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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아큐들의 행진
  •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불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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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민중 우매함 표방한 ‘아큐’
방관한 우리 모두 반성해야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이 빚어낸 인물 아큐를 아는가? 적어도 내 생각에는 문학사에서 인간의 ‘속물근성’을 아큐보다 더 제대로 보여주는 주인공은 보지 못했다.

그는 가진 게 없고 무지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걸핏하면 무시당하고 놀림이나 폭력을 당한다. 그런데 아큐가 참 ‘대단한’ 이유가 있으니, 서둘러 자기위안으로 여길 만한 생각을 해서 세상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자기위안은 간단하다. 그저 상대방을 딱하게 여기면 되는 것이다. 자신은 그보다 나으니까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모든 불합리한 상황은 그저 대인(大人)인 양 눈 딱 감고 지나면 된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하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면 나한테까지 이럴까?’하는 생각을 하면 나를 업신여기는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는 담대해지고 관대해질 수 있지 않던가. 하지만 담대한 것처럼 보여도 그의 마음에는 원한과 복수하고픈 열망이 쌓여 갔다. 그리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여지없이 폭력으로 드러난다.

아큐가 만만하게 여긴 존재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는 비구니였다. 수행하는 신분이니 자기가 어떤 행동을 취해도 주먹을 쥐고 달려들거나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지 않는다. 게다가 남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자’니까 함부로 대해도 뒤탈이 없다는 게 아큐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큐는 자신에게 거칠게 대하는 세상 앞에서는 자못 대인인 양 거드름을 피우다가 젊은 비구니에게 그 모든 폭력을 다 쏟아내면서 위안을 삼는다.

아큐는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직시하지 못한 채 세파에 휩쓸려 칼춤을 추다가 생전 처음 잡아보는 붓으로 자신의 처형에 동그라미를 긋고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중국 신해혁명 당시 민중의 우매함을 표방한 아큐는 그렇게 사라졌는데,  백 년이 지난 지금 아큐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폭력을 세상에 하소연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숙현 선수. 그의 비극적인 삶을 젖히자 수많은 아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선수들에게 모멸감과 폭력을 퍼부은, 정체도 모호한 팀닥터와 덩달아 폭력을 휘두른 선배와 관리감독자들이 바로 아큐이다.

그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오랜 시간 폭력을 휘두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열 받아 있었는데 어린 선수가 자신 앞에서 주눅 들고 움츠려드니, 그게 흡족해져서 세상을 용서해주려는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왜 이렇게 어린 선수들에게 무자비한지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있지 않을까? 수많은 아큐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지는 않았을까? 그게 부끄러워 또다시 폭력을 휘둘렀을 테니 저들은 누가 더 아큐인지를 내기한 것은 아닐까?
게다가 선수들의 하소연이 들리면 깊이 살펴보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관계자들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손을 감추었으니 아큐들보다 더 잔인하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에 자꾸만 속이 쓰려온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안타깝다고 여기기만 하는 나 역시 아큐가 아닐까? 아큐들의 행진이 펼쳐지고 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불교칼럼니스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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