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정면.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9월 2일 지정예고

고려시대 고승 희랑대사(希朗大師)의 실제 모습을 재현한 국내 유일의 조각상인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이 국보로 승격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9월 2일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乾漆希朗大師坐像)을 국보로, 15세기 한의학 서적인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언해본)과 17세기 공신들의 모임 상회연(相會宴)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新舊功臣相會題名之圖 屛風)’ 등 2건은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까지 활동한 희랑대사의 모습을 조각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祖師像, 僧像]으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랑대사의 구체적인 생존시기는 미상이다. 다만 조선 후기 학자 유척기(兪拓基, 1691~1767)의 〈유가야기(游加耶記)〉에 따르면, 고려 초 기유년(己酉年, 949년 추정) 5월에 나라에서 시호를 내린 교지가 해인사에 남아 있었다. 이를 기준으로 희랑대사가 949년 이전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한다.

희랑대사는 화엄학(華嚴學)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學僧)으로, 해인사 희랑대(希朗臺)에 머물며 정진했다고 전한다. 특히 태조 왕건(王建)은 희랑대사가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이곳에 두었다고 한다.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과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희랑대사좌상은 얼굴과 가슴·손·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으며, 후대의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희랑대사좌상의 특징 중 하나는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멍(폭 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다는 점이다. 해인사에 전해오는 설화에 따르면 이 흉혈(胸穴)은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했다. 일반적으로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 정수리에 난 구멍)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년, 보물 제1000호)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에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 이 조각상은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1525년(중종 20년) 의관(醫官) 김순몽(金順蒙)·유영정(劉永貞)·박세거(朴世擧) 등이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역병(疫病, 장티푸스)이 급격히 번지자 왕명을 받아 전염병 치료에 필요한 처방문을 모아 한문과 아울러 한글로 언해(諺解)해 간행한 의학서적인 〈간이벽온방〉, 선조 연간(1567~1608) 녹훈(錄勳)된 구공신(舊功臣)과 신공신(新功臣)들이 1604년(선조 37년) 11월 충훈부(忠勳府)에서 상회연(相會宴)을 개최한 장면을 그린 기록화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6호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은 국보·보물로 지정 예고한 3건의 문화재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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