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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부른 행복의 노래5_논쟁가 삿차카의 교화
지식과 언변으로 가득 찬 삿차카가 부처님을 논파하려 했지만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말씀으로 조복시켰다.

삿차카 자아관의 허구
논쟁으로 증명 조복시켜

8가지 승리와 축복의 게송(Jayamaṅgala Gāthā) 중 6번째는 외도 삿차카(Saccaka)를 부처님께서 조복시키는 내용이다. 베살리 왕국에 500개의 주제를 능숙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자이나교 논사(論師)가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논쟁 능력을 지닌 여성 자이나교 논사도 있었다. 한때 두 사람이 논쟁을 벌였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사람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했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매우 총명한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결혼하여 네 명의 딸과 삿차카라는 아들을 두었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500개씩 총 1,000개의 토론 주제를 익혔다. 부모는 딸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만약 재가자가 너희를 논파한다면, 너희는 그의 부인이 되고 출가자가 너희를 논파한다면, 너희는 출가해 그의 제자가 되어라.”

네 명의 자매들은 각 지역에서 종교인이나 사상가를 논파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와 사밧티에 도착했다. 네 명의 자매들은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사리불을 찾아가 논쟁하게 되었다. 자매들은 부모에게 익힌 여러 논쟁거리를 제시했지만, 사리불에게 논파를 당했다. 사리불에게 패배하자 자매들은 논파한 자의 제자가 되라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출가하여 사리불의 제자가 되었다. 네 자매들은 출가 후 수행하여 모두 성자가 되었다. 삿차카는 누이들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했다.

삿차카는 자녀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베살리에 거주하면서 릿차비(Licchavi) 족의 왕자들을 개인적으로 가르쳤다. 삿차카는 철판을 배에 두르고 다녔다. 배가 지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갑자기 지식이 튀어나올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삿차카는 진리를 저버리고 논쟁에 몰두하며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이론을 알고 그의 지식은 방대하여 모든 논사들을 뛰어넘었다.

삿차카는 논쟁의 달인으로 스스로 교만했다.

“누구든 설령,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라고 하더라도 나와 토론하여 논쟁하면, 떨지 않고 크게 동요하지 않고, 겨드랑이에 땀을 흘리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다. 내가 무심한 기둥에다가 말을 걸어 논쟁하면, 기둥도 떨고 크게 동요하는데, 하물며 인간이랴.”

어떤 상대라도 논파 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가득 찬 삿차카는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자신과의 논쟁에서 이길 자가 전혀 없다고 자랑했다.

어느 날 아침 삿차카는 걸식하고 있는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Assaji)를 보았다. 부처님과 논쟁하기 위한 목적으로 앗사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물었다.

“사문 고타마는 제자들을 위해 어떻게 설법하며 어떤 법을 가르쳐 익히게 하는가?”

앗사지는 대답했다.

“육체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고, 느낌·표상·의지·의식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라.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오취온(五取蘊)은 병(病)과 같고 가시와 같고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空)이며 ‘나’가 아님을 관찰하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부처님이 오취온의 무상, 고, 무아를 가르친다는 것을 앗사지로부터 듣고 삿차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박하기로 결심하면서 말했다. “사문 고타마를 만나 논쟁해서 그의 뒤바뀐 생각을 고쳐 주리라. 마치 왕가의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이 술 취한 코끼리를 끌고 깊은 물에 들어가 그 몸을 씻고 사지와 귀와 코를 두루 목욕시켜 더러운 티끌을 닦는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사문 고타마에게 가서 논쟁하여, 온갖 더러운 말은 버리게 하리라. 너희들도 또한 함께 가서 그 승부를 보아야 하리라. 그가 얼굴 구멍에서 피를 쏟고 죽게 하리라.”

삿차카는 500명의 릿차비족 왕자를 데리고 부처님에게 다가가 주장했다. “비유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땅을 의지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육신은 곧 ‘나’로서 선악은 그것으로부터 생기며, 느낌·표상·의지·의식은 곧 ‘나’로서 선과 악은 그것으로부터 생긴다. 비유하면 사람 세계나 귀신 세계나 약초나 나무들이 모두 땅을 의지하여 나고 자라는 것처럼 그와 같이 물질은 곧 ‘나’요,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곧 ‘나’다.”

삿차카는 ‘모든 씨앗과 식물이 땅에 의존하듯이 모든 공덕과 악덕이 실체적 개체인 자아(Atta)에 의존한다. 자아는 항상하고, 제어할 수 있고, 실체적인 것’이라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부처님은 먼저 삿차카의 자아 관념 중에 자아의 주재(主宰) 능력에 대해 반박했다. 그래서 만약 육체가 자아라고 한다면 육체에게 명령을 내려 명령대로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부처님은 질문했다.

“비유하면 어떤 국왕이 자기 나라에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혹은 죽이고 혹은 내어 쫓고 혹은 때리며 손과 발을 끊는다. 그러나 만일 공적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코끼리나 보배 등을 준다. 국왕은 자신의 의지대로 백성들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벌을 줄 수 있지 않으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무릇 주인 된 사람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너는 말하기를 육신은 곧 ‘나’요, 느낌·표상·의지·의식도 곧 ‘나’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그것을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이렇지 않게도 할 수 있겠는가?”

이때 삿차카는 잠자코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답변을 재촉했다.

“빨리 말하라. 왜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느냐?”

이렇게 두 번 세 번 독촉했으나 삿차카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 만약 육체가 자아라고 한다면 육체에게 아름다워지라고 명령하면 육체가 그 명령대로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삿차카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됐다. 부처님이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했지만 삿차카가 답변하지 못하자, 금강역사가 삿차카의 바로 위쪽 허공에 나타나 말했다.

“세존께서 두 번 세 번 물으시는데 너는 왜 대답하지 않는가? 나는 이 금강저를 가지고 네 대가리를 부수어 일곱 조각을 내리라.”

삿차카는 그것을 보고 놀랍고 두려워 온몸에 털이 곤두서서 부처님에게 보호를 청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삿차카의 논쟁은 나무를 꺾으며 쇠와 돌을 부수고 용과 코끼리를 항복받으며 그들로 하여금 이마에서 진물이 나고 겨드랑에서 땀이 나게 하리라고 했다. 너는 이제 자기 이론을 주장하다가 항복하고 말았다. 자기 주장에 전력을 다했지만 여래의 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였구나.”

삿차카는 잠자코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했다. 그때에 대중 가운데 담무카라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마을이나 성읍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 연못에 들어가 게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던져 놓습니다. 그 게가 집게발을 내어놓을 때마다 그 아이들이 막대기나 돌로 그것을 잘라버리고 박살을 냅니다. 집게발들이 잘리고 박살난 게는 다시는 전처럼 그 연못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이나교 외도인 삿차카는 세존과 논쟁을 벌이겠다고 다시 찾아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패배자 삿차카는 부처님에게 용서를 빌며 부처님을 칭송했다.

“세존이시여! 독사는 오히려 피할 수 있고, 사나운 불길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며, 굶주린 사자도 피할 수 있지만, 부처님의 법문에서는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원하옵나니 내일 아침에 대중과 함께 저의 공양을 받으소서.”

“빨리 말하라. 왜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느냐?” 부처님이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했지만 삿차카가 답변하지 못하자, 금강역사가 삿차카의 바로 위쪽 허공에 나타났다.

지식과 언변으로 가득 찬 삿차카가 부처님을 논파하려 했지만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말씀으로 조복시켰다. 부처님은 지혜의 등불을 비춤으로써 삿차카의 자아관(Atta-vāda-upādāna)이 허구임을 드러내 삿차카를 패배시키고 승리했다. 아만에 가득 찬 삿차카에게 부처님은 오온이 나의 통제 밖에 있음을 이야기하자, 토론과 논쟁의 달인 삿차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진정으로 이 몸이 나의 자아라면 이 몸은 내가 바라는 대로 제어되어야 할 것이다. 잠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잘 수 있어야 하고, 몸도 아프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오온은 ‘나’ 또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삿차카는 육체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을 현혹하는 지식이나 이론 대신에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 가능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이론적인 논쟁을 종식시켰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불교문화대학장과 불교문화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글 안양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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