로 유명 사진작가가 촬영한 해외 불상 사진을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침실 한편에 걸었다가 그 아래에 미니 불단을 꾸민 것이다. 침실 불단에서는 주로 〈법화경〉 사경을 하고 있다. 김 작가는 “불상 사진을 담은 액자가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님께서 ‘마음 수양하면서 잘 살라.’는 뜻을 담아 갖다 주신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는 불단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김 작가가 만든 ‘사리탑등’은 불단을 대신하는 서랍장 위 벽에 모셔져 있는데, 서랍장도 불단을 조성할 때 사용하는 고재(高才)로 만들어졌다. 사리탑등 주위는 역시 한지로 제작한 연꽃등으로 장엄했다. 하지만 불교인이 아닌 이들은 ‘적멸보궁’이나 ‘사리탑’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저 예술작품으로 생각할 뿐, 불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기존 법당에 비해선 ‘무게감’이 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정집에 더 잘 어울리는 불단이 아닐까 싶다.

김정순 작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거실과 침실의 불단에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린 후 부처님께 “하루를 시작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저녁에는 거실 불단 앞에 방석을 놓고 불경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어서 기도와 108배를 한다. 그녀가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작업실을 겸한 공간에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불단을 설치할 공간도 없었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통도사 적멸보궁을 모시기 전에는 제가 제작한 ‘마음치유 기도등’을 밝혀놓고 수행을 했어요. 이 기도등 내부에 부처님 형상을 만들어 놓아 불을 밝히면 부처님 형상이 보이게 했거든요. 이 등으로 불상을 대신한 셈이지요.”

김 작가는 이전부터 집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기도하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다. 하지만 ‘부처님을 믿고 실천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형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흘려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월이 바뀌면 기존의 생각도 바뀌기 마련. 그녀도 근래 들어서 ‘집에 예경의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한 스님의 권유로 적멸보궁등을 제작하게 됐다.

김 작가는 “아는 스님이 5대 적멸보궁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해보라고 권유를 해주셔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다른 적멸보궁도 탑이 있었는데, 통도사 적멸보궁은 모양이 특이하고 예뻤어요. 불교를 신앙하지 않는 사람도 이걸 보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적멸보궁등 제작을 시작해 집에 모시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예경의 대상을 집에 모시지 않았을 때와 모신 후 수행을 하는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군요. 예경의 대상을 집에 모시지 않았을 때는 기도나 108배를 할 때도 있었고 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집에 불단을 설치하고 예경의 대상을 모신 후에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기도나 108배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불교 공부가 더 재미있어졌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하는 일에 보람도 커졌어요. 특히 요즘엔 코로나19로 사찰을 찾는 빈도가 줄었잖아요. 그럼에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어떤 일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김 작가의 경우, 집에 부처님을 모셔놓았을 때의 장점은 수행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집을 더 정갈히 하고, 지금보다 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정도.

그녀가 집에 불단을 조성하게 된 배경에는 어릴 적부터 다져온 신심도 한몫했다. 김 작가는 경남 김해에서 불심이 돈독했던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어릴 때는 어머니를 따라 사찰에 다니며 불심을 키웠다.

그녀는 현재 방 한 칸을 작업실로 쓰고 있는데, 혼자 작업을 할 때도 어김없이 불경을 틀어놓는다. 음악보다 불경을 들으며 작업하면 마음이 더 편안하고 작업도 더 잘된다. 그래서인지 ‘연(緣)’, ‘내 안의 우주’ 등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침실 한편에는 불상 사진을 모셔 놓았다. 이곳에서는 주로 마음수행과 〈법화경〉 사경을 한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라 만드는 걸 좋아하다보니 대학도 디자인 계통 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85년 경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할 때였다. 작업을 맡은 의뢰인의 집에 등(燈)을 교체하다가 마음에 드는 등을 구하지 못해 직접 제작을 해서 달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35년 간 한지등 작가로 활동하게 됐다.

가회동 한옥마을 골목에 자리한 ‘종이나무’는 창작 한지등을 제작하는 김정순 씨의 거주공간이자 작업실 겸 전시 공간이다. 이곳에 그녀의 ‘작은 법당’이 있다.

그녀는 한지, 그리고 한지에 비치는 빛을 좋아한다. 그녀가 제작하는 한지등에는 이 두 가지가 다 녹아들어있다. 작업실에서 개인작업도 하지만 한지 창작공예 정규반, 한지조명 특강, 야생화 특강, 한지조명 원데이클래스 등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그녀의 손에서 탄생한 적멸보궁등이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이 되었고, 그녀의 집은 ‘작은 법당’으로 변모했다. 더불어 그녀가 제작하는 갖가지 등은 법당을 장식하는 장엄등이 되고 있다. “집에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보니 그리 어렵지도 불편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한 번 모시게 되면 마음가짐부터 다잡아야 하고, 그 마음을 지속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녀의 조언이다. 

● 경기도 김포 김영만 불자

김영만 씨의 불단에는 그가 조각한 목재 금륜도와 손수 접은 종이 지화연등이 있다.

“금륜도와 진신사리 모셔놓고
매일 기도하고 참회합니다”

김영만(60, 법명-보강) 씨의 집에는 방 한 칸을 개조해 만든 개인 기도실이 있다. 그는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불단을 조성했는데, 불단이 있는 이 공간은 ‘1인 토굴’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작고 특별하다.

불단 가운데에는 그가 직접 조각한 목재 금륜도(金輪圖)가 모셔져 있다. 금륜도는 청화(1924~2003) 스님의 은사인 백양사 금타(1898~1948) 스님이 창작한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공대(空大) 등 5륜(輪)을 종합한 도식이다. 금륜도 앞에는 미얀마 사찰에서 모셔왔다는 부처님 사리가 봉안돼 있다. 법화정사 도림 스님께서 고맙게도 분과(分顆)를 해주었다. 불단의 양 옆에는 작은 향로와 촛대를 뒀고, 그 옆에 청화 스님 진영·티베트 따시종 9대 캄튤린포체 존영·어머니 영정을 모셨다.

그는 목포 보현정사 고등부 불교학생회 출신이다. 불교군종병으로 전역한 후에도 불교활동에 매진했다. 1985년에는 목포에 불교서점과 용품점을 겸한 포교당 ‘금강원’을 열고, 수행모임인 ‘관음회’를 조직해 수행과 순례법회를 지속했다. 1989년 관음회 회원들과 곡성 태안사에서 삼천 배 정진 후 청화 스님께 합동수계를 받았는데, 그때 받은 법명이 지금 사용하는 ‘보강(甫剛)’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청화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게 됐는데, ‘이 시대 진정 필요한 것은 재가불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모범이 되는 재가불자가 되어야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집안에 불단을 조성했다. 그것이 25년 전이다.

불단 맞은편은 집중도를 높이고, 소음을 차단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해놓았다. 그곳에서 바라본 불단.

“청화 스님은 ‘보리방편문’을 설하면서 심즉시불(心卽是佛), 즉 ‘마음이 곧 부처’임을 강조하셨어요. 저는 청화 스님의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선구를 이 시대 수행과 포교의 지침으로 여기며 대한불교청년회·조계종 포교사단에서 활동했고, 15여 년 전부터 청화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카페 ‘금강불교 입문에서 성불까지’를 공동운영하고, 다음 카페 ‘인터넷불교연대’와 ‘금강연화원’ 등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법을 온라인 도량에서 되새겨보자는 취지였지요.”

김영만 씨는 올해로 26년째 서울교통공사 제2전자관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업 특성상 교대근무를 하고 있어서 주간에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에, 야간에 출근하는 날이면 저녁에 예불을 올린다. 야간근무를 할 경우,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오후 10시 30분경인데, 도착 후 불단에 장엄등을 밝히고 예불문을 읽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이후 묵음 또는 미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는데 짧으면 한 시간, 길 때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불단은 베란다 앞에 하나 더 조성돼 있다. 거실에 모신 불단은 직접 목각한 오륜탑(五輪塔)이다. 이곳에서는 삼배를 한 후 ‘칠정례’, ‘보리방편문’에 근거한 ‘아미타불 오정례’를 올린다. 매일 출근 전에는 어떤 급한 일이 생겨도 깨끗한 정안수를 올린다. 간혹 지방출장으로 기도를 못하게 되는 날에는 〈법화경〉을 들고 가서 사경으로 수행을 대신한다.

거실 베란다 앞에 조성한 오륜탑 앞에서는 〈보리방편문〉에 근거한 ‘아미타불 오정례’를 올린다.

부처님의 향기가 집안 곳곳에 퍼지다보니 혼자 수행하는 종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신행하는 계기가 됐다. 아내와 아들은 참선을 할 때 함께 동참하기도 한다. 7형제 중 셋째인 김 씨는 가족들로부터 “김 법사가 가족들의 업장소멸과 건강을 빌어준 덕분에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 인사가 전해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불단이 방과 거실 두 곳에 있는데, 확고한 믿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경전을 공부하면서 굳은 신심으로 부처님과 같은 방향을 보며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성격이 다혈질이라 화를 잘 내고 성내는 마음이 잘 일어나는데, 진신사리 앞에서 기도하며 참회를 합니다.”

불상을 모실 때는 증명법사 스님을 모시고 의식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따르지는 못했다. 대신 햇살이 좋은 날, 거울을 이용해 햇빛 공양을 올렸다. 요즘은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주로 집에서 기도·정진을 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자주 북한산 도선사 석불전을 찾아가 철야정진을 했다. 매일 절에 가지 못하는 대신 집안에서 절을 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니, 불단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는 조심스레 “‘부처님처럼 되겠다.’는 마음, 즉 수행을 할 때는 사찰이든 집이든 장소를 구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만 씨는 “1인 토굴에서 징과 싱잉볼을 울리며 미성으로 ‘나무아미타불’ 또는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신심증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사회 구조도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가정에서도 기본적인 예불 공간을 둘 수 있도록 불자들에게 권장하는 건 어떨까요? 불단이 가까이 있으면 오가며 기도드릴 수 있기 때문에 신심과 수행이 깊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그의 바람대로 집집마다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염불소리가 새어나올 수 있다면, 집안에 불단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떨까? 다만,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시대를 대비한 포교와 불자들의 신행에 대한 대응책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이강식·정현선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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