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사 <육경합부>. <사진=법장사>

서울시, 8월13일자 〈서울시보〉에 고시
유형문화재 10건·문화재자료 1건 등

서울특별시 소재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 11건이 서울시 유형문화재(10건)와 문화재자료(1건)로 지정됐다.

서울특별시는 8월 13일자 〈서울시보〉(제3600호)에 개운사 괘불도와 괘불함, 연화사 목각석가여래설법상, 봉원사 약사불회도(藥師佛繪圖)·독성도·산신도, 봉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봉원사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와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법장사 〈육경합부(六經合部)〉, 운가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를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고시했다. 봉원사 대방(大房) 석조여래좌상은 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했다.

개운사 괘불도와 괘불함(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63호) 중 괘불도는 19세기 후반 서울·경기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인 응석 스님이 수화승(首畵僧)으로 참여해 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연꽃을 든 본존’과 ‘관음보살’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같은 형식의 괘불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괘불함은 1879년에 제작된 석가불괘불도(釋迦佛掛佛圖)를 보관하는 함이며, 개운사 대웅전 불단 옆에 보관돼 있다. 소나무판재로 제작했으며, 명문이나 표식은 없지만 목재의 상태와 짜임, 장석의 재료와 형태로 보아 괘불도와 같은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화사 목각석가여래설법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64호)은 일부 문헌기록을 통해 1901년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후기의 새로운 장르인 목각설법상은 전체 수량이 많지 않다. 특히 주로 아미타 설법을 주제로 조성됐는데, 연화사 목각석가여래설법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주제로 한 점이 특징이다. 연화사 불화 조성을 담당한 서울·경기지역 불화승이 초본을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근대 조각과 불화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봉원사 약사불회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65호)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일광·월광보살, 사천왕상 2위, 약사 12신장으로 구성된 군도형식의 불화다. 1894년에 그려져 봉원사 만월전(滿月殿)에 봉안돼 있다. 19세기 후반기 서울·경기지역의 왕실발원불화를 가장 많이 조성한 대표적 화승인 영환 스님을 비롯해 17명의 화승이 제작했다.

봉원사 독성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66호)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서울·경기지역에서 큰 활약을 보인 ‘창엽(瑲曄)’ 스님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봉원사 만월전에 봉안돼 있던 것을 도난·훼손 방지를 위해 봉원사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봉원사 산신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67호)도 화기를 통해 광무9년(1905) 8월 10일 ‘봉명(奉命)’ 즉 대한제국 황실의 명을 받아 조성된 불화임이 확인됐다. 당초 만월전에 봉안돼 있었는데, 현재는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시주자는 상궁 1명과 강익형(姜益馨)이며, 불화를 그린 금어는 혜과 봉감(慧果奉鑑)·한곡 돈법(漢谷頓法) 스님이다. 1905년 9월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돼 일본의 강요가 시작되던 시기다. 그해 음력 8월 왕실이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을 불교에 의지해 극복하고자 불화를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69호)는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이 1209년 당나라 규봉종밀 스님이 저술한 〈법집별행록〉의 핵심 내용을 선별, 자신의 견해를 더해 편찬했다. 1537년 경상도 지리산 신흥사에서 판각하고 이를 인쇄한 목판본 1책으로, 유일본은 아니지만 1486년 전라도 규봉암 간본 이후 간행시기가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으로 전본이 매우 드문 판본이다.

〈육경합부〉(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70호)는 1424년 전라도 고산 안심사에서 개판된 이래 15세기에만 20여 종이 넘는 많은 판본이 왕실과 전국의 사찰에서 간행됐다. 이 판본은 〈금강경〉 발원문 말미에 금사사에서 간행했다는 기록이 명기돼 있고, 발원문 연화질에는 혜돈 스님등 3인의 승려가 발원하고 김계신 등 3인이 판각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계신은 1448년 효령대군과 안평대군 등이 발원한 〈법화경〉 판각에도 각수로 참여한 사실이 있어 궁중소속 각수일 것으로 추정한다. 금사사 〈육경합부〉 변상은 1338년 원대 〈금강경〉 판본의 복각본이 아닌 김계신이 새로 판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봉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71호)은 봉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삼존을 이루고, 그 좌우로 시왕·귀왕·판관·사자·장군(인왕)이 차례로 배치돼 있다. 12위의 동자를 더해 모두 33체의 존상이 봉안돼 있다.

2019년 7월 30∼31일 문화재 지정 신청을 위한 지장 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에 대한 복장조사 과정에서 조성발원문(2점), 후령통(2점), 〈묘법연화경〉(일부), 도명존자상에서는 명주저고리·명주천, 무독귀왕상에서는 조성발원문·후령통·다라니, 좌측판관상에서는 후령통(3점), 〈불설부모은중경〉,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묘법연화경〉(일부) 등이 발견됐다.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72호는 수륙재(水陸齋)의 제반 의식 절차를 요약해 정리한 불교의식집이다. 봉원사가 소장하고 있는 이 판본은 불복장에서 나왔으며, 현재까지 학계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유일본이다.

‘설회인유(設會因由)’를 시작으로 ‘봉송육도(奉送六度)’까지 총 35편이 수록돼 있다. 훼손이 심해 제1~6편(수륙 1~2장)까지는 탈락돼 있다. 이어서 필사본이 합철돼 있는데, ‘수설수륙 대회소문방(修設水陸 大會所門榜)’을 제목으로 내용 끝에는 ‘모년모월모일방 병법사문모압(某年某月某日榜 秉法沙門某押)’과 같은 양식이 총 11편이 실려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73호)은 봉원사 명부전 판관상에서 후령통 3점 및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등과 함께 출토된 복장물이다. 첫 장 권수제 하단에 ‘불법승보(佛法僧寶)’라 새긴 주문방인(朱文方印)이 날인돼 있는데, 이러한 도장은 여타 판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사례다. 이 판본은 표지만 없을 뿐 결락없이 전체 내용과 간기가 온전히 남아있고, 특히 1546년 황해도 서흥 귀진사에서 간행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전해지는 사례가 흔치 않아 희소가치가 있다.

봉원사 대방 석조여래좌상(서울시 문화재자료 제477호)은 봉원사 대방에 봉안돼 있는 37cm 크기의 경주 불석으로 만든 석조여래좌상이다. 동안의 얼굴, 짧은 목, 단순하고 간결한 옷주름, 양 손을 최대한 신체에 밀착시키고 있는 점 등 19세기 경주 불석으로 제작한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운가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사진=운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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