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품묘법연화경’ 복원은 신앙과 문화의 복합체 재현

세 차례의 대장경 판각

한국불교와 문화사에 있어서 대장경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 세대에 걸쳐 민족문화 자긍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의 판목들은 인류가 보존해야할 중요한 문화재로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려는 11세기에 송나라의 대장경을 수입해 불교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현종의 재위기간 중인 1011년에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판각에 들어가 1029년 일차적으로 초조대장경을 완성했다. 이후 문종 때 송나라에서 추가로 들여온 경전과 요(거란)에서 조성된 경전을 추가해 1087년경에 제대로 면모를 갖춘 대장경을 완성했다. 고려가 초조대장경을 조성하게 된 동기는 거란의 침입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군을 물리치도록 염원한 호국과 진병(鎭兵, 난리를 진압하는 병사)의 대장경이었다. 그러나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옮겼다가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때 판목이 불타버렸다. 다만, 당시 찍었던 인경본이 일본 쿄토 남선사에 1,800여 권, 대마도 역사민속박물관에 〈대반야경〉 570여 권, 국내에 350여 권 전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불교국가로서 면모를 갖춘 대장경을 완성한 후 의천 대각국사(義天 大覺國師, 1055~1101)는 초조대장경 완성 후인 1091년경부터 10여 년 동안 경전과 관련된 연구, 주석서인 장소(章疏)의 수집과 간행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조성된 문헌을 ‘교장(敎藏)’이라 부르고, 교장의 간행을 위해 의천이 편찬한 목록이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다. 이 목록은 신라의 원효(元曉) 스님 등 1,010부 400여 권의 고승 저술을 비롯해 당시까지 동북아에서 이루어졌던 중요한 경전의 연구 성과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대장경을 대상으로 후대 승려들이 연구, 주석한 불서인 교장에 대하여 과거에는 속장경(續藏經)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아쉽게도 이 교장 또한 1232년 몽골의 침입 때 흥왕사에서 소실됐다.

한편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의 재조대장경은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대장경의 조성도 앞서 거란 침입의 경우와 같이 몽골이 침입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는 등 전 국토가 오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백성들이 힘들어 할 때 부처님의 가호로 적을 물리치고자하는 절실한 바람에서 시작됐다.

이런 사정은 이규보(1168~1241)가 쓴 ‘대장경 새기길 기원하는 임금과 신하들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대장경의 판각은 준비부터 완성 때까지 16년(1236~1251)이 소요됐다. 이 판각사업을 주도한 기관은 강화도 선원사에 설치했던 대장도감이며, 경남 남해(섬)에도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을 별도로 두고 목재를 확보하고 새기는 작업을 진행해 8만 1,000여 장을 새겨 강화도에 보관했다. 이후 조선 초 한강 주변에 위치한 지천사로 옮겼다가 수륙의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의 해인사에 보관하게 됐다.

현재 재조대장경 인경본 중에서 비교적 시기가 이른 고려 말과 조선 세조 때의 인경본은 주로 일본의 사찰과 도서관 등에 수 만권이 보관돼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조선 전기에 수십 차례 사신을 보내 조선 조정에 대장경을 하사해주기를 요청해 받아간 것들이다.

2016년 11월 30일 서울 관문사에서 ‘고려대장경 초조본 〈첨품법화경〉 판각조성불사와 그 의의’란 주제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묘법연화경〉의 성립과 판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화엄경〉과 더불어 여러 경전 중에서도 중심 사상적인 바탕을 제공하는 경전이다. 이런 까닭에 지역과 시기를 막론하고 사경은 물론 주석서, 언해서에 이르기까지 그 간행과 유통의 빈도가 매우 높다.

특히 한국의 현존 판본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석경(石經) 조각편에도 확인되고 고려시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목판본이 유통되는데, 그 중 빠른 시기는 11세기 초에 조성된 초조대장경이다.

〈법화경〉은 중국에 전래된 후 여러 종류의 번역서가 간행되는 등 널리 유통된 경전에 속한다. 개별의 번역된 경전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리 유통되었지만, 〈묘법연화경〉이란 명칭의 경전은 동북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경전이 되었다.

〈법화경〉 성립의 역사라는 관점으로 볼 때 〈법화경〉을 결집한 대승불교 교단은 인도의 불탑신자단의 한 부류(가나, Bodhisattva-gana)이다. 이후 그 내용의 1류(기원 50년), 2류(100년), 3류(150년)를 거쳐 널리 증보하게 되었다. 현재 전하고 있는 범본(梵本)은 네팔본(완본), 서역본(부분), 길깃트본(부분) 3종이 알려져 있고, 티베트 번역본과 한역의 6종 판본 중에 현재 3종이 전해진다. 이 중 네팔본은 11~12세기 필사본으로 실담문자와 나가리문자로 되어 있고, 서역본은 중앙아시아 탐험에서 산스크리트 원전의 단편을 모은 것이며, 길깃트본은 5~6세기 필사본으로 직립 굽다문자로 쓴 것이다.

〈법화경〉은 두 종의 판본이 있는데 구본(舊本)은 〈정법화경(正法華經)〉이다. 돈황의 월지국 사문인 축법호(竺法護)가 서진의 무제 태강 7년(286)에 번역하고 쿠차국 출신 면원신(帛元信)의 교정으로 291년에 완성했다. 이에 대해 태강 10년(289) 8월 10일 〈법화경〉 27품을 번역했다는 이설도 있다.

원래 이 경은 10권 27품으로 구성돼 있다. 사상적으로 진실한 교리는 일승(一乘)교리 하나뿐이며, 이 교리를 믿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정법화경〉을 약칭하여 ‘진본(晉本)’이라고도 하며, 도안(道安) 축법태(道安 竺法太)가 사용했다. 범본에 의하면 〈살달마분타리수다라(薩達摩分陀利修多羅)〉라 하고, 축법호가 올바르다는 의미로 ‘정(正)’이라 번역했기 때문에 〈정법화경(正法華經)〉으로 부른다. 구마라집(鳩摩羅什)은 ‘살(薩)’을 ‘묘(妙)’로 번역했다.

〈정법화경〉에 비해 신본(新本)으로 구마라집이 번역한 판본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후진(後秦) 홍시(弘始) 10년(408) 2월 6일에 장안의 대사(大寺)에서 번역을 마쳤다. 이에 대해 홍시 5년 4월 23일 장안의 소요원(逍遙園)에서 번역했다는 이설도 있다. 동진(東晉)의 안제(安帝, 397~418) 때 혜관(慧觀) 법사에 의하면 홍시 8년(406)에 전국의 의학(義學)사문 2,000명을 모아 이 경전을 번역했다고 하고, 승예(僧叡) 법사는 당시 이 경전을 듣고 깨달은 승려가 800명이라 했다. 이 번역에 대한 평가는 비록 의역이 많지만 문장이 유려하고 운율이 잘 맞고 다른 경전에 비해 내용이 재미있고 쉽다고 알려져 있다. 이 경의 번역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406년 장안의 대사에서 번역했다는 설과 405년 초당사(草堂寺) 번역 설, 408년 장안의 대사에서 번역 설이다.

이밖에 〈법화삼매경(法華三昧經)〉은 위(魏)나라 감로(甘露) 원년(256)에 교주(交州)에서 호승 지강양접(胡僧 支彊梁接)이 6권으로 번역했다. 현재 전하지 않고 길장(吉藏) 당시의 1권만 전하는데, 이는 427년 지엄(智嚴)이 번역한 〈불설법화삼매경(佛說法華三昧經)〉 1권을 의미한다. 또 〈방등법화경(方等法華經)〉은 진(晉)나라 태강(太康) 원년(280) 지도량(支道良)이 5권으로 약출해 번역한 것으로 〈법화유의(法華遊意)〉를 저술한 길장은 당시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묘법연화경〉을 범어로 음역한 〈살담분다리경(薩曇分陀利經)〉은 1권 분량으로, 길장의 〈법화유의〉에 의하면 당시 경전의 목록을 찾아보면 진(晉)의 전후에 있었다고 한다. 이 경전의 번역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교도인 제바달다(提婆達多)와 용왕의 딸이 이 경전을 믿은 공덕으로 부처가 된 것에 대해 설법했다.

마지막으로 〈법화경〉 판본에 해당되는 경전이 〈첨품법화경(添品法華經)〉이다. 수(隋)대 7세기 초 인도 출신의 사나굴다(闍那堀多)와 달마급다(達摩笈多)가 같이 범본을 교감하고 앞의 두 번역본을 비교·첨가해 601년에 번역했다. 이 경전은 총7권 27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존 범문본과 내용이 가장 비슷해 일승(一乘)의 내용과 영원한 부처님의 존재에 의지해 이 경의 교리만 통달하면 지난날 죄과에 관계없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특징은 〈정법화경〉과 〈묘법연화경〉에 ‘보문품’ 게송을 추가한 점, 〈묘법연화경〉의 ‘약왕보살품’ 뒤에 ‘일광유(日光喩)’의 전문을 보충한 점, 〈정법화경〉과 같이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을 ‘보탑품(寶塔品)’에 합친 점, ‘총지품(摠持品)’과 ‘다라니품(陀羅尼品)’을 ‘신력품(信力品)’ 다음에 배치한 점 등이다.

이들 판본 중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축법호의 〈정법화경〉 10권, 구마라집의 〈묘법연화경〉 7권, 사나굴다와 달마급다의 〈첨품법화경〉 7권이다. 세 판본의 내용은 유사하나 차이점은 구마라집본에서는 ‘제바달다품’을 독립시켜 28품이 되었지만, 나머지 두 판본에서는 ‘보탑품’과 합해 27품이란 점이다. 그밖에 게송을 추가하거나 품의 순서가 바뀌는 차이가 있다.

〈정법화경〉은 인도의 패엽경 계통이나 〈묘법연화경〉은 쿠차의 경문과 같은 계통으로 두 판본이 게송의 유무나 내용 일부의 증감에 차이가 있으나 〈첨품법화경〉에서는 누락된 부분을 모두 보충해 편찬했다. 후대의 평가는 〈정법화경〉은 문장의 표현이 난해해 다른 판본에 비해 이해하기가 어렵고, 〈묘법연화경〉은 문장이 쉽게 표현돼 문맥의 이해가 어렵지 않아 후대에 천태교학의 기본경전으로 채택되고 유통되었다. 한국에서 고려와 조선에 걸쳐 필사되고 간행된 200여 차례의 판본도 주로 이 판본이다.

새로 판각한 〈첨품법화경〉의 특징

고려조에서 한역대장경을 국가사업으로 진행한 것은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인데, 그 중 〈법화경〉으로 한정해볼 때 초조대장경 중 현존본에는 구마라집의 〈묘법연화경〉이 남아 있지 않고, 〈첨품법화경〉 인경본만이 일본의 교토 남선사에 전해지고 있다. 천태종이 최근 〈법화경〉 판각을 진행할 때 〈첨품법화경〉을 판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판각에는 실물의 고증을 위한 서지학적 연구를 기본으로 했다. 판각에서도 목재의 재질, 판각의 과정과 방법, 인출 종이의 선정, 인출의 방법 등을 검토한 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최고의 각수로 하여금 판각하게 하는 등 모든 단계에서 최선을 다한 완성품이다. 또 소실돼 현재는 전하지 않는 고려 판목에는 고려시대 백성의 불심이 글자 하나하나에 스며있었던 것처럼 최근 복원한 〈첨품법화경〉 경판의 판각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불자들의 염원이 새겨져 있어 천태종은 물론 불교계의 보물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번에 판각·완성된 〈첨품법화경〉은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존하고 있는 해인사의 재조대장경과 판본상 기본 형식은 거의 같다. 다만 권말에 간행기록이 없다는 점과 피휘(避諱)가 서로 달리 나타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먼저 한 장에 수록된 본문의 행과 글자는 초조본과 재조본이 거의 첫 장은 22행 14자, 그 이하의 장은 23행 14자로 돼 있다. 판의 제목, 면수, 함차(函次)의 표시 위치가 초조본은 장의 앞에 기록되고, 재조본은 끝부분에 표시된 차이가 있다. 서체는 두 대장경 모두 힘이 느껴지는 ‘구양순체’가 기본이나 초조대장경본이 재조본에 비해 좀 더 필력과 새김이 나은 편이다. 이번 판각 복원 불사는 지난 시기 불교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판각 후 인쇄하고 보관을 하는 등의 목적을 고려해 전체내용을 같이 볼 수 있도록 단면으로 조성했다.

목판 233판 복원의 의미

2016년 불사에 들어가 5년이란 시간을 거쳐 최초로 복원한 초조대장경 〈첨품법화경〉 233장(단면)이 갖는 의미는 불교 신앙과 문화의 복합체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했다는 의미 외에도 단절되었던 우수한 한국 목판 인쇄술을 체계적으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국내에서 〈법화경〉 간행과 유통의 역사를 살펴보면 〈묘법연화경〉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라고 평가되고 전본이 완전히 남아 있는 〈첨품법화경〉을 판각·인출했다는 점,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한국 최초의 대장경을 되살려냄으로써 역사·문화의 재발견과 함께 앞선 시대와의 소통의 창을 만들었다는 점은 또 다른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복원 불사를 계기로 향후 해인사 재조대장경의 〈묘법연화경〉을 비롯해 천태종의 ‘삼대부’나 〈천태사교의〉 등도 역사·문화·신앙·과학·기술의 집합체로서의 목판으로 복원돼 미래 세대에 새로운 문화 창달의 계기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전시 중인 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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